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를 지키는 부활의 관목
마누카는 도금양과에 속하는 끈질긴 생명력의 관목으로, 뉴질랜드와 호주 남동부의 거친 환경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한국에서는 꽃의 생김새가 매화를 닮았다 하여 호주매화라 불리기도 하며, 잎의 형태와 향기가 티트리와 유사해 뉴질랜드 티트리라는 별칭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존재이다. 오늘날 대중들에게 마누카는 강력한 항균 작용을 자랑하는 고가의 꿀이나 피부를 진정시키는 화장품 원료로 각인되어 있다. 달콤하고 진득한 황금빛 액체 뒤에는 척박한 땅을 가장 먼저 개척하며 숲의 시작을 알리는 강인한 식물의 서사가 숨어 있다.
과거 마누카는 비옥한 목초지를 잠식하는 골칫덩어리 잡초로 취급받아 베어지고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던 식물이다. 그러나 원주민인 마오리족에게는 영혼을 지키는 수호목이자 숲속의 약국이었으며, 대항해 시대의 선원들에게는 괴혈병을 막아주는 생명수였다. 현대 과학이 그 가치를 재조명하기까지 마누카는 인간의 오해와 편견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식물이다.
마누카라는 단어는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고유 언어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마오리어로 이 식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누카로 불렸으며, 이 단어 속에는 단순한 식물 식별을 넘어 강인함, 유용함, 보호라는 복합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원주민들은 이 나무가 가진 단단한 물성과 치유력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이름 자체에 경외감을 담아 불렀다. 뉴질랜드 지명위원회나 초기 식물학자들 역시 이 토착 명칭을 존중하여 공식 명칭으로 채택하게 된 배경이 있다.
마누카가 서구 사회에 티트리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18세기 제임스 쿡 선장의 항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769년 뉴질랜드 해안에 도착한 쿡 선장과 그의 선원들은 장기간의 항해로 인한 피로와 괴혈병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현지에서 자생하는 마누카 잎을 채취해 끓여 마셨는데, 그 맛이 쌉쌀하면서도 향긋하여 대용 차로 손색이 없다고 기록했다.
뉴질랜드와 호주 등지에서는 지역과 문화에 따라 마누카를 부르는 명칭에 미세한 차이가 존재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원주민의 유산을 이어받아 마누카라는 이름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반면 호주 동남부 지역, 특히 타즈매니아 등지에서는 같은 종 혹은 근연종을 두고 꿀의 성상이 젤리처럼 굳는다는 특징에 착안하여 젤리부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예 시장에서는 꽃의 화려함을 강조하여 호주매화 혹은 마누카 머틀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며,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해 온 식물이다.
마오리족의 삶에서 마누카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영적인 동반자였다. 부족의 족장이 사용하는 지팡이나 의식용 도구를 만들 때 마누카 목재가 최우선으로 선택되었는데, 이는 나무가 지닌 신성한 기운이 악령을 쫓고 사용자를 보호해 준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또한 장례 의식이나 중요한 제례 행사에서 마누카 가지를 태워 그 연기로 공간을 정화하거나, 나뭇가지를 엮어 신성한 구역을 표시하는 경계로 삼기도 했던 역사가 있다.
마오리족은 마누카의 모든 부분을 생활 속 자원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나무껍질을 길게 벗겨내어 집을 짓는 방수 자재로 쓰거나, 빗자루를 만들어 주거 공간을 청소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목재는 화력이 매우 좋고 연기가 적게 나며 오래 타기 때문에 최고의 땔감으로 대접받았다. 특히 마누카 나무로 피운 불로 생선이나 고기를 조리하면 특유의 훈연 향이 배어 풍미가 깊어지는 효과가 있어, 요리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마오리 전사들에게 마누카는 생존을 위한 무기 그 자체였다. 타이아하라고 불리는 마오리족의 전통 긴 창은 주로 마누카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마누카 목재는 강철처럼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좋아, 전투 중에 쉽게 부러지지 않고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소재였다. 전사들은 자신의 무기에 마누카의 강인한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으며, 이를 통해 전쟁터에서의 용맹함을 증명하고자 했다.
