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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끌 Mar 10. 2021

티끌의 여행하는 삶

하늘에 떠 있기를 몇 시간, 그 비행기 안에서 본 달은 내가 땅에서 보던 달 보다 훨씬 밝고 선명했다. 우주의 크기와 거리는 감히 내가 가늠할 수 없겠지만 괜히 달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기분에 설렜던 것 같다. 불이 다 꺼진 기내는 사람들을 잠재운다. 혼자 깨어 창 밖 구경을 하다가 결국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항상 나는 우리 모두가 세상의 티끌이라고 생각한다. 티끌을 가득 실은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준다. 처음 와본 나라, 처음 먹는 음식, 처음 보는 사람들에 티끌은 신이 나겠지. 티끌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려나, 난 행복한 티끌이다.

                                                            - 2019.07.20



이전에 해외로 여행 다닐 때 쓰던 기록을 발견했다. 코로나 19가 터지고 해외여행을 못 다닌 지 1년 반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저 기록을 다시 읽으니 마음속 깊숙이 있던 설렘이 기억났다. 스물한 살 여름, 첫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 내겐 거금을 들여 인생 첫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인천공항도 처음 가봤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탄 이후로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너무 떨렸는지, 첫 여행이라 걱정이 됐는지 출국 전 온 가족에게 안부전화를 돌렸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웃긴데, 전쟁에 나가는 장군처럼 마지막 한마디를 괜히 남겼더랬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려 붕 뜨기 시작할 때, 나는 두 손을 꼭 마주 잡고 온갖 신을 다 부르며 기도를 하는데, 이것이 지금은 하나의 습관처럼 굳어져버렸다. 종교가 따로 없는 나의 기도를 누구 한분쯤은 들어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내가 알고 있는 신이란 신은 다 들먹이며 기도를 한다. 부디 제가 타고 있는 이 비행기가 무사히 땅에 내려갈 수 있게 해 주세요. 혹시라도 이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전 수영을 할 줄 모르니까 바다에는 떨어지지 않게 해 주세요. 아 참, 그냥 추락하는 사고는 안 일어나게 해 주세요. 제발요.


세계 방방 곡곡을 다녀본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꼭 일주를 해보고 싶다. 내가 사는 곳은 이 넓은 세계에 비해 너무 좁고 또 좁아 그만큼 나 자신이 티끌처럼 느껴진다. 어마어마한 세계가 조금은 겁나고 설레어 가슴이 벅차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만 있기엔 세상이 너무 넓다. 코로나 19 종식이 막연한 이때에도 나는 계속해서 여행을 꿈꾼다. 여행하는 티끌이 되어 언젠가 마음껏 여행하는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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