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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꽃에서 피어난 귀족의 향기

네롤리의 어원과 역사

by 이지현

아로마테라피와 향수 산업에서 가장 고귀하고 값비싼 오일 중 하나로 꼽히는 네롤리(Neroli)는 비터 오렌지 나무(Bitter Orange Tree)의 하얀 꽃에서 추출된다. 네롤리의 향기는 순수함과 관능미를 동시에 지닌 신비로운 향으로 수세기 동안 사랑받아 왔다.

흥미롭게도 이 향기는 식물의 본래 이름이 아닌, 17세기 한 이탈리아 공주의 이름을 따서 네롤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네롤리의 이야기는 이탈리아 공주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말라야의 야생 나무에서 시작해 아랍의 정교한 연금술을 거쳐, 유럽 왕실의 우아한 사교 문화를 통해 세계로 퍼져나간 네롤리의 여정은 단순한 향기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식물학적 기원과 이동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네롤리 오일의 모체가 되는 나무는 비터 오렌지(Bitter Orange, Citrus aurantium)이다. 이 나무의 여정은 인류 문명의 이동 경로와 일치하며, 각 문화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동방의 선물, 히말라야의 야생 귤나무

비터 오렌지의 원산지는 인도 북부와 히말라야산맥, 그리고 중국 남부의 접경 지역으로 추정된다. 고대 아시아 지역에서 이 나무는 처음에는 꽃의 향기보다는 약용이나 향신료로서의 가치를 먼저 인정받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오일로 추출하는 기술이 없었기에, 향기로운 껍질을 말려 약재로 쓰거나, 덜 익은 열매를 이용해 소화를 돕는 용도로 사용했다. 덥고 습한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이 나무는 나랑가(Naranga)라는 산스크리트어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는 훗날 오렌지(Orange)라는 단어의 어원적 기원이 되기도 한다.


페르시아와 아랍을 통한 서쪽으로의 전파

기원전후, 실크로드와 해상 무역로를 따라 이 나무는 페르시아를 거쳐 아랍 세계로 전해졌다. 특히 7세기 이후 이슬람 제국이 팽창하면서 비터 오렌지 나무는 중동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아랍인들은 이 나무를 관상용 정원수로 심는 것을 즐겼는데, 사계절 내내 푸른 잎과 하얀 꽃, 그리고 황금빛 열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특성이 낙원을 상징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비터 오렌지는 단순한 야생 과일에서 벗어나, 체계적으로 재배되고 관리되는 원예 작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게 되었다.


지중해의 태양을 만나다 스페인과 시칠리아

10~11세기경, 아랍인들이 이베리아반도와 시칠리아를 정복하면서 비터 오렌지 나무를 유럽 땅에 심기 시작했다.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과 건조한 기후는 비터 오렌지가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특히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 그중에서도 세비야 지역은 비터 오렌지의 주산지가 되었으며, 오늘날 비터 오렌지를 세비야 오렌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이때부터 유럽인들은 이 나무의 꽃이 뿜어내는 매혹적인 향기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는 훗날 네롤리 오일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아랍의 연금술 꽃향기를 포착하는 기술

고대에는 꽃의 향기를 온전히 보존하는 기술이 부족했다. 네롤리 오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아랍의 증류 기술(Distillation) 발달이었다.


이븐 시나와 수증기 증류법의 혁명

10세기경, 페르시아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이븐 시나(Avicenna)는 연금술 실험 도중 획기적인 발견을 하게 된다. 바로 냉각 코일을 이용한 수증기 증류법을 체계화하여 장미 꽃잎에서 에센셜 오일과 로즈 워터를 분리해낸 것이다. 이전까지의 향유 제조법은 꽃을 기름에 담가두는 침출법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븐 시나의 발명 덕분에 열에 약한 꽃향기를 손상시키지 않고 순수한 휘발성 성분만을 추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기술은 곧 비터 오렌지 꽃에도 적용되어, 인류는 처음으로 오렌지 꽃의 영혼을 액체 상태로 포집할 수 있게 되었다.


