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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애도의 파수꾼

사이프러스의 역사와 어원

by 이지현

지중해 연안의 풍경을 떠올릴 때, 하늘을 향해 검고 뾰족하게 솟아오른 사이프러스 나무는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이다. 학명 쿠프레수스 셈페르비렌스(Cupressus sempervirens)로 불리는 이 나무는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역사 속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불멸을 잇는 매개체로 존재해 왔다. 고대인들은 이 나무가 잘려도 썩지 않는다는 점에 경외감을 느꼈으며, 사계절 내내 푸른 잎을 유지하는 모습에서 영원한 생명을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한번 베어지면 다시 싹이 트지 않는다는 특성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죽음과 애도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본고에서는 사이프러스라는 이름 속에 담긴 신화적 비극과 어원적 의미를 추적하고,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를 거쳐 중세 유럽의 묘지와 수도원에 이르기까지, 이 나무가 인류의 정신문화사에 남긴 족적을 상세히 고찰해 본다.



사이프러스의 어원과 의미

사이프러스라는 이름은 단순한 식물 명칭을 넘어, 고대인들이 이 나무를 바라보던 시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비극적인 이야기와 식물의 생태적 특성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이름의 유래를 살펴본다.


키파리소스의 신화 슬픔의 기원

사이프러스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소년 키파리소스(Kyparissos)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케오스 섬에 살던 키파리소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의 사랑을 받는 소년이었으며, 그에게는 아끼던 황금 뿔을 가진 신성한 사슴이 있었다. 어느 날 키파리소스는 실수로 자신의 사슴을 창으로 찔러 죽이게 되고, 극심한 슬픔과 죄책감에 빠진다. 그는 신들에게 자신의 슬픔이 영원히 지속되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아폴론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어 그를 사이프러스 나무로 변하게 했다. 나무의 수액이 마치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것은 키파리소스의 영원한 슬픔을 상징한다고 여겨진다. 이 신화적 기원은 사이프러스가 왜 서양 문화권에서 애도와 슬픔의 상징이 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언제나 푸르다는 뜻

사이프러스의 종명인 셈페르비렌스(Sempervirens)는 라틴어로 언제나(Semper)와 푸르다(Virens)의 합성어이다. 이는 사이프러스가 상록수(Evergreen)임을 나타내는 식물학적 특징을 묘사한다. 지중해의 뜨거운 여름 태양과 건조한 기후 속에서도 사이프러스는 잎을 떨구지 않고 짙은 녹색을 유지한다. 고대인들에게 이러한 불변의 푸르름은 육체의 죽음을 넘어서는 영혼의 불멸성을 시사하는 강력한 시각적 상징이었다. 비록 신화적으로는 슬픔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생태적 특성은 영원한 생명과 부활에 대한 희망을 내포하고 있어 묘지에 심기에 가장 적합한 나무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지중해의 원산지와 확산 과정

사이프러스의 원산지는 지중해 동부 연안, 즉 현재의 튀르키예 남부,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크레타 섬과 키프로스(Cyprus) 섬 일대로 추정된다. 실제로 사이프러스라는 이름이 키프로스 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반대로 섬의 이름이 나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존재할 만큼 이 지역과 나무의 연관성은 깊다. 페니키아인들과 로마인들은 뛰어난 항해술과 무역을 통해 이 나무를 지중해 전역으로 퍼뜨렸다. 척박하고 건조한 석회암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뿌리를 깊게 내려 강한 바닷바람을 견디는 사이프러스는 이탈리아, 프랑스 남부, 스페인 등지로 확산되어 지중해 문명을 대표하는 조경수이자 목재 자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신성함

그리스 로마 이전의 고대 문명에서도 사이프러스는 단순한 나무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내구성이 뛰어나고 향기로운 이 나무는 신들의 거처를 짓거나 죽은 자의 영생을 돕는 데 사용되었다.


이집트 영생을 위한 관의 재료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썩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들은 이 나무에서 추출한 오일이나 수지를 시신의 부패를 막는 방부 처리 과정에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꿈꾸는 파라오와 귀족들의 관을 만드는 데 사이프러스 목재를 선호했다. 사이프러스 나무 특유의 향기가 해충이나 벌레의 접근을 막아주어 시신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사이프러스의 향이 신들에게 기도를 올릴 때 영적인 통로를 열어준다고 여겨 종교 의식용 향의 재료로도 널리 활용했다.


페르시아와 조로아스터교 신성한 불과 진리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에서 사이프러스는 매우 신성한 나무로 숭배되었다. 예언자 조로아스터가 천상에서 직접 가지를 가져와 심었다는 전설이 있는 카슈마르의 사이프러스는 전설적인 거목으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인들에게 곧게 뻗은 사이프러스의 형상은 진리와 올바름, 그리고 하늘을 향한 기도를 상징했다. 그들은 신전 주변에 사이프러스를 심어 신성한 공간을 조성했으며, 나무의 긴 수명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성스러운 불과 함께 종교적 영속성을 대변하는 상징물로 기능했다.


고대 건축과 선박의 내구성

사이프러스 목재는 단단하고 물에 강하며, 시간이 지나도 뒤틀림이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고대 문명에서는 신전의 문이나 기둥, 그리고 선박을 건조하는 데 이 나무를 즐겨 사용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유프라테스 강에서 사용할 함대를 건조할 때 사이프러스 나무를 사용하도록 명령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이 수사에 궁전을 지을 때 사용한 목재 목록에도 사이프러스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사이프러스가 종교적 상징성을 넘어, 국가의 중대사를 지탱하는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자원으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와 로마 지하 세계와 의학의 나무

그리스와 로마 문화권에서 사이프러스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나무로 인식되었으며, 동시에 실질적인 질병 치료제로도 활발히 연구되었다.


