모든 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새옹지마

by 최형원

지난 6개월 전쯤 미국에 건너온 이후로 8번째 이사를 하였었다. 그동안 1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닌 셈인데, 이번 이사는 뭔가 많이 달랐다. 이삿날 아침부터 무빙 트럭을 잘 못 다루어 사고가 난 것을 비롯해서 일을 도와주러 온 동생이 일이 생겨 생각지 못하게 일찍 돌아가야만 했었다. 뭐 일이라는 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 여기고 그래도 어찌어찌 마무리를 했던 것이다.


급하게 이사를 해야 했었던 터라 충분히 렌트 쇼핑을 못했지만 다행히도 나름 괜찮다 싶은 집을 골랐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최악의 렌트 히스토리를 남기게 된 집이지만 말이다. 사실 매우 드문 일이기도 하지만 한국사람이 집주인이라 여러모로 편할 듯도 싶었었다.


자~ 첫날 사건은 액땜으로 치고..


새로운 집에서 새롭게 시작해보자.. 했던 것이 어째 꿈자리부터 이상하다.. 첫날부터 뭔가 기분이 나쁜 내용의 꿈을 꾸는가 싶더니, 집도 뭔가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잘 하나하나 채워가면 되겠지 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뭔가 잘 안 풀린다. 그나마 가깝게 지내던 XX가족도 이상하고 이사를 도와주러 왔던 그 동생도 뭔가 일반적이지 않아 보인다.


결국 문제는 이곳저곳에서 터진다. 하나가 터져 정리하고 마음을 다스려보면서 새롭게 마음을 다져볼까 하면 또 다른 일이 터진다. 그 집에 머물렀던 몇 개월 동안 정말 맘 편히 있지를 못했던 것 같다. 특히 와이프는 더 마음이 여려 이사 온 이후로는 잘 다니던 운동도 못 챙기고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듯싶다. 그 사이에 나는 시험 준비 때문에 그래도 마음을 한곳에 집중할 수는 있어 잘 버틴 듯싶다.



그러면서도 매일 밤마다 우리의 화두는 이거였다. 뭐지? 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까? 그러면서도 결론은 마음을 단단히 먹자..로 끝나고 다음날을 맞이하곤 했다. 일이 있어 한국을 다녀와야 했기에 와이프한테는 잘 지내고 있으라며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목표한 시험은 다행히도 결과가 좋았지만 한국의 일도 생각보다 잘 풀리지는 않았다. 나름 긍정적인 성격이지만 최근의 일들은 나를 정말 지치게 한다. 한 번은 생각이 다른데 있는 상태로 운전을 하다 큰 사고를 낼 뻔도 했고, 자꾸 멍한 상태로 하루하루가 그냥 지나갔다. 미국 생활 중에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와이프나 나나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당시 사건도 많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면서 고민을 수도 없이 했었다. 딸애는 이제야 독립된 자신의 방에, 특히나 새로 마련된 이층침대를 사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한다는 게 쉽게 결정하기는 힘들었지만 그토록 고민하던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제 좀 쉬어라고..


라고 말이다. 실제 그 신호는 재작년부터 있었다. 갑자기 민박집이 확장공사를 해야 해서 집의 일부를 철거해야 했었다. 총 7개 룸이 4개로 작아지는 것이었다. 그게 첫 번째 신호였던 것인데, 그 이후로도 우리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결론을 내고 이제 어디로 이사를 할지가 문제였다. 딸애 학교를 생각해서 애리조나 피닉스로 결정을 하였다.


그런데, 역시나 마무리도 쉽지가 않다. 집주인이 한국 분들이라고 해서 나름 사정을 봐줄 것이라 내심 기대를 했는데.. 반응이 이곳 미국 사람들보다 더 심하다. 계약서에 지정된 날까지는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 들어올 테넌트를 구하고 나가겠다고 하였고 (보통은 그렇게들 한다) 주인 어르신한테 허락받고 오픈하우스 하고 쇼잉하고 괜찮은 사람을 골랐다. 그런데, 그제야 집주인은 당신의 딸(변호사)이 일처리를 다 한다고 딸한테 미뤄버린다. 당신들은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면서.. 황당.. 이 어찌..


