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90%는 향기? 후각과 미각의 감각적인 동맹

맛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후각이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가

by 이지현

지독한 코감기에 걸려 코가 꽉 막힌 날, 평소 즐겨 먹던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의 실망감을 기억하는가? 달고 짠 기본적인 맛은 느껴지지만, 그 음식만이 가진 고유의 풍부한 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종이를 씹는 듯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던 경험. 우리는 이 순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우리가 '맛'이라고 믿었던 감각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향기'였다는 것을.

우리는 흔히 맛을 혀로만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혀가 감지하는 것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이라는 5가지의 기본적인 맛의 골격에 불과하다. 딸기의 달콤함과 복숭아의 달콤함을 구분하고, 갓 내린 커피의 깊은 풍미와 갓 구운 빵의 고소함을 느끼게 하는 그 무한한 맛의 스펙트럼은, 바로 우리의 '코'가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교향곡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처럼 맛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후각이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즉 '플레이버(Flavor) = 맛(Taste) + 향(Aroma)'이라는 공식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흥미롭게 풀어보고자 한다. 코와 입, 그리고 뇌가 어떻게 협력하여 '맛'이라는 하나의 통합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지, 그 감각적인 동맹의 비밀을 함께 탐험해 본다.




맛의 기본, 혀가 느끼는 5가지 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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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맛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혀의 미뢰(맛봉오리)에서 감지되는 5가지의 기본적인 맛이다. 이는 맛의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벽돌과도 같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혀에 분포된 수천 개의 미뢰는 음식물 속의 특정 화학 분자와 반응하여 뇌에 신호를 보낸다. 우리 뇌는 이 신호를 크게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인식한다. 단맛은 에너지원인 당의 존재를, 짠맛은 체내 필수 미네랄인 염분의 존재를 알려주는 생존에 필수적인 신호다. 신맛은 잘 익지 않은 과일이나 부패한 음식을 경고하고, 쓴맛은 독초와 같은 잠재적인 독성 물질을 감지하는 중요한 위험 신호다. 그리고 다섯 번째 맛인 감칠맛은 고기나 발효 식품에 풍부한 아미노산(글루탐산)의 존재를 알려, 단백질이 풍부한 영양가 있는 음식을 찾도록 돕는다. 이 다섯 가지가 바로 혀가 독립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맛의 전부다.


미각의 한계: 딸기와 체리를 구분하는 법

하지만 이 다섯 가지 맛만으로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다채로운 맛의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잘 익은 딸기와 체리는 둘 다 달고 약간의 신맛을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의 감각이 오직 혀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눈을 감고 이 둘을 구분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딸기를 '딸기 맛'으로, 체리를 '체리 맛'으로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두 과일이 가진 고유의 '향기' 분자를 우리의 코가 감지하고, 뇌가 이 정보를 미각 정보와 통합하기 때문이다.




맛의 완성, 코로 느끼는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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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진짜 비밀은 입안에서 코로 이어지는 숨겨진 후각 경로에 있다. 바로 이 경로가 막혔을 때, 우리는 맛의 세계 대부분을 잃어버리게 된다.


두 개의 후각 경로: 코앞과 코뒤

우리의 후각 시스템은 두 개의 다른 경로를 통해 작동한다. 첫 번째는 음식을 먹기 전 코로 냄새를 맡는 '코앞 후각(Orthonasal Olfaction)'이다. 이는 우리가 꽃향기를 맡거나 향수 냄새를 맡을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후각 경로다. 이 경로는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형성하고 첫인상을 결정한다.

하지만 맛의 경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두 번째 경로, 즉 음식을 입안에서 씹고 삼킬 때 발생하는 '코뒤 후각(Retronasal Olfaction)'이다. 우리가 음식을 씹으면, 음식 속에 갇혀 있던 수많은 휘발성 향기 분자들이 방출된다. 이 향기 분자들은 목구멍 뒤쪽을 통해 콧속 공간(비강)으로 올라가, 콧속 천장에 위치한 후각 수용체를 자극한다. 즉, 우리는 입안에서도 코로 '숨을 쉬며' 냄새를 맡고 있는 셈이다.


