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을 읽고
“후각은 가까이에서만 작동하지만 그만큼 강렬하다.”
책장을 넘기다 이 문장을 마주한 순간,
평소 향을 다루며 느껴왔던 어떤 감각이 정확히 짚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향은 멀리서 인식되지 않는다.
아주 가까이 다가왔을 때에야 비로소 감지된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가까이에서 맞닿은 감각은 오래 남는다.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고, 잊고 있던 기억까지 불러낸다.
『단 한 번의 삶』은 그런 식으로 읽혔다.
크게 울리지 않는데도 오래 남는 책.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 가까이에 와 있다.
별다른 설명도, 설득도 없는데도
어딘가를 건드린다.
이 책에는 삶의 격렬함보다,
삶을 살아낸 이가 조용히 곱씹는 문장들이 있다.
그 문장들은 아주 사적이지만
또 이상하게 보편적이다.
한 개인의 기억인데,
그 안에서 나의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그 장면들을 이번에 참여하는 향 프로젝트로 남기고 싶어졌다.
어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곁에 두기 위해서.
말로 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감각.
조용히 스며들어, 어느 날 문득 다시 떠오르는 방식.
향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지도에 축척이 있듯이
실제 세계는 이야기의 세계를 초과한다.
다만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뿐.”
이 문장을 다시 읽을 때마다
정리되지 않은 나날들이 떠오른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
돌이켜봐도 뚜렷한 이유가 남지 않는 감정들.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삶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구나 싶어진다.
내가 향을 다루며 가장 많이 의지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기록은 정리가 되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감정은 선형이 아니라 곡선이고,
그 곡선은 향처럼 흐른다.
직접 그리지 않아도, 맡아보면 알 수 있는 선.
그런 선들이 있었다.
『단 한 번의 삶』은 그런 곡선을 곱씹게 하는 책이었다.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게 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를 살피게 했다.
나는 책을 읽고 난 뒤 며칠 동안
메모도 하지 않고, 정리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머릿속에서 감각을 굴렸다.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지,
무슨 기분이 남아 있는지,
그것이 어떤 냄새와 닿아 있는지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곡선은
어떤 모양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그 선들을 만든 함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떤 충동과 어떤 운이었을까?”
마지막까지 오래 남았던 문장이었다.
삶을 복기한다는 건 어떤 결과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그냥 지켜보는 일에 가까운 것 같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 알 수 없어도,
그저 ‘그랬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
그 마음에서 향을 고르고, 조합하고, 정리했다.
이번에 참여하는 향 프로젝트는
어떤 정답을 제시하거나 하나의 해석을 전달하려는 게 아니다.
감정을 압축하고, 장면을 농축하는 일.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말보다 먼저 남는 건 결국 감각이다.
특히 향은 가장 오래 기억되는 감각이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 감각으로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
『단 한 번의 삶』은 무언가를 해석하거나 요약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곱씹는 태도’를 가르쳐준다.
서둘러 감정을 규정하지 않고,
한 문장 한 문장 다시 떠올려보게 한다.
그런 책을 읽은 뒤에 남은 잔상은
자연스럽게 향으로 이어졌다.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인 삶이 있다면
그 삶은 말보다 향에 가깝다.
말은 다 잊혀져도,
그 순간에 스며 있던 향은 오래도록 남는다.
이번에 참여하는 향 프로젝트도
그런 방식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설명이 되지 않아도,
그저 곁에 있었던 감각으로 남기를.
『단 한 번의 삶』이 그랬듯이.
『단 한 번의 삶』이라는 문장은 기억을 불러오고, 향은 그 기억을 머무르게 한다. 그 교차점에서 이번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에 닿기를 바랐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시간. 단 한 번밖에 지나가지 않는 순간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향이 남길 수 있는 건, 아무 말 없이 곁에 머무는 감정의 언어다.
삶은 언제나 지나가지만, 향은 남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