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불멸을 노래하는 지중해의 푸른 별
지중해의 관목 숲(Maquis)을 거닐 때 맡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향기를 꼽자면 단연 머틀이다. 도금양과(Myrtaceae)의 어원이 되기도 한 이 식물은 작고 반짝이는 잎과 별처럼 하얀 꽃, 그리고 짙은 보라색 열매를 지닌 상록 관목이다. 유칼립투스나 티트리가 강렬한 약효와 기능성으로 알려져 있다면, 머틀은 고대부터 신화와 종교, 그리고 사랑의 상징으로 인류의 정신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린 식물이다.
현대인들에게 머틀은 고급 향수의 원료나 관상용 식물 정도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이 작은 나무에는 고대 그리스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숨결부터 영국 왕실의 결혼식 부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관통하는 낭만적인 역사가 깃들어 있다. 이 번글 에서는 은매화라고도 불리는 머틀의 어원을 추적하고, 고대 문명의 제단에서 현대의 화장대 위로 이동해 온 이 식물의 긴 여정을 탐구하려한다.
머틀(Myrtle)이라는 영어 이름은 고대 프랑스어 Myrtille을 거쳐 라틴어 Myrtus, 그리고 고대 그리스어 Myrtos(μύρτος)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언어학자들은 이 단어의 뿌리를 더 거슬러 올라가 셈어(Semitic) 계통의 어근에서 찾기도 한다. 쓴맛을 의미하는 m-r 어근과 연관이 있다고 보는데, 이는 몰약(Myrrh)과도 어원적 친연성을 가진다는 견해가 있다. 동양에서는 꽃의 모양이 매화를 닮았고 잎에서 은은한 향기가 난다 하여 은매화(銀梅花)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린다. 서구의 이름이 향기와 어원에 집중했다면, 동양의 이름은 시각적 아름다움과 그윽한 정취를 포착한 명칭이라 할 수 있다.
머틀은 유대 문화와 성서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식물이다. 히브리어로 머틀은 하다사(Hadassah)라고 불린다. 구약성경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에스더 왕비의 본명이 바로 하다사였다. 척박한 땅에서도 사시사철 푸른 잎을 유지하며 향기를 잃지 않는 머틀의 생명력은, 고난 속에서도 민족을 구원한 에스더의 이미지와 중첩된다. 유대교의 초막절(Sukkot) 축제에서 사용하는 네 가지 식물 중 하나가 바로 머틀 가지이다. 여기서 머틀은 향기는 있지만 맛이 없는 식물로 분류되며, 이는 율법에 대한 지식은 없으나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상징하는 비유로 사용된다.
지역적 명칭과 고유한 정체성
이탈리아 사르디니아 섬이나 코르시카 섬에서는 머틀을 미르토(Mirto)라고 부르며 지역의 정체성과 동일시한다. 이곳 사람들에게 미르토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섬의 거친 바람과 태양을 견뎌낸 강인함의 상징이자 전통 리큐어의 이름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는 신부의 꽃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오랫동안 결혼식 화관이나 부케에 머틀을 사용해 온 풍습에서 기인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서 머틀은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에게 봉헌된 신성한 나무였다. 전설에 따르면 바다 거품에서 탄생한 아프로디테가 키테라 섬에 상륙했을 때, 자신의 나신을 가리기 위해 숨은 곳이 머틀 덤불이었다고 한다. 이후 머틀은 여신의 꽃이 되었고, 사랑과 욕망, 그리고 불멸의 아름다움을 상징하게 되었다.
초기의 식문화/생활 속 활용법
후추가 귀하던 시절, 지중해 지역에서 머틀의 열매는 훌륭한 향신료였다. 검보라색으로 익은 머틀 베리는 후추와 비슷한 톡 쏘는 맛과 쌉싸름한 풍미를 지니고 있어, 고기의 누린내를 잡거나 소시지의 풍미를 더하는 데 사용되었다. 실제로 이탈리아 볼로냐 지방의 햄인 모르타델라(Mortadella)의 어원이 머틀 열매(Myrtle berry)로 맛을 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민간요법과 치유의 도구
고대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와 디오스코리데스는 머틀의 약용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머틀 잎과 열매에는 타닌 성분이 풍부하여 강력한 수렴 작용과 지혈 효과가 있다. 따라서 상처가 났을 때 잎을 짓이겨 붙이거나, 설사가 멈추지 않을 때 열매를 달여 마시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호흡기 질환에도 머틀은 중요한 약재였다. 잎을 물에 넣고 끓여 그 증기를 흡입하면 코막힘이나 기침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 예방약으로 쓰였다.