코가 막혔을 때 일어나는 일

코감기에 걸리면 이 '코뒤 후각' 경로가 콧물이나 염증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막히게 된다. 음식을 씹을 때 발생하는 향기 분자들이 후각 수용체에 도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오직 혀가 감지하는 5가지 기본 맛에만 의존하게 된다. 커피는 그저 쓴 물이 되고, 딸기 아이스크림은 그저 차가운 단맛 덩어리가 되며, 카레라이스는 복합적인 향신료의 풍미가 사라진 짠맛과 감칠맛의 조합으로만 느껴진다. 이는 우리가 평소 '맛'이라고 생각했던 경험의 80~90%가 사실은 코로 느낀 '향기'였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뇌에서의 통합, '플레이버(Flavor)'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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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혀나 코, 어느 한 곳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뇌가 여러 감각 정보를 종합하여 만들어내는 하나의 통합된 예술 작품, 즉 '플레이버'다.


맛 + 향 = 플레이버

우리가 흔히 '맛'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플레이버(Flavor)'라는 더 넓은 개념이다. 플레이버는 혀에서 오는 미각(Taste) 정보와 코뒤 후각 경로를 통해 들어온 향(Aroma) 정보가 뇌에서 하나로 통합되어 만들어지는 다차원적인 감각 경험이다. 뇌는 이 두 가지 정보를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마치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완벽하게 융합하여 "이것은 잘 익은 복숭아의 맛"이라는 최종적인 판단을 내린다.


뇌의 착각, 향기를 맛으로 느끼다

플레이버 경험의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우리가 코로 느낀 '향기'를 종종 입안에서 느낀 '맛'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코뒤 후각' 과정이 입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그 감각의 출처가 코가 아닌 입이라고 잘못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우리는 바닐라 '맛'이 난다고 말하지만, 사실 바닐라는 향기 분자일 뿐 혀에는 바닐라 맛을 감지하는 미뢰가 없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혀의 '단맛'과 코의 '바닐라 향'이 결합된 '바닐라 플레이버'이며, 뇌는 이 모든 경험을 입안에서 일어난 일로 통합하여 우리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향기를 활용하여 음식을 더 풍부하게 즐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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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미각의 감각적인 동맹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일상의 식사를 훨씬 더 풍부하고 즐거운 경험으로 만들 수 있다.


먹기 전, 먼저 향을 맡아라

음식을 입에 넣기 전, 잠시 시간을 내어 그 향기를 먼저 음미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와인이나 커피를 마시기 전 향을 먼저 맡는 '노징(nosing)'처럼, 따뜻한 수프의 증기나 갓 구운 빵의 향기를 먼저 들이마시는 것이다. 이는 '코앞 후각'을 통해 음식의 플레이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뇌가 맛을 인지할 준비를 하도록 돕는다.


천천히 씹고 입안에서 숨쉬기

음식을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씹는 것은 '코뒤 후각'을 극대화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씹는 행위는 음식의 세포벽을 파괴하여 더 많은 향기 분자를 방출시킨다. 또한, 음식을 입에 넣고 코로 숨을 부드럽게 내쉬어 보자. 와인 소믈리에들이 와인을 입에 머금고 공기를 살짝 들이마시는 것처럼, 이 행위는 입안의 향기 분자들을 콧속으로 더 활발하게 올려보내 숨겨진 플레이버를 느끼게 돕는다.


허브와 향신료의 마법

요리에 허브와 향신료를 더하는 것은, 소금이나 설탕을 추가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플레이버를 풍부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로즈마리 한 줄기, 바질 잎 몇 장, 시나몬 가루 한 꼬집은 음식의 기본적인 맛(짠맛, 단맛)은 거의 바꾸지 않으면서도, 수십, 수백 가지의 새로운 향기 분자를 더하여 플레이버의 복잡성과 깊이를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코가 막히면 세상이 무미건조해지는 경험은, 향기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맛의 세계는 혀끝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코끝에서 완성된다. 이 놀라운 감각의 동맹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음식과 더 깊이 있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오늘부터 당신의 식사 시간에 작은 변화를 주어보는 것은 어떨까.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눈앞의 음식이 내뿜는 향기에 온전히 집중해 보는 것이다. 그 작은 습관 하나가,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식사를 오감으로 즐기는 풍요로운 미식의 경험으로 바꾸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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