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더 오래, 더 깊이 아픈 마음을 가진 HSP를 위한 향기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 소중한 관계의 끝, 혹은 꿈의 좌절.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상실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세상은 잠시 멈추는 듯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주변의 위로가 공허하게 들리고, 겉으로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은 여전히 그 상실의 순간에 머물러 있습니다. 특히 우리 초민감자(HSP)들에게 애도의 시간은 남들보다 더디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유독 슬픔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급해지고, 그런 자신을 탓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애도의 시계가 더딘 것은 당신이 나약하거나 유별나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그만큼 깊이 사랑했고, 모든 순간을 온 마음으로 느꼈다는 가장 진실한 증거입니다.
우리 사회는 종종 슬픔을 빨리 극복해야 할 부정적인 감정, 혹은 치료해야 할 질병처럼 취급합니다. 하지만 슬픔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건강한 반응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증명하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슬픔을 억지로 밀어내거나 외면하려 할 때,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쓴 뿌리로 남아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슬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 거대한 감정의 파도를 안전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통과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애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상실을 삶의 일부로 통합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초민감자의 뇌는 모든 경험을 깊이 처리하고, 수많은 감각 정보와 함께 저장합니다. 이별한 연인과 함께 들었던 노래, 함께 걸었던 거리의 공기 냄새, 그의 사소한 말투와 웃음소리까지. 우리의 뇌는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생생한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이로 인해 상실의 슬픔은 단순히 '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넘어, 그와 관련된 수천, 수만 개의 감각적 기억이 되살아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됩니다. 비초민감자가 앨범의 사진 몇 장을 보는 것이라면, 우리는 고화질의 VR 영상을 반복 재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기억의 무게가 남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애도 과정은 더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초민감자는 자신의 감정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도 강렬하게 반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나의 슬픔뿐만 아니라, 남겨진 다른 가족이나 친구들의 슬픔까지도 스펀지처럼 흡수합니다. 장례식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오열을 들으며 내 슬픔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거나, 슬픔에 잠긴 친구를 위로하며 그의 감정에 완전히 동화되어 며칠간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험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는 나의 애도 과정에 타인의 감정까지 더해져, 감정적 부담이 몇 배로 가중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결국, 누구의 슬픔인지 모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고 탈진하게 될 수 있습니다.
깊은 관계 속에서 초민감자는 종종 상대방과 자신을 강하게 동일시합니다. 특히 오랜 시간을 함께한 파트너나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존재가 나의 정체성의 일부가 됩니다. 따라서 상실은 단순히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을 넘어, '나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합니다. "그 사람 없는 나는 누구인가?",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이처럼 상실은 나의 존재 기반을 뒤흔드는 경험이기 때문에,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더디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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