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세서리는 꼭 필요할까?
얼마 전 출시일에 맞춰 아이폰 X를 구입했다. 어릴 적부터 새로운 디바이스를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성격이라 (덕분에 부모님한테도 많이 혼났다) 미리 사전예약을 하고 아침 일찍 수령했다. 출시 당일 사람들이 모두 신기해할 만한 그 기계를 뜯는 즐거움이란.. 남들보다 돈을 더 빨리 써서 느끼는 기분이지만 늘 짜릿하기만 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대리점에서 주는 사은품은 사실 쓰레기에 가깝다. 인터넷에서 천 원 내외에 구입이 가능할 것 같은 쭉쭉 늘어나는 얇디얇은 젤리케이스, 화면이 자글자글한- 눈을 더 나쁘게 할 것 같은 보호필름 등등.. 어느 대리점을 가도 '개통 시?? 종 사은품 증정'이라고 쓰여있지만 사실 이 사은품은 쓸모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번 아이폰을 구입할 때도 그랬다. 그럴싸한 선물상자를 주길래 잠시나마 기대했지만, 상자를 열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싸구려 보호필름, 스마트폰 터치장갑, 작은 안드로이드용 보조배터리, 정체모를 핸드크림이 들어있었다. 실적 때문에 2년 약정으로 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백기를 들었지만, 두 번 다시는 그의 이익을 챙겨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일부 대리점은 그래도 돈 주고 쓸만한 것들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잡동사니를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내 기계를 돌보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물론 얼리어답터들은 디바이스 구입 전에 이미 모든 과정을 마친다. 강도가 세고 투과율이 좋은 강화 필름, 그리고 몸에 꼭 맞는 듯 튼튼하고 핏한 케이스를 찾는다. 벌써 이러한 작업에만 최소 2만 원 이상의 금액이 추가된다. 정품 케이스의 경우 최소 5만 원이다. 거기에 고속 충전이나 무선충전을 위해서는 +2~3만 원이 더 필요하다. (애플은 충분히 고속 충전이 가능함에도 5W짜리 충전기를 고집한다. 마진이 부족한가?) 별도의 액세서리 값으로만 몇만 원 더 지출해야 한다. 아이폰 X의 경우 뒷면 유리만 깨져도 리퍼 비용인 70만 원가량을 그래도 지출해야 하니, 사후처리 비용을 생각하면 케이스를 필수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비단 아이폰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스마트폰을 포함해 우리는 노트북, 태블릿 등 수많은 전자기기를 사용한다. 보호필름이며 케이스며.. 내 디바이스를 예쁘게 꾸미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비싼 몸을 지켜줘야 하는 이유가 클 것이다. 그러나 '프리미엄' 폰을 자주 보는 지금, 우리는 어느 부분에서 프리미엄을 느끼고 있을까? 마땅한 케이스 하나 넣어주지 않는 브랜드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더 낮아진다. 그들은 단순히 많은 과정으로 인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걸까.
물론 그 어떤 디바이스든 아무런 부가적인 장치를 하지 않은, '쌩폰'과 같은 상태일 때 최고의 퍼포먼스를 낸다. Apple 아이패드 프로의 경우 애플 펜슬을 사용할 때 액정에 보호필름이 부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좋은 필기감을 낸다고 말하곤 한다. 쌩-디스플레이에는 이미 Non-glare 코팅 같은 것들이 모두 되어있다. 하지만 사용감에 대한 불안감을 지울 수는 없다.
어제는 약 4년 만에 새로운 랩탑을 주문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 랩탑과 달리 USB-C 단자로만 이루어진 랩탑이라 나는 또 액세서리를 주문해야 했다. 내가 사용하고 있던 보조기기들과 연결하기 위한 젠더, 새 랩탑에 꼭 맞는 튼튼한 파우치.. 몸값이 비쌀수록 더 비싼 녀석들로 지켜줘야만 한다. 몇 년 만에 바꾼 녀석이라 보호필름 부착점에 방문해 필름도 붙일 생각이다. 그래도 경험상 꽤 괜찮은 마감과 내구성을 가진 물건들은 제값을 한다. 그동안에도 수많은 길을 돌아 다시 그들에게 정착하곤 했다. 인지도가 있고 웬만큼 명성을 쌓은 브랜드의 물건은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합리화를 하며 오늘도 주문 버튼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