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향을 맡고도 다양한 반응이 있는 이유
친구가 새로 산 향수를 뿌리고 나타났다. 한 친구는 "정말 매력적이다!"라며 찬사를 보내고, 다른 친구는 "머리가 아프다"며 미간을 찌푸린다. 그리고 나는, 아무런 특별한 감흥 없이 그저 "음, 그냥 향수 냄새네"라고 생각한다. 분명 우리 모두의 코앞에는 동일한 향기 분자들이 떠다니고 있는데, 어째서 이토록 다른 반응이 나타나는 것일까?
우리는 종종 향기에 대한 호불호가 단순히 '개인의 취향'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취향이라는 막연한 단어 뒤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선천적인 유전자의 설계도와, 살아오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개인적인 기억의 도서관, 그리고 우리가 속한 사회가 약속한 문화적 코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후각의 미스터리를 다양한 시선으로 탐험해 보려고한다. 어떤 사람은 특정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태어나는 것 부터, 잊고 있던 과거를 순식간에 눈앞에 소환하는 기억의 마법, 그리고 같은 향기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게 만드는 문화의 힘까지. 당신의 코가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그 향기로운 인식의 지도를 함께 그려보는 여정을 시작한다.
우리의 후각적 경험이 저마다 다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각자가 세상을 인지하는 생물학적 '하드웨어' 자체가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설계도는 바로 우리의 유전자에 담겨있다.
우리 콧속 깊은 곳에는 수백만 개의 후각 신경세포가 있고, 각 세포 끝에는 특정 향기 분자(열쇠)와만 결합하는 '후각 수용체(자물쇠)'가 달려있다. 인간은 약 400여 종류의 후각 수용체 유전자(Olfactory Receptor genes, OR genes)를 가지고 있는데, 이 유전자들은 사람마다 미세한 차이, 즉 '유전적 변이(polymorphism)'를 보인다.
이는 마치 우리 각자가 조금씩 다른 모양의 자물쇠 세트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의 자물쇠 세트에는 특정 향기 분자(열쇠)에 딱 맞는 자물쇠가 많아서 그 향을 매우 강렬하게 느끼는 반면, 다른 사람은 그 자물쇠가 아예 없거나 모양이 조금 달라서 같은 향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거나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이는 우리가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후각의 가장 기본적인 설계도 차이다.
이러한 유전적 차이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바로 '특정 향기 실명증(Specific Anosmia)'이다. 이는 전반적인 후각 능력은 정상이지만, 유전적으로 특정 화학 물질의 냄새를 맡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가장 유명한 예는 웅취(돼지 수컷 냄새)의 원인 물질인 '안드로스테논(androstenone)'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냄새를 썩은 소변 냄새처럼 지독한 악취로 느끼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바닐라나 꽃향기처럼 달콤하고 매력적인 향으로 느낀다. 그리고 인구의 상당수는 이 냄새를 아예 맡지 못한다. 이는 OR7D4라는 특정 후각 수용체 유전자의 변이 때문이다. 이처럼 같은 물질을 두고도 우리의 유전자는 전혀 다른 후각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유전자가 후각의 기본적인 틀을 결정한다면, 그 틀을 채우고 색칠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는 '경험'과 '기억'이다.
후각은 우리의 오감 중 유일하게 이성을 거치지 않고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뇌의 변연계(편도체와 해마)에 직접 연결된다. 이 특별한 '고속도로' 때문에, 냄새는 어떤 감각보다도 강력하고 생생하게 과거의 특정 순간과 그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진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 냄새를 맡고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째로 떠올렸던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마들렌'이 있다. 그 냄새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것을 넘어, 당시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현재로 소환한다.
특정 향기에 대한 우리의 호불호는, 그 향기를 처음 만났던 순간의 경험과 감정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생일파티처럼 행복했던 순간에 장미 향이 가득했다면, 그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장미 향을 맡을 때마다 무의식적인 안정감과 기쁨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향기의 기록 제61화'에서 다룬 병원의 소독약 냄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픔, 불안,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소독약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만약 누군가가 특정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면, 이후 그 향수는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아름다운 향기가 아닌,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상기시키는 '트라우마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우리의 후각적 인식은 유전자와 개인적 경험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지지만, 그 건물의 양식과 인테리어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속한 '문화'라는 보이지 않는 건축가다.
어떤 향기가 '좋은 냄새' 혹은 '나쁜 냄새'로 여겨지는지는 문화권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진다. 미국에서 '윈터그린' 향은 근육통 파스의 냄새, 즉 '약 냄새'로 인식되지만, 영국에서는 민트 사탕의 향으로, 프랑스에서는 소독약 냄새로 여겨진다. 어린 시절부터 어떤 맥락에서 그 향을 경험했느냐가 후각적 인식을 완전히 다르게 만든 것이다.
한국인에게 구수한 된장이나 청국장 냄새는 정겨운 집밥의 향기지만,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경험해 본 적 없는 낯설고 불쾌한 냄새일 수 있다. 반대로, 서양인들이 즐겨 먹는 블루치즈의 강렬한 냄새 역시 많은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향이다. 이처럼 음식 문화는 특정 향기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인식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다.
우리가 냄새를 어떻게 인지하는지는, 그 냄새를 표현할 '언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 한국어나 영어와 같은 대부분의 산업화된 사회의 언어는 냄새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형용사가 매우 부족하다. 우리는 보통 "레몬 같은 냄새", "꽃 같은 향기"처럼 냄새의 원천에 빗대어 표현할 뿐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수렵채집 부족인 자하이(Jahai)족처럼, 냄새를 표현하는 풍부하고 구체적인 단어 체계를 가진 문화권도 있다. 그들은 곰팡내, 피 냄새, 훈제 향, 과일 익는 냄새 등을 각각 고유의 단어로 표현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언어적 차이는 단순히 표현의 차이를 넘어, 냄새를 인지하고 분류하는 뇌의 방식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즉, 우리가 어떤 냄새를 묘사할 단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냄새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기억하기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어떤 향기를 '맡는다'는 것은, 단순히 코로 화학 분자를 감지하는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나의 유전적 설계도와, 내가 살아온 삶의 모든 기억과, 내가 속한 문화의 가치가 총동원되어 만들어내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복합적인 해석의 과정이다.
내가 사랑하는 향기를 다른 사람이 싫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후각이 틀렸거나 취향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나와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나와 다른 기억을 품고, 나와 다른 문화 속에서 그 향기를 배웠을 뿐이다. 향기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은, 우리가 각자 얼마나 고유하고 독특한 세계를 지닌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향기로운 증거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여 나만의 '후각 팔레트'를 탐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떤 향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지, 어떤 향이 나에게 활력을 주는지, 그리고 어떤 향이 잊고 있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지.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향기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송이 장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향기 분자를 내뿜지만, 그 향기는 수십억 인구의 뇌 속에서 수십억 개의 다른 이야기로 피어난다. 유전자가 그려준 밑그림 위에, 기억이라는 물감으로 채색하고, 문화라는 액자에 담길 때, 비로소 하나의 향기는 '나만의 향기'로 완성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 향기로운 세계가 다른 누구의 것과도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나의 감각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된다. 결국 향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름을 긍정하고, 각자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해나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