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성을 느낄 수 있는 야누스의 향기
향수 용어사전에서 가장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단어를 꼽자면 단연 머스크이다. 본래 머스크는 히말라야 산맥을 누비는 사향노루의 분비물에서 얻어지는 동물성 향료를 지칭한다. 원액 상태에서는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와 역겨운 동물취를 풍기지만, 희석과 숙성 과정을 거치면 그 어떤 향료보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살내음과 유사한 향기로 변모하는 물질이다. 고대부터 머스크는 이성을 유혹하는 향기이자, 권위를 나타내며, 악령을 쫓는 신성한 약재로 여겨졌다.
현대 사회에서 머스크는 화이트 머스크라는 이름으로 세탁 건조물이나 비누의 깨끗한 향기를 대변하기도 한다. 수렵의 역사에서 시작되어 가장 청결한 이미지로 정착하기까지, 머스크는 인류의 욕망과 윤리적 각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사향노루를 희생시키지 않고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향기를 즐기지만, 그 근원에는 수천 년간 인류를 매혹시켰던 야생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머스크(Musk)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 무스카(Muska)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의 원뜻은 고환 혹은 작은 쥐를 의미하는데, 사향노루 수컷의 배꼽 뒤쪽에 위치한 향낭(사향주머니)의 생김새가 고환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단어는 페르시아어 무슈크(Mushk)를 거쳐 그리스어 모스쿠스(Moschus), 라틴어 무스쿠스(Muscus)로 변형되며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동양에서는 이를 사향(麝香)이라 부른다. 사슴 록(鹿) 변에 쏠 사(射) 자를 쓴 사(麝)는 사향노루가 자신의 향기를 멀리 쏘아 보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는 사향 냄새를 맡으면 뱀이 피해 달아난다는 속설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도 있다. 중국 고문헌에서는 사향의 향기가 워낙 강렬하여 "바늘 구멍으로도 향기가 새어 나간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티베트와 히말라야 인근의 원주민들은 사향노루를 카스투리(Kasturi)라 부르며 신성시했다. 인도에서는 이 카스투리 사향을 최상급으로 쳤으며, 신화 속의 귀한 보물로 여겼다. 반면 서구 향수 산업이 발달하면서 머스크는 원산지에 따라 통킹 머스크(베트남), 카바르딘 머스크(러시아), 아삼 머스크(인도)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고대 인도에서 머스크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자 왕족의 향유였다. 고대 문헌에는 머스크를 이용해 몸을 치장하거나 침실의 분위기를 돋우는 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주로 약용으로 활용되었는데, 황실의 약재 창고에는 항상 최상급 사향이 보관되어 있었다. 진시황의 궁전 벽에 사향과 산초를 섞어 발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머스크는 권력자의 공간을 성역화하고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기능을 수행했다.
머스크는 워낙 고가이고 향이 강해 일반적인 식재료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으나, 극소량은 최고급 요리의 풍미를 더하는 데 사용되었다. 페르시아와 아랍의 왕실 요리에서는 디저트나 샤벳에 머스크를 아주 조금 넣어 신비로운 향을 입혔다. 중국의 약선 요리에서는 기력 회복을 위한 탕약이나 환약에 사향을 첨가하여 효능을 높였다.
한의학에서 사향은 개규(開竅) 작용, 즉 막힌 구멍을 뚫어주는 약재로 분류된다.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었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 혹은 타박상을 입었을 때 기혈 순환을 돕기 위해 처방되었다. 서양의 고대 의학에서도 머스크는 히스테리나 실신, 심장 질환을 치료하는 진정제이자 강장제로 쓰였다.
사향노루는 해발 2,600m 이상의 고산 지대에 서식하는 소형 유제류이다. 바위가 많고 숲이 우거진 곳에 숨어 사는 겁 많은 동물로, 송곳니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독특한 외모를 지녔다. 사향은 수컷 사향노루의 복부에 있는 향낭에서 생성되는데, 번식기가 되면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향기를 분비한다. 이 향낭 하나를 얻기 위해 사향노루를 죽여야 했기에, 인간의 탐욕은 이 동물을 멸종 위기로 몰아넣는 비극을 초래했다.
전통적인 방식의 사향 채취는 잔혹했다. 사냥꾼들은 덫을 놓아 사향노루를 잡은 뒤 배를 갈라 향낭을 통째로 도려냈다. 건조된 향낭 안에는 붉은 갈색의 알갱이들이 들어 있는데, 이것을 알코올에 담가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숙성시켜야 비로소 향료로 쓸 수 있는 팅크처가 된다. 갓 채취한 사향은 악취가 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드럽고 달콤한 향으로 숙성되는 발효의 미학이 담겨 있다.
1906년 독일의 화학자 발터는 사향의 주성분을 분리하는 데 성공하고 이를 무스콘(Muscone)이라 명명했다. 무스콘은 거대 고리 케톤 구조를 가진 화합물로, 아주 적은 양으로도 후각을 자극하고 오랫동안 잔향을 남기는 특성이 있다. 이 성분은 인간의 페로몬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본능적으로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거나 편안함을 주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과학자들은 이 무스콘의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훗날 인공 사향을 합성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인도에는 자신의 배꼽에서 나는 향기인 줄 모르고 그 향기를 찾아 평생 숲속을 헤매다 죽는 사향노루의 전설이 있다. 이는 내면의 깨달음이나 진정한 행복은 자신 안에 있다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힌두교 신화에서 머스크는 신들의 몸에서 나는 체취로 묘사되며, 인간계의 더러움을 정화하고 천상의 기운을 불어넣는 성스러운 물질로 묘사된다.
이슬람 문화에서 머스크는 가장 고귀한 향기이다. 금요일 예배를 드리러 갈 때나 시신을 염습할 때 머스크를 사용하는 것은 영혼을 정화하고 신에게 예의를 갖추는 행위이다. 천국의 강물은 우유와 꿀, 그리고 머스크 향기가 난다고 믿었으며, 아름다운 여인을 묘사할 때 "그녀에게서는 사향 냄새가 난다"라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사용했다.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 황후는 머스크광이라 불릴 정도로 이 향을 사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방과 옷, 심지어 정원까지 머스크 향으로 채웠다. 나폴레옹은 강한 향수 냄새를 싫어했지만, 조세핀의 머스크 사랑은 말릴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녀가 머물던 말메종 성은 그녀가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벽지에서 머스크 향이 배어 나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머스크의 역사는 인류가 향기를 탐닉해 온 욕망의 역사이자,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윤리적 선택을 내려온 반성의 기록이다. 히말라야의 눈 덮인 산비탈에서 피 냄새와 함께 얻어지던 사향은, 이제 최첨단 실험실에서 분자 구조식을 통해 깨끗하고 윤리적인 향기로 재탄생했다. 과거의 머스크가 왕족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오늘의 머스크는 누구나 셔츠 깃에서 느낄 수 있는 일상의 위로가 되었다.
동물성 향료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시절의 관능미와, 화이트 머스크로 대표되는 현대의 순수함은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머스크라는 이름 안에 공존한다. 비록 진짜 사향노루의 향기는 박물관의 유물처럼 희미해졌지만, 그 향기가 남긴 문화적 유산과 영감은 여전히 현대 향수 산업의 심장부에서 펄떡이고 있다. 머스크는 사라짐으로써 영원히 살아남은, 향기의 불멸성을 증명하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