나파(Naffa) 아랍 귀족들의 향기

아랍인들은 증류 기술을 통해 비터 오렌지 꽃에서 얻은 향기로운 물, 즉 오렌지 블라썸 워터(Orange Blossom Water)를 만들어냈다. 당시 아랍에서는 오렌지 꽃의 향기를 나파(Naffa)라고 불렀으며, 이는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 있는 향료였다. 그들은 이 향기로운 물을 손님을 환영할 때 손에 뿌려주거나, 셔벗과 디저트에 넣어 풍미를 돋우는 식재료로 사용했다. 또한, 이 물은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으로도 쓰였다. 네롤리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 이 향기는 나파라는 이름으로 중동의 문화를 향기롭게 채웠다.


십자군 전쟁과 르네상스 유럽으로의 유입

11세기부터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유럽과 아랍 세계의 충돌이었지만, 동시에 문화와 기술의 거대한 교류장이기도 했다. 십자군 기사들과 상인들은 중동에서 경험한 화려한 향기 문화와 앞선 증류 기술을 유럽으로 가져왔다. 특히 증류기의 도입은 유럽의 수도원과 약제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들은 곧바로 약초와 꽃을 증류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비터 오렌지 꽃의 향기는 유럽 상류층에게 소개되었고, 그 이국적이고 관능적인 향은 순식간에 유럽인들을 매료시키며 귀족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중세 유럽 순결과 치유의 상징

중세 유럽에 도착한 비터 오렌지 꽃은 종교적 상징성과 의학적 효능으로 주목받으며, 사람들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순결한 신부의 상징 웨딩 부케와 화관

하얀 오렌지 꽃은 그 색깔과 향기 때문에 순결성, 그리고 열매를 많이 맺는 특성상 다산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징성은 결혼식 문화에 반영되어, 신부의 머리를 장식하는 화관이나 손에 드는 부케를 오렌지 꽃으로 만드는 풍습이 생겨났다. 이는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훗날 빅토리아 시대 영국까지 이어져 왕실 결혼식의 전통이 되었다. 신부에게 오렌지 꽃 향기가 나는 것은 그녀의 순결함과 앞으로 꾸릴 가정의 번영을 기원하는 축복의 의미였다.


미아즈마 이론과 수도원의 의학

중세 유럽인들은 악취가 질병을 옮긴다는 미아즈마 이론을 맹신했다.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 사람들은 향기가 강력한 오렌지 꽃을 말려 포푸리로 쓰거나, 오렌지 꽃 증류수 를 공기 중에 뿌려 주변을 정화하려 했다.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비터 오렌지 꽃이 신경을 안정시키고 소화를 돕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 소화 불량, 불면증, 신경쇠약 등을 치료하는 허브 약제를 만들었다. 당시 네롤리는 향수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위생 용품이자 상비약에 가까웠다.




17세기, 네롤리라는 이름의 탄생

이 오일이 단순히 오렌지 꽃 오일이 아닌 네롤리(Neroli)라는 독자적인 고유명사를 갖게 된 것은 17세기 말, 한 이탈리아 귀족 부인의 남다른 사랑 덕분이었다.


네롤라의 공주, 안나 마리아 드 라 트레무아유

17세기 말, 로마 근교의 작은 마을 네롤라(Nerola)의 영주이자 브라치아노 공작의 부인이었던 안나 마리아 드 라 트레무아유(Anne Marie Orsini, Princess of Nerola)가 그 주인공이다. 프랑스 귀족 출신으로 이탈리아로 시집온 그녀는 당시 사교계의 패션 리더였다. 그녀는 비터 오렌지 꽃을 증류하여 얻은 에센셜 오일의 향기에 깊이 매료되었고, 이 향기를 자신의 시그니처로 삼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이러한 취향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고 세련된 것이었다.


