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감정의 역할을 인정하는 아로마테라피
우리는 종종 우리의 마음을 하나의 정원에 비유하곤 합니다. 기쁨, 사랑, 평온함과 같은 감정들은 우리가 정성껏 가꾸고 싶은 아름다운 꽃과 같습니다. 반면, 슬픔, 분노, 질투, 불안과 같은 감정들은 당장이라도 뿌리 뽑아 버리고 싶은 성가시고 보기 흉한 '잡초'처럼 여겨집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잡초를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가 잡초를 뽑으려 애쓸수록, 그 잡초는 더욱 끈질기게, 그리고 더욱 무성하게 자라나 결국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날 자리마저 빼앗아 버립니다.
하지만 만약, 그 잡초들이 단순히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 정원의 토양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 식물'이라면 어떨까요? 생태계에는 불필요한 존재란 없습니다. 가시 돋친 엉겅퀴는 토양의 미네랄 균형을 맞춰주고, 이름 모를 작은 들풀은 땅의 침식을 막아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내면 생태계에도 '나쁜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감정은 각자의 역할과 존재 이유를 가지고, 지금 당신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피어난 것입니다. 분노는 당신의 경계가 침범당했다는 신호일 수 있고, 슬픔은 당신이 무언가를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일 수 있으며, 불안은 당신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경고등일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처럼 우리가 오랫동안 오해하고 싸워왔던 '부정적인 감정'들과 화해하는 법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감정을 억누르고 제거하는 대신, 그 감정이 보내는 신호를 향기와 함께 이해하고, 그 역할이 끝났을 때 건강하게 흘려보내는 지혜로운 정원사가 되는 법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특정 감정은 '좋고', 다른 감정은 '나쁘다'고 배워왔습니다. 항상 웃고 친절한 아이는 '착한 아이'로 칭찬받지만, 울거나 화를 내는 아이는 '나쁜 아이'나 '문제아'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울지 마, 뚝!", "화내면 못써"와 같은 말들은,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이 환영받지 못하며, 심지어는 관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학습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대신, 타인에게 수용될 만한 '긍정적인' 감정만을 선택적으로 표현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억압하고 숨겨야 한다는 믿음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초민감자(HSP)는 감정을 더 깊고 강렬하게 경험하기 때문에, 이 '감정의 위계'에 더욱 큰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의 강렬한 슬픔이나 분노는 종종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거나, "너무 예민하다"는 비판을 받게 만듭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피드백은, "나의 강렬한 감정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깊은 수치심과 자기 의심을 낳습니다. 결국, 우리는 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더욱 엄격하게 검열하고 통제하게 됩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잘못'으로 여기게 되면서, 우리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내면의 신호 체계를 불신하고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고통과 불편함을 피하고, 쾌락과 편안함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슬픔, 분노, 불안과 같은 감정들은 우리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불편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뇌는 이러한 감정들을 가능한 한 빨리 없애야 할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치통이 '이빨에 문제가 생겼다'는 중요한 신호이듯, 불편한 감정 역시 '마음에 돌봄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진통제로 치통을 잠시 잊을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지듯,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당장의 고통은 피하게 해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큰 마음의 병을 키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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