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벳과 캐스토리움, 동물성 향료의 역사

매혹의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

by 이지현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이 전설적인 향수들의 깊고 관능적인 잔향 속에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비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꽃이나 나무가 아닌, 살아있는 동물에게 얻어진 '동물성 향료'의 흔적이다.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향수의 깊이와 지속력,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관능미를 완성하는 것은 바로 동물에게서 얻은 네 가지 신비로운 향료, 즉 머스크(사향), 앰버그리스(용연향), 시벳(영묘향), 그리고 캐스토리움(해리향)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사향고양이에게서 얻은 시벳과 비버에게서 얻은 캐스토리움의 역사를 통해,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동물의 희생을 필요로 했는지, 그리고 향수 산업이 어떤 윤리적 딜레마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향수의 그림자, 동물성 향료란 무엇인가?

동물성 향료는 식물성 향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역할과 목적을 가지고 향수에 사용되었다.

지속력과 깊이를 더하는 '보류제(Fixative)'

동물성 향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보류제', 즉 향의 지속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가볍고 빠르게 날아가는 꽃이나 과일 향(탑 노트, 미들 노트) 분자들을 무거운 동물성 향료 분자들이 붙잡아주어, 향이 오랫동안 피부에 머무르도록 하는 앵커(anchor) 역할을 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수많은 명작 향수들의 신비로운 잔향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향기

동물성 향료가 가진 진짜 마법은 그 향기 자체에 있다. 정제되지 않은 상태의 시벳이나 캐스토리움은 매우 강하고 불쾌한 배설물 냄새나 가죽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이를 알코올에 극소량으로 희석하면, 놀랍게도 이 불쾌함은 사라지고 따뜻하고, 관능적이며, 인간의 체취를 닮은 복합적인 향기로 변모한다. 조향사들은 이 '애니멀릭(animalic)'한 노트를 사용하여 향수에 깊이와 생명력, 그리고 유혹적 매력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깨끗하기만 한 향기가 아닌, 땀과 체온이 섞인 듯한, 살아있는 존재의 향기였다.




사향고양이의 눈물, 시벳(Civet)

시벳은 수 세기 동안 가장 중요하고 매혹적인 동물성 향료 중 하나로 여겨져 왔지만, 그 이면에는 잔인한 착취의 역사가 숨어있다.


영묘향, 관능의 상징

시벳(영묘향)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사향고양이(Civet Cat)의 생식선 근처에 위치한 향낭에서 분비되는 물질이다. 고양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사실 고양이과가 아닌 이 동물은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이 강렬한 향을 분비한다. 고대부터 시벳은 그 관능적이고 최음적인 효과로 인해 왕족과 귀족들에게 사랑받았다. 클레오파트라가 시저를 유혹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솔로몬 왕이 시바의 여왕에게 선물한 향료 중 하나였다고도 전해진다.


향기 그 이면의 어두운 채취 과정

야생에서 사향고양이가 남긴 분비물을 수집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비효율적이었기에, 사람들은 사향고양이를 좁은 우리에 가두어 사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보통 열흘에 한 번씩, 동물을 속박하고 향낭 주변을 긁어내어 강제로 분비물을 채취했다. 이 과정에서 동물들은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었다. 더욱 잔인한 사실은, 스트레스를 받은 사향고양이가 더 많은 양의 향을 분비한다는 믿음 때문에, 일부 사육자들은 일부러 동물을 괴롭히거나 약을 올리는 행위를 하기도 했다.




비버의 영역 표시, 캐스토리움(Castor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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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토리움은 시벳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특히 남성 향수와 가죽 계열(Leathery) 향수에 깊이와 따뜻함을 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리향, 따뜻한 가죽 냄새

캐스토리움(해리향)은 북미와 유럽에 서식하는 비버(Beaver)의 생식선 근처 향낭(castor sacs)에서 분비되는 물질이다. 비버는 방수 효과를 위해 털에 이 분비물을 바르거나,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한다. 건조된 캐스토리움은 따뜻하고, 달콤하며, 스모키한 가죽 냄새를 풍긴다. 이 독특한 향기는 향수에 동물적인 따뜻함과 세련된 깊이감을 부여했으며, 때로는 바닐라나 살구 같은 과일 향을 내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희생을 필요로 했던 향기

시벳과 달리, 비버로부터 캐스토리움을 얻기 위해서는 동물을 죽여야만 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고급 모피와 함께 캐스토리움을 얻기 위한 무분별한 비버 사냥이 성행했으며, 이는 한때 비버를 멸종 위기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았다. 비버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캐스토리움의 양은 매우 적었기에, 하나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비버의 희생이 필요했다.