가죽 냄새를 덮기 위한 향기로운 장갑

당시 귀족들이 착용하던 가죽 장갑은 무두질 과정에서 사용하는 약품 때문에 지독한 냄새가 났다. 안나 마리아 공주는 자신의 장갑에 비터 오렌지 꽃 오일을 듬뿍 발라 이 악취를 덮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장갑에서 풍기는 달콤하고 우아한 꽃향기는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또한 그녀는 목욕물에도 이 오일을 넣어 향기를 즐겼으며, 자신의 스카프와 편지지에도 이 향을 입혔다. 그녀의 몸에서는 언제나 오렌지 꽃의 향기가 났고, 이는 그녀만의 독보적인 매력이 되었다.


"네롤라 공주의 향기"에서 네롤리로

그녀의 향기에 반한 이탈리아 귀족들은 너도나도 이 오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향기를 "네롤라 공주가 쓰는 그 향기" 혹은 "네롤라 공주의 오일"이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긴 호칭은 점차 줄어들어, 결국 오일의 이름 자체가 네롤리(Neroli)로 굳어지게 되었다. 안나 마리아 공주 덕분에 비터 오렌지 꽃 오일은 단순한 약용이나 종교적 용도를 넘어, 유럽 왕실과 귀족들이 사랑하는 최고의 향수이자 사치품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이는 한 개인의 취향이 역사적인 명칭으로 남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르네상스와 향기 장갑의 유행

네롤리 오일의 확산은 르네상스 시대,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번진 향기 나는 장갑(Gants Parfumés) 유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악취와의 전쟁 가죽 산업의 딜레마

르네상스 시기, 가죽 장갑은 귀족들의 필수품이었으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가죽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동물의 뇌나 소변 등을 사용하여 무두질했기 때문에, 완성된 장갑에서는 참기 힘든 악취가 났던 것이다. 당시 가죽 산업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그라스(Grasse) 지역의 장인들은 이 냄새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가죽의 악취를 덮기 위해 강력하고 지속력이 좋은 향료를 찾기 시작했는데, 네롤리는 자스민, 튜베로즈와 함께 그들이 선택한 가장 효과적이고 인기 있는 해답이었다.


카트린 드 메디치의 유산 향수 산업의 태동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출신인 카트린 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이탈리아의 발달된 향수 문화가 프랑스로 대거 유입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전속 조향사인 르네 르 플로랑탱(René le Florentin)을 프랑스로 데려가 파리에 향수 가게를 열게 했고, 네롤리 향을 입힌 향기 장갑을 궁정에 유행시켰다. 이때 네롤리 향은 이탈리아를 넘어 프랑스 궁정까지 퍼지며 귀족의 향기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고, 가죽 산지였던 그라스는 이를 계기로 세계적인 향수의 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17~18세기의 오 드 코롱(Eau de Cologne)

네롤리의 인기는 17~18세기 오 드 코롱의 발명으로 절정에 달한다. 이탈리아 조향사 지오반니 마리아 파리나(Giovanni Maria Farina)가 만든 최초의 오 드 코롱은 네롤리, 버가못, 레몬, 로즈마리 등을 블렌딩한 것이었다. 나폴레옹이 사랑했던 이 상쾌한 향수의 핵심 노트가 바로 네롤리였다. 네롤리는 무겁고 동물적인 향이 지배하던 당시 향수 트렌드에 가볍고 상쾌한 꽃향기라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며, 근대 향수 산업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원료가 되었다.




네롤리는 동방의 깊은 숲에서 자라던 야생 귤나무에서 시작하여, 아랍의 연금술적 지혜를 만나 순수한 정수를 얻었고, 중세의 종교적 신앙을 거쳐, 17세기 한 이탈리아 공주의 세련된 취향을 통해 비로소 그 이름을 얻게 되었다. 네롤리라는 이름 속에는 단순한 식물명을 넘어, 향기를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인류의 역사와 귀족적인 우아함,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순수함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맡는 네롤리의 향기는, 수천 년의 시간과 수많은 문명이 빚어낸 액체 보석과도 같은 역사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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