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 주는 남다른 힘
S는 요즘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도서관에 가서 밤늦게 까지 공부를 하는 것이 예전만큼 힘들지 않다고 합니다. 얼굴도 부쩍 밝아졌습니다. S가 저를 만난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습니다. 줄곧 중학생 시절 우등생이었던 S는 고등학생이 되자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과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지만 되려 그런 기대와 관심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배치고사 때부터 불안한 조짐을 보였던 성적은 이내 중위권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노력을 해도 쉬이 오르질 않았습니다. 어느덧 마음속에는 해도 안된다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았고 결국 중학생 때 목표했던 최상위권의 대학이 아닌 점수에 맞춰 지방 사립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입학 후 1년의 대학생활은 생각만큼 만족스럽질 않았습니다. 학교를 열심히 다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즐거움이나 의미를 느끼며 학교생활에 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점도 그럭저럭, 미래를 위해 공무원 준비를 해야 하나 생각도 해보지만 또 다른 수능을 준비하는 것처럼 답답할 뿐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저를 찾아온 S와의 만남에서 저는 참 착하고 선한 친구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드러움 속에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힘도 느껴졌습니다. 관건은 어떻게 하면 다시 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무언가를 꺼내 올리느냐였습니다. 제 눈에는 지난 몇 해 동안 S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무언가를 찾고 고민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열심히 한 것은 맞는데 왜 내가 이걸 하고 있는지,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는지 목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메타 인지란 내가 속한 환경과 프레임에서 벗어나 잠시 나를 다시 되돌아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부를 하는 학생에게 있어 메타인지란 내가 왜 공부를 하는지? 에 대한 답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왜 공부를 해야 했어요? 왜 공부를 해야 하나요?"
저의 첫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S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너무 중요한 질문인데 한 번도 제대로 그리고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죠.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해야만 했으니까 했어요."
현장에서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나 듣는 답변입니다. 사실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하고 싶어서요"가 되어야 하는데 "해야만 해서요"가 되어서 늘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물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아갈 수는 없죠. 때로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살기도 합니다. 그게 살아가는 방법이니까요. 소수의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다수의 해야만 하는 일을 인내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죠. 그런데 적어도 우리 학생들에게만큼 공부는 해야만 해서가 강해서라기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하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Step Back!
무언가를 다시 살펴볼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잠시 물러서는 겁니다. 지금 매몰되어하고 있는 일을 잠시 멈추고 마음에 여백을 만드는 것이죠. 마음의 여백을 만들면 생각의 여유도 생깁니다. 잠시 기계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읽어 내려가던 책을 손에서 놓고 생각이란 걸 해보는 거죠.
"내가 지금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물론 공부하는 학생에게 공부를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공부가 하루 이틀하고 말게 아니라면 적어도 그 반복되고 오래될 일상을 왜 헤쳐나가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 합니다.
S는 2달간의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지방에서 잠시 벗어나 수도권에서 각자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삶에 대해서 그리고 대학생활에 대한 회고도 들었지요. 그 속에서 S는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고 학창 시절 속 가졌던 사고방식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목적이 있는 하루를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2달여간의 멘토링과 공부의 목적을 찾는 시간을 가진 후 S는 겨울방학기간 동안 하루 12시간에 가까운 학습 양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자신이 목표한 일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자격증과 영어점수를 갖춰 나가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을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것이죠.
얼마 전 S는 제게 이런 말을 해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만약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시기에 급하고 쫓기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왜 공부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발견할 기회가 있었다면 더 만족스러운 그리고 행복한 고등학생이었을 거 같아요."
목적 있는 공부의 힘 누구나 공감할 부분일 텐데요, 목적을 찾는 일, 우리가 하는 일의 Why를 묻는 일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사이먼 시넥은 그의 책 Start with Why에서 아래와 같은 예를 듭니다. 인간의 행동을 구조화해보면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무엇과 어떻게를 다루는 부분이 인간 뇌의 후기 발달 부분인 신피질의 영역이라면 왜를 다루는 영역은 구피질에 해당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뇌의 진화 발달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긴 것이 구피질인데 여기에 Why가 자리 잡은 것이죠. 그래서 Why가 how, what보다 더 강력한 원천적 힘을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능과 가까운 영역이기 때문에요.
아이들마다, 학생들마다 그 Why를 찾는 여정은 제 각각입니다. 요즘은 많은 친구들이 유튜브나 드라마 등의 미디어를 통해 장래희망을 고민하고 그 장래희망을 이루기 위해 공부의 목적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대다수 미디어에서 비친 모습은 그 직업의 특징과 본질을 잘 담아내질 못해서 학생들이 보는 직업의 단면의 모습이 왜곡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다양한 생각과 시각이 학생들에게 제공되어야 합니다. 선택을 내리기에 충분할 만큼 믿을 수 있는 정보와 경험 말이죠.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 아이가 공부를 하는 이유, 어른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 우리가 공부에 질려버린 이유는 목적 없이 해야만 하는 공부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S는 단순히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Why에 대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 스스로 우러나는 동기의식을 가지고 공부를 해나가고 있지요. 공부를 하는 과정도 즐겁고 결과도 만족스럽습니다.
목적 있는 공부, 왜 공부하는가를 고민하고 시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합니다. 그 수만큼 그 이유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Why에 대한 고민의 깊이와 크기만큼 How, What도 만들어집니다.
목적 있는 공부, 우리 모두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