서구 세계가 마누카를 처음 접한 것은 18세기 탐험가들에 의해서였다. 쿡 선장의 기록 이후, 유럽의 식물학자들은 이 독특한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식물 표본으로서 유럽에 소개되었으나, 곧이어 잎에서 나는 독특한 향기와 차 대용품으로서의 가능성이 주목받았다. 마누카 잎은 장기간 항해하는 배 안에서 차나 맥주를 끓일 때 향신료로 사용되면서, 뱃사람들을 통해 그 존재가 외부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된 19세기, 유럽 정착민들에게 마누카는 골칫덩어리 잡초에 불과했다. 그들은 양과 소를 방목할 넓은 목초지를 원했으나, 마누카는 베어내도 금세 다시 자라나 땅을 뒤덮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농부들은 마누카를 저주받은 스크럽이라 부르며 화전을 일구기 위해 숲을 불태우는 전쟁을 벌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며 마누카의 목재 가치가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벌목꾼들은 마누카 나무가 가진 뛰어난 내구성에 주목하여 도끼 자루나 울타리 기둥으로 가공하기 시작했다. 땔감으로서의 우수한 성능 덕분에 가정용 연료로 널리 유통되었다. 비록 꿀의 가치는 여전히 낮았지만, 목재로서의 실용성이 인정받으면서 마누카는 무조건 제거해야 할 대상에서 관리해야 할 자원으로 그 지위가 조금씩 격상되기 시작했다.
마누카는 생태적으로 매우 강인한 적응력을 지닌 식물이다. 해안가의 염분 섞인 바람부터 해발 1,800미터의 고산 지대 추위까지 견뎌낸다. 습한 늪지대는 물론 건조한 경사지까지 가리지 않고 자라며, 토양의 영양분이 거의 없는 척박한 땅이나 산성 토양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생명력을 보인다. 이러한 극한의 환경은 마누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항산화 물질과 항균 성분을 생성하게 만드는 테루아적 요인이 된다.
마누카는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는 식물이다. 나무 하나가 수백만 개의 가벼운 씨앗을 생산하며, 이 씨앗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싹을 틔운다. 뿌리는 흙을 단단하게 움켜쥐어 토양 침식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현대 원예에서는 햇빛을 좋아하는 마누카의 특성을 고려하여, 양지바른 곳에서 배수가 잘 되면서도 보습력이 있는 토양을 조성해 재배하는 기술이 확립되어 있다. 물을 좋아하면서도 과습을 주의해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지만, 조건만 맞으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특징을 가진다.
생태학적으로 마누카는 파이오니어 식물(선구종)로서 중요한 지위를 가진다. 산불이나 벌목으로 황폐해진 땅에 가장 먼저 들어와 그늘을 만들고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이렇게 조성된 환경은 후대 식물인 거대한 카우리 나무나 토타라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요람이 된다. 마누카는 수십 년간 숲을 지키다 거목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사라지는 이타적인 생애 주기를 가지며, 숲의 순환과 재생을 돕는 헌신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식물이다.
마누카의 역사는 척박한 황무지에서 피어난 생명의 드라마이자, 인류의 인식이 잡초에서 보물로 변화해 온 극적인 반전의 기록이다. 마오리족에게는 신성한 치유의 나무였고, 초기 정착민들에게는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현대인들에게는 자연이 준 최고의 항생제로 여겨지는 존재이다. 가장 먼저 숲을 여는 선구자적 생태 습성처럼, 마누카는 인류가 자연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식의 진화를 가장 앞서서 보여주는 지표 식물이다.
거친 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피워낸 하얀 꽃과 그 꿀 속에 담긴 치유의 힘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낸 생명력의 결정체이다. 마누카는 단순한 꿀 한 병이나 화장품 한 통이 아니라, 뉴질랜드의 대지와 역사가 빚어낸 시간의 산물이자 자연이 인류에게 건네는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위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