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 만난 남자

by 몽상가


땅끝에 왔다. 땅끝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에 있는 한반도의 최남단에 해당하는 곶이다. 땅끝은 북위 34°17′21″, 동경 126°31′22″에 해당하며, 해남반도의 끝이 땅끝이다.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갈두마을은 ‘땅끝마을’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은 ‘땅끝’이라는 지리적 이미지를 내세워 관광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래전 읽은 소설에서 땅끝을 처음 알았다. 땅끝에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로 기억한다. 내 기억을 확신할 수 없지만 땅끝에 있는 몽돌 해변에서 한 여인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 장면 묘사가 섬세해서 땅끝 바닷가에 홀로 걷는 여자의 이미지가 남아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땅끝은 사랑의 땅으로 각인된 곳이다. 나에게' 땅끝은 사랑의 땅'이란 공식이 자동 저장된 셈이다.


But 소설의 내용처럼 땅끝 바닷가를 혼자 걸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혼자 피식 웃으며 원색적으로 번지는 노을을 보며 현실은 영화나 소설과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럼에도 노을은 미칠 듯이 아름다웠고 파도는 열정적으로 철퍽였다.

바로 그 실감의 순간, 바닷가를 벗어나 마을로 들어섰을 때 한 남자를 만났다. 그분은 곧게 뻗은 해송의 밑둥치에 돌을 쌓고 있었다. 소나무를 중심으로 둥근 형태의 돌무더기를 만들어서 그 안에 작은 돌을 채워 넣는 동작이 슬로 모션처럼 늘어졌다. 그 정도로 느리게 움직였다. 뙤약볕 아래 돌도 녹아내릴 것 같은 지독한 여름. 남자의 느린 동작으로 인해 소나무와 돌과 남자가 하나가 된 것처럼 보였다.

체감온도가 40도를 웃도는 날씨, 고행자의 모습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집 주변에 낮은 돌담이 둘러쳐 있고 길과 마주한 자리까지 돌담이 이어졌다. 돌담의 끝에는 돌을 하나씩 이어 붙여 만든 돌 조형물이 있었다. 돌로 만든 성, 크고 작은 돌을 이어 붙여서 하늘로 우뚝 솟아있는 돌성. 아직 미완의 상태로 보였다.

저건 직접 만드신 건가요?

낯선 외지인이 말을 건네자 무심하게 그렇다고 한다.

이 돌은 다 어디서 가져오세요?

남자는 소나무 둥치에 돌을 옮기던 손을 멈추지 않고 대답한다.

여기가 다 돌 천지인데......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돌밭이다. 돌을 캐어내고 들춰낸 자리마다 돌들이 사방에 깔려있다.

저기 돌성은 아직도 쌓는 중이신가 봐요?

남자가 소나무 가까이 자리를 옮겨 돌을 내려놓으며 지나가듯이 말했다.

평생 해야죠.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순간 숨이 멎었다. 평. 생.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놋쇠 부딪치는 소리를 내려 울렸다.

남자가 어떤 이유로 돌을 쌓게 되었는지 왜 그 일을 평생 하려고 하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남자가 돌을 옮기는 행위에 나의 가소로운 질문이 방해가 되면 안 될 것 같아 인사를 하고 돌담을 따라 길을 나섰다.

땅끝에 와서 만난 남자, 평생 돌을 쌓을 거라는 그의 말이 화두가 되었다.

돌을 쌓는 일이 평생을 두고 해야 할 일이 된 사람. 그의 손에 들린 돌들이 하나씩 하늘과 가깝게 올라가기 위해서는 노동의 시간과 세월이 필요하다. 기꺼이 그 시간에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는 그의 조용한 목소리.


우리는 평생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것 혹은 저것을 먼저 하고 나서 나중에 해야지. 꼭 할 거야라고 다짐을 해보지만 실제는 영화나 소설과 다르다.

내가 읽은 소설 속 땅끝에서는 몽돌 해변을 걷다가 어떤 여자 혹은 남자를 만나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현실은 바닷가를 아무리 걸어도 소설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거 아시는가? 현실이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지독하다는 것.

땅끝에서 만난 돌을 쌓는 남자. 그가 쌓는 돌 하나하나에 어떤 지독한 세월이 새겨져 있을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묵묵히 돌을 쌓는다. 땅끝에서 만난 남자가 무언의 말을 건네는 듯하다.

언제간 쌓아야 할 돌이라면 지금부터 각자의 작은 돌멩이를 집어 들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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