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골목길
서촌. 몇 년 사이에 꽤 익숙한 동네의 이름이 된 곳이다. 이제는 너무 때가 타서 관광지로 변해버린 반대편 계동과 삼청동, 인사동을 등지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동네.
사실 서촌이란 마을은 없다. 효자동, 통의동, 통인동, 체부동 다양한 자연마을이 모인 공간을 북촌의 익숙함을 피해 온 사람들이 '서촌'이라 불렀다고 한다. 북의 반대는 서가 되었지만,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서촌의 모습은 북촌의 모습과 별반 달라지지 않는 듯하다.
고즈넉한 마을, 시장 앞에 놓인 정자에 마을 노인들이 모여 부채질하며 쉬어가는 곳에는 이제 관광객이 몰려온다. 살아가는 공간이 아닌 머물렀음을 보여주는 공간이 되어간다.
그럼에도 아직 이 동네는 거대 자본이 들어오진 않은 듯하다. 오래된 서점이 있고, 작은 편집샵이 있고, 명소가 되어버린 빵집이 있다. 마치 제 각기 동네 주민들의 솜씨로 꾸며진 듯한