머틀은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이지만, 로마 제국의 확장과 함께 유럽 내륙과 영국으로 전파되었다. 로마 군단은 주둔지마다 머틀을 심었는데, 이는 고향의 향수를 달래기 위함이기도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상처 치료제와 요리용 향신료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중세 시대로 접어들며 머틀은 수도원의 약초 정원에서 필수적인 식물로 자리 잡았다. 수도사들은 고대의 의학 지식을 계승하여 머틀을 재배했고, 이를 이용해 기침 시럽이나 소화제를 만들어 지역 주민들에게 보급했다.
머틀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영국 왕실의 결혼식 전통이다.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때, 그녀의 부케에는 시어머니가 선물한 머틀 가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빅토리아 여왕은 와이트 섬의 오스본 하우스에 이 머틀 가지를 심어 나무로 키워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영국 왕실의 모든 신부들은 결혼식 부케에 오스본 하우스에서 자란 머틀 가지를 꺾어 넣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다이애나 비, 케이트 미들턴 등 세기의 신부들이 이 전통을 계승했다.
16~17세기에 머틀은 천사의 물(Eau dAnge)이라 불리는 미용수의 핵심 원료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유럽의 귀부인들은 머틀 꽃과 잎을 증류한 물로 세안을 하며 피부를 가꾸었다. 이는 머틀이 단순한 약용 식물을 넘어 뷰티 산업의 초석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과학적/생태적 특성과 환경
머틀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선호한다. 뜨겁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하고 습한 겨울이 반복되는 환경에서 최적의 생장을 보인다. 척박하고 배수가 잘되는 석회암 토양이나 모래 섞인 땅에서도 잘 자라며, 해풍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 바닷가 근처에서도 군락을 이룬다. 이러한 환경적 스트레스는 머틀의 향기를 더욱 깊고 진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강한 자외선과 건조함으로부터 수분을 지키기 위해 잎의 표면은 왁스 층으로 덮여 반짝이며, 해충과 미생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잎과 줄기 내부에 강력한 항균 성분인 에센셜 오일을 축적한다.
머틀은 산불이 잦은 지중해 생태계에 적응한 식물 중 하나이다. 화재 후 그루터기에서 맹아가 돋아나는 재생력이 뛰어나며, 새들이 열매를 먹고 씨앗을 퍼뜨리는 방식으로 번식한다. 머틀의 잎을 비비면 풋풋하면서도 달콤한 향기가 나는데, 이는 곤충을 유인하여 수분을 돕게 하는 생존 전략의 일환이다.
상록 관목으로서 머틀은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하여 삭막한 겨울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또한 빽빽하게 자라는 가지들은 작은 새들과 곤충들에게 훌륭한 은신처를 제공하며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과학적 분석 결과, 머틀 오일의 주요 성분은 1,8-시네올(유칼립톨), 알파-피넨, 미르테놀(Myrtenol), 미르테닐 아세테이트 등이다. 특히 시네올 성분은 유칼립투스에도 들어있는 성분으로 호흡기 정화와 거담 작용이 뛰어나다. 하지만 머틀은 유칼립투스보다 향이 부드럽고 자극이 덜하여 어린이나 노약자에게도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머틀의 역사는 인류가 식물을 통해 사랑과 평화를 염원해 온 과정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지중해의 신화 속에서 아프로디테의 꽃으로 시작된 머틀은, 성서의 하다사를 거쳐 영국 왕실의 부케에 이르기까지 순결하고 변치 않는 사랑의 상징으로 그 명맥을 이어왔다.
동시에 머틀은 척박한 땅에서 향기로운 잎과 열매를 내어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고 식탁을 풍요롭게 해 준 고마운 자원이다. 날카로운 가시도, 압도적인 크기도 없지만, 사시사철 푸른 잎과 은은한 향기로 수천 년간 인류 곁을 지켜온 머틀은 진정한 의미의 반려 식물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기억되는 그 향기처럼, 머틀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될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