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타케츠루 마시타카가 쓴 [위스키와 나]는 위스키에 관한 레퍼런스 같은 책이 아닌, 술술 읽는 책이면서 위스키의 이해를 높여줄 만한 책을 찾던 중에 서점에서 살짝 보고 재밌어 보여서 구매한 책이다.
(p.56)
“스코틀랜드는 하이랜드 지방과 로우랜드 지방, 두 지역으로 구분해서 불리는 경우가 많다. 하이랜드는 스코틀랜드 북쪽을 부르는 총칭이다. ... 하이랜드가 몰트위스키의 주 산지인 것과 다르게 로우랜드는 효율적인 그레인위스키의 주산지다.”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 때 몰트위스키와 그레인위스키를 섞는다. 그레인위스키가 어디서 생산되는가 싶었는데, 이렇게 지역적으로 설명을 해주어서 흥미로웠다.
타케츠루는 처음에 글렌리벳 증류소에서 일을 하며 위스키를 만드는 과정을 배운다. 증류기 내부를 청소하는 등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자진해서 맡아했던 모든 일들이 경험으로 남아서 나중에 야마자키 증류소에서 단식 증류기를 만들 때도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거기서 배운 모든 것들을 노트에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서 나중에 좋은 자료가 된다.
히스(heath), 헤더(heather), 피트
(p.73)
“... 그 편지를 히스(heath) 꽃이 가득한 언덕에서 읽었다. 히스 꽃은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자주 나왔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 히스는 식물의
이름이자 황폐해진 벌판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히스에 있는 히스는 엄밀히 말하면 히스가 아닌 헤더(heather)다. 이 헤더가 오랜 시간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위스키 제조에 필수인 피트다.”
영국에서 생활할 때 ‘무슨 무슨 히스’라는 지명을 종종 보았었다. 공원 같기도 언덕 같기도 하던 장소였는데, 이제 그 의미를 좀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스코틀랜드의 피트에 관하여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헤더가 오랜 시간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피트! 물론 꽃 외에도 다른 것들이 섞여 있지만 왜 피트에 이런 향들이 있는지 알 것도 같다. 이런 지역적 특성이 위스키의 풍미에 영향을 미치고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피트향이라고 다 같은 피트, 석탄이 되기 전의 이탄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런 이야기와 같이 들으니 재밌다.
야마자키
(p.106)
“위스키 증류소 건설에 적합한 장소의 조건은 여러 가지다. 공기가 맑아야 하고, 근처에 강이 있어야 하며, 여름에도 온도가 별로 상승하지 않아야 하고, 피트 지대가 있어야 한다. 오사카 근처로 지역을 한정하여 조건에 가장 적합한 곳을 지도에서 찾았다. ... 그 결과, 오사카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지금의 산토리 증류소가 있는 야마자키였다.”
타케츠루가 일본 땅에 처음 세운 증류소가 야마자키 증류소라니. 아니 일본에서 처음 생긴 위스키 증류소라니. 야마자키가 괜히 비싸지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만큼 의미 있는 술이라 생각된다.
야마자키 위스키는 오래전에 마셔봤다. 요즘과 같이 일본 위스키의 가격이 치솟은 다음에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몇 년 전에 나름 저렴하게(?) 면세점에서 구입한 야마자키 DR이 있지만 굴비로 보관 중이다. 다른 더 비싼 위스키는 마실지언정 야마자키와 히비키는 쉽사리 손이 안 가는 게, 오르는 이 가격에 굳이 다시 살 일이 있을까 싶어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또 하나 알게 된 사실.
야마자키가 증류소 이름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역 이름인 것을 처음 알았다.
요이치 위스키와 헤이즐번
나중에 타케츠루는 니카 위스키 브랜드를 만들고 북해도(홋카이도) 요이치에 증류소를 세운다. 한국에는 정식 수입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니 궁금해져서 마셔보고 싶다. 아직은 마셔보지 못했다.
맛에 대한 후기를 찾아보니, 짭스뱅(스프링뱅크와 유사하다는 의미로)이라는 말이 있는데, 또 그렇지 않다는 후기도 있다.
