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창업 이야기 21
어두컴컴한 방 안, 싸이 형님이 나오는 동영상 채널을 배경으로 나는 오늘도 타계하신 스티브 삼촌의 강연을 반복 청취하고 있다. 이는 지난 10년의 습관 중 하나다. 새초롬하게 뜬 눈으로 카메라를 비켜 응시한 잡스 옹이 말씀하신다. 잡스 옹이 누구인지 헷갈릴 수 있겠다. 스티브 잡스를 일컫는 말이다.
잡스 옹: "그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고는 성공을 못해요. 왜 그러냐면 성공하려면 정말 힘든 것들을 돌파해내야 하는데 자신이 즐겁지 않으면 어떻게 돌파를 하겠어요?"
정말 수 백 번 다시 봐도 옳은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게 어떤 분야든 성공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출판사는 지난겨울 출판사 신고를 내고, 세 달 만에 첫 책을 서점에 깔았다. 그러면 몇몇 사람들은 묻는다.
PeoPle : "세 달 만에 책을 내는 게 가능해요? 에이, 거 좀 허접하게 만든 거 아냐?"
땀이 삐질 난다. 발바닥에 티눈이 났다고 생각해보자. 그 티눈이 겉으로 드러난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 티눈을 제거해내려 하면 깊숙이 박혀 있는 뿌리를 찾아 들어가야 한다. 멋지고 좋은 이야기를 하다 말고 왜 생각만 해도 간지러운 티눈 이야기냐고? 고질적인 것도 뿌리 찾기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도, 그 뿌리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3개월이 아닌 20년이 걸린 출판사의 시작을 좀 더 명확하게 말하고 싶었다.
요즘 화제가 된 영화 <국제시장>.
지나고 나면 많은 게 미화될 수 있지만,
그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의 가슴에 그 시간이 단순히 추억으로 끝날 수 있을까?
1997년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기간을 일주일 앞두고 유리컵을 밟아 발바닥의 신경이 절단될 뻔한 위기를 맞았다. 나는 당시 나의 작은 방에서 중간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밥상 펴놓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방바닥에 놓인 유리컵을 차마 보지 못하고 밟게 되었다. 아픈 것보다도 정말 당황스러웠다. 언놈이 유리컵을 방바닥에 놓아가지고... 이 씨... ㅠ.ㅠ
그 '언놈'은 우리 형이었다. 방바닥에 퍼지는 선홍빛 피를 보고, "나 지금 큰일 났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발바닥이 유리컵에 홍해처럼 갈라지는 느낌. 피는 흘러넘쳐 온 방바닥을 적셨다. 겁에 질린 채 수화기를 들었다. 아버지였다. 당시 섬유업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께서는 거래처에 납품하시고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무릎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 중이셨다.
형은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고 집에 없었다. 나는 홀로였다.
나는 아버지께 상황을 말씀드렸고 당시 시장에 잠시 장을 보러 간 어머니를 기다리기는 너무도 출혈이 심한 상황이었기에 근처의 큰아버지께서 나를 데리러 오셨다. 대구의료원에 가니 상처가 너무 깊게 베여 전문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하며 신경 손상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신경이 손상될 시 평생 발을 절어야 하는 위험도 있다고 하였다.
28 청춘 토니: "하늘 노랗다. 절름발이가 뭔 말이야. 맘껏 못 뛰어본 청춘이거늘."
찢어진 상처 사이로 의사 선생님은 유리조각을 찾기 위해 마취도 하지 않은 나의 발바닥에 난 상처를 벌리고 왼발의 상처 부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너무 아파서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곧 하반신을 마취를 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공포에 떨었다. 허리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지만, 수술도구들이 부딪히는 쇳소리와 마취약이 퍼져 나무 목석같은 나의 발바닥을 이리저리 봉합 수술하고 있는 의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져서 너무도 불안한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한 명의 간호사가 옆에 앉아서 약 4시간 동안 이어진 하반신 마취 수술기간 동안 틈틈이 한 권의 책을 읽어주었다. 책을 들고 읽었는지 기억에 의존한 스토리 텔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야기였다.
생에 태어나 처음으로 읽은 오디오북이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그리고 그때 한 가지 명확한 것을 깨달았다. 책이 한 사람의 운명과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갈매기의 꿈에서 시작한 책 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불을 붙였다. 당시 나는 조금 이른 나이에 경제 경영서로 내 관심이 집중됨을 느꼈다. 사업가이신 아버지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책 속에 수많은 경영자의 삶 속에 나를 대입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것이 책사랑의 출발이었고 출판사의 시작이었다.
수술 이야기를 꺼내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울상을 짓는다. 마치 자신들이 유리컵을 밟아 발이 베인 상상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 말과 글은 자신이 겪은 경험을 타인에게 나누는 채널이다.
옆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김 디자이너의 눈이 오늘따라 평소의 얼은 동태눈이 아닌 생태처럼 초롱초롱 빛난다. 몇 번이고 들었던 이야기겠지만, 이런 나의 책 사랑의 시작이 조금은 드라마틱해서일까?
김 디자이너: "토니, 책 사랑으로 시작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특수목적고에 들어간 이야기가 이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책을 즐겁기 위해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의미와 배움을 찾기 위한 사람에게 책 쓰기 이전에 책 읽기가 준 깨달음도 공유되면 좋을 듯한데요?"
일단 물 한 잔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