하데스(플루토)에게 바쳐진 나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사이프러스는 지하 세계의 신 하데스에게 헌정된 나무였다. 이는 앞서 언급한 키파리소스 신화와 연결되어, 죽음과 애도의 의미를 강화했다. 로마인들은 장례식 때 집 문 앞에 사이프러스 가지를 걸어두어 그 집에 상(喪)이 났음을 알렸으며, 시신을 화장할 때 장작더미에 사이프러스를 함께 넣어 태웠다. 이는 나무의 향기가 시신이 타는 냄새를 중화시키는 실용적인 목적과 함께, 죽은 이의 영혼이 연기를 타고 무사히 저승으로 가기를 바라는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잘리면 다시 나지 않는 죽음의 은유

사이프러스가 죽음의 상징이 된 또 다른 이유는 이 나무의 생태적 특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무는 줄기가 잘려나가도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돋아나지만, 사이프러스는 한번 밑동이 잘리면 다시는 싹을 틔우지 못하고 완전히 죽어버린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특성을 인간의 죽음, 즉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삶의 유한성과 결부시켰다. 따라서 사이프러스는 되돌릴 수 없는 상실과 끝을 의미하는 시적인 메타포로 문학 작품이나 비문 등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히포크라테스와 디오스코리데스의 처방

의학적인 관점에서 사이프러스는 고대부터 중요한 약용 식물이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사이프러스가 순환계 문제에 효과가 있음을 인지하고, 출혈을 멈추게 하거나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로마의 군의관이자 식물학자인 디오스코리데스 역시 그의 저서 약물지에서 사이프러스 잎과 열매를 으깨어 상처에 바르거나, 와인에 담가 마시면 내출혈, 이질, 기침 등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했다. 이는 사이프러스가 가진 강력한 수렴 작용과 혈관 수축 효과를 고대 의사들이 경험적으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5. 중세 유럽 수도원과 묘지의 풍경

중세로 넘어오면서 사이프러스는 기독교 문화와 융합되어 수도원의 정원과 묘지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자리 잡았다.

묘지를 지키는 나무

고대 로마의 전통을 이어받아 중세 유럽에서도 사이프러스는 묘지의 나무로 굳어졌다. 여기에는 실용적인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이프러스는 뿌리가 옆으로 넓게 퍼지기보다 아래로 곧게 뻗어 나가는 직근성(Taproot) 성향이 강해, 묘지 주변에 심어도 관이나 묘석을 들어 올리거나 훼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은 모양은 죽은 자의 영혼이 천국으로 향하기를 바라는 중세 기독교인들의 염원과 맞아떨어졌다. 이로 인해 유럽 남부의 묘지 풍경은 짙은 녹색의 사이프러스가 열을 지어 서 있는 모습으로 정형화되었다.


수도원의 약초 정원과 의학

중세 수도원의 허큘라리움 에서 사이프러스는 필수적인 약용 수목으로 관리되었다. 수도사들은 고대 의학 지식을 계승하여 사이프러스의 잎, 열매, 수지 등을 활용해 다양한 치료제를 만들었다. 특히 치질, 정맥류, 과도한 출혈, 설사 등 체액이 과도하게 배출되거나 혈관이 늘어지는 증상을 다스리는 수렴제로 널리 사용되었다. 12세기 유명한 여성 신비가이자 수녀원장이었던 힐데가르트 폰 빙엔 역시 사이프러스의 치유력을 언급하며 이를 전인적인 치료에 활용했다.


십자군과 지중해의 풍경

십자군 전쟁을 통해 동방과 서방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지중해 동부에서 자라던 다양한 사이프러스 품종들이 유럽 내륙으로 더욱 확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 등지에서는 사이프러스를 경계수나 가로수로 심어 독특한 농촌 경관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중세 예술 작품이나 배경 묘사에서 등장하는 뾰족한 나무들은 대부분 사이프러스이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시각적, 공간적 경험 속에 이 나무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이프러스는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인류 문화의 여러 층위를 관통하며 독특한 상징성을 구축해 왔다. 고대 이집트의 관과 배에서 시작하여, 페르시아의 천국 정원을 거쳐, 그리스 로마의 신화와 의학, 그리고 중세 유럽의 묘지와 수도원에 이르기까지, 이 나무는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인간의 유한성과 영원에 대한 갈망을 동시에 담아왔다.

키파리소스의 슬픔에서 비롯된 이름은 애도와 상실의 감정을 식물의 형태로 응축시켰고, 한번 잘리면 다시 싹트지 않는다는 생태적 특성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은유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계절 푸른 잎과 썩지 않는 목재는 불멸과 영생의 상징으로도 기능했다. 이러한 이중적 의미는 사이프러스를 단순한 나무 이상의 존재로 만들었으며, 문학, 예술, 종교, 의학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활용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오늘날에도 지중해 연안의 풍경 속에서, 이탈리아 투스카니의 언덕길을 따라, 그리고 고요한 묘지의 돌무덤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이프러스를 만날 수 있다. 그 곧고 어두운 실루엣은 여전히 우리에게 삶의 덧없음과 동시에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의미의 영원함에 대해 묵묵히 이야기하고 있다. 사이프러스는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살아있는 기억의 매개체로서, 인류의 정신문화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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