그럴만한 것이 타케츠루는 캠벨타운의 이네 박사에게 약 반년 동안 위스키 블렌딩 훈련을 받았고 나중에 좋은 인연으로 이어가며 위스키에 대한 조언과 도움을 받는 관계로 발전한다.
타케츠루가 일본에 귀국하기 전에 일했던 곳이 캠벨타운의 스프링뱅크 소속의 증류소인 헤이즐번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마셔보고 싶은...
위스키 블렌딩의 신비
(p.117)
“위스키 제조의 마무리는 고숙성 원주와 저숙성 원주를 블렌딩해서 오크통에 넣고 다시 숙성시키는 일이다. 위스키 블렌딩은 불가사의해서 저숙성 몰트 원주끼리, 고숙성 몰트 원주 끼리 섞는 경우는 반드시 그 결과가 좋지 않다. 그런데 고숙성 몰트 원주에 저숙성 몰트 원주를 섞으면(예를 들어 10년 숙성 원주에 비교적 저숙성인 5년 숙성 원주를 섞는 경우) 저숙성 원주가 고숙성 원주에 동화되어 한층 더 맛있는 위스키가 된다.”
(p.152)
“몰트위스키 원주는 같은 때에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도 숙성하는 환경에 따라서 매우 다른 위스키가 된다. 이것들을 서로 합치면 한층 더 맛이 좋아진다. 어째서 그런지는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힘든 위스키의 신비 중 하나다.”
블렌디드 위스키뿐만 아니라 싱글몰트도 마찬가지로 여러 숙성의 원액을 섞는다. 고숙성과 저숙성을 섞어야 맛있다고 한다. 신기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위스키의 미스터리라고 한다.
그러니 꼭 고숙성만 고집하지 말자. (물론 고숙성 맛있다.) 저숙성도 맛있을 수 있음을, 스프링 뱅크의 위스키들과 킬커란, 롱로우NAS를 통해 체험했다.
마무리하며
마지막 부분에 손자가 쓴 글이 나오는 데, 본래 타케츠루의 글에 오류가 많아서 이를 주석으로 보완했다고 한다. 주석으로 보완이 안 되는 것은 뒤에 부록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보통 글의 사실여부가 다른 경우에는 이를 그냥 임의로 수정할 법도 한데, 원작자가 쓴 원 글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결정한 출판 관계자들의 결정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독자는 원작자의 본 글을 그대로 읽어볼 수 있고 사실이 왜곡된 오류들도 주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너무 잘 편집된 글을 읽는 것보다 이렇게 보는 방식이 더 재미있다. 마치 영화 코멘터리를 보며 따라가는 느낌이어서 생생하고 꾸밈없는 느낌이었다.
<위스키와 나>는 현재 한국인 최초로 위스키를 증류하고 있는 김창수 님이 번역하여 옮겼는데 그 의미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꽤나 잘 번역되어서 읽기에 좋았다. 김창수 위스키를 마셔보지는 못했지만 기대되는 바인데, 글에도 소질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책을 내려고도 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언젠가는 나오길 기대해 본다.
많은 위스키 책들이 정보적인 내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면 이 책은 한 사람의 위스키 인생에 관한 일대기가 이야기로 풀어져 있다. 그렇지만 그 안에 위스키 증류, 지역적 특성, 만드는 과정, 맛 등에 관하여 녹아 있기 때문에 위스키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었다. 단순히 개인 생각만 담은 에세이 형식의 위스키 책들은 종종 너무 정보가 미흡하다고 느꼈었는데, 이 책은 둘 다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 물론 위스키에 관한 책은 호불호를 떠나서 모두 흥미롭게 읽는 중이다. :)
이 책 이전에도 재미있는 위스키 관련 책을 여럿 읽었는데 그때는 읽고 마시느라 바빠서 생각정리를 할 여유가 없었다. 조만간 다시 한번 보면서 정리해 볼 생각이다.
다음은 어떤 재미있는 위스키 책을 읽어볼지...
이제 위스키 한잔하러 가야겠다...
읽은 기간, 20231128—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