집을 보고 갔던 테넌트들은 언제 결정이 되는지 계속 연락이 왔고, 나는 그동안에 한국을 다녀오느라 시간이 없었고, 귀국해서 겨우겨우 딸을 만났다. 우리 보고 먼저 집을 비우고 인스펙션을 한 후에야 새로 들어올 테넌트들에게 연락을 한다고 한다. 도대체 왜?? 미리 보고 서로 일정 맞추고 하면 좋지 않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너무 많다. 집주인은 우리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이쪽이든 저쪽이든 렌트비만 받으면 된다는 주의였다. 힘든 시기라 어쩔 수 없나 보다 하면서 제일 가능성이 좋은 테넌트 가족에게 사정이 이러하니 문제없겠냐고 다시 확인도 받고 미리 이사를 빼기로 했다.


한국에서 일 보고 돌아왔을 때, 와이프가 그런다. 몸이 좀 보통 같지 않다고.. 둘째가 생긴 것이었다. 축복을 받는 시점이다. 왠지 기분이 들뜨고 새로웠다. 이제 그동안 계획했던 것들이 처음부터 다시 수정이 되어야 했다. 둘째는 특히나 노산이라 와이프 건강도 걱정이고 아무래도 한국 닥터가 돌봐주는 것이 편할 듯도 하고 먹을거리도 많은 LA가 최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둘째의 기운을 받아 LA행을 선택하였다. 다행히도 LA 가까이 학군이 좋은 동내가 있다. 한국의 동생에게 전화를 한다.


네가 좀 들어와서 일 좀 도와줘야겠다!

그래도 가장 든든하고 만만한 게 가족이다. 동생이 한국에서 들어와 3개월을 풀로 채우면서 이사를 도왔다. 몇 년 묵은 살림과 미리 예약된 손님들 마무리 등 특히나 큰집 두 집 살림에서 작은집으로 이사하는 상황이라 정리해야 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장장 2개월에 걸쳐 이사를 했던 것이다.


정든 곳을 떠나는데 아쉬움이 많았던 그 민박집의 집주인은 중국인이다. 근 6년 동안 잘 지내왔었고 집주인 아들이 airbnb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던 터라 그에 대한 보답으로 민박집 살림의 대부분을 모두 놔두기로 했다. 우리가 나와도 바로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감사했다는 의미의 선물이기도 했다. 그 집과는 상반되게 다른 집은 결국 우리가 이사 나온 이후에도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나서야 새로운 테넌트가 들어온 듯하다. 아마도 렌트비를 올려서 예정된 테넌트는 입주하는 걸 포기한 듯했고 결국은 그 비싼 렌트비를 빈 집으로 한 달 이상을 놀리면서 페이는 우리가 책임을 져야 했던 것이다. 최종 정산해서 알려준다고 하였는데 아직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보증금을 비롯해서 남은 돈을 아예 돌려주지 않을 심산이다.


요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다. 그 당시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민박을 정리하였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문제는 이사를 한 이후다. 전 세계 경제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간다. 특히나 여행, 항공 산업이 타격을 받아 전 세계적으로 여행 산업이 고사하는 위기상황인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2019년 12월에 중국에서 발생된 코비드19 병명의 코로나 바이러스, 그 바이러스 자체의 독성은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었는데 전염력 최고에 노약자, 특히 폐 기능에 취약한 사람에게는 치명타가 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심각하게 고민은 하지 않았었는데, 문제는 이게 악성 경제 죽이기 바이러스로 돌변한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민박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직격타를 먹인다. 그 당시 우리가 변화를 주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고자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우리에게도 또 하나의 큰 위기로 다가왔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적어도 둘째가 건강하게 세상의 빛을 볼 때까지는 좀 쉬면서 다음일을 기약하자고 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 타이밍을 둘째가 만들어준 것인가?


모든 일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2011년 10월, 첫애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