윤리적 자각과 합성 향료의 시대


20세기 후반, 동물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동물 실험과 원료 채취 과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향수 산업은 거대한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었다.


소비자의 외면과 규제의 시작

동물 보호 단체들의 적극적인 캠페인과 언론 보도를 통해, 소비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향수의 이면에 숨겨진 잔인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아름다움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거세졌고, 이는 향수 브랜드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예: CITES)는 멸종 위기 동식물의 거래를 규제하기 시작했으며, 사향노루나 사향고양이와 같은 동물에게서 얻는 향료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거나 금지했다.


과학의 선물, 윤리적인 대안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화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과학자들은 동물성 향료의 핵심적인 향기 분자(예: 시벳의 '시베톤(Civetone)', 캐스토리움의 '카스트라민(Castoramine)')의 화학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실험실에서 식물성 원료나 석유화학 물질로부터 합성해내는 데 성공했다.

초기의 합성 향료는 천연 향료의 복합성과 깊이를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정교하고 다채로운 표현이 가능해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글로벌 향수 브랜드는 동물 보호와 지속 가능성을 위해 100% 합성 머스크, 합성 시벳 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조향사들에게 동물의 희생 없이도 무한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었다.




오늘날의 '애니멀릭 노트'

동물성 원료가 사라졌다고 해서, 향수에서 '애니멀릭(Animalic)'한 뉘앙스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향사들은 식물과 합성 향료를 조합하여 과거의 관능미를 새롭게 재창조하고 있다.


식물에서 찾는 관능미

커민(Cumin) & 코스터스(Costus): 커민 씨앗은 인간의 땀 냄새를 연상시키는 매우 강하고 독특한 향을, 코스터스 뿌리는 씻지 않은 머리카락이나 동물의 털 냄새를 닮은 향을 낸다. 이들을 극소량 사용하면 향수에 따뜻하고 살아있는 듯한 체취의 뉘앙스를 더할 수 있다.

자스민(Jasmine) & 일랑일랑(Ylang-Ylang): 아름다운 꽃향기의 대명사인 자스민과 일랑일랑의 향기 속에는 '인돌(Indole)'이라는 성분이 미량 포함되어 있다. 낮은 농도에서는 아름다운 꽃향기를 내지만, 농도가 높아지면 강한 배설물 냄새를 풍기는 이 성분은, 식물성 향료가 가진 '애니멀릭'한 이중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암브레트 시드(Ambrette Seed): 식물성 머스크의 가장 대표적인 원료로, 사향노루의 머스크와 매우 유사한 부드럽고 따뜻하며 파우더리한 향을 낸다.


합성 향료의 무한한 가능성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합성 머스크 분자들(갈락솔리드, 토날리드 등)은 이제 천연 머스크를 거의 완벽하게 대체하고 있다. 또한, 조향사들은 '시베톤', '카스트라민'과 같은 핵심 분자를 합성하여 사용하거나, 가죽, 스웨이드, 스모크, 흙과 같은 다양한 노트를 조합하여 과거의 동물성 향료가 주었던 깊이와 복합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한때 최고급 향수의 심장이었던 시벳과 캐스토리움. 그 매혹적인 향기의 역사는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열망과 그 이면에 존재했던 윤리적 무관심을 동시에 보여준다. 좁은 우리에 갇힌 사향고양이의 고통과, 생존을 위해 사라져가야 했던 비버의 희생은, 우리가 누리는 아름다움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오늘날 우리가 동물의 희생 없이도 이토록 다채로운 향기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동물 보호를 위해 목소리를 냈던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잔인함을 대체할 대안을 찾아낸 과학의 발전 덕분이다. 향수병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그 안에 담긴 향기뿐만 아니라, 더 나은 공존을 위해 인류가 걸어온 성찰의 역사 또한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향기를 사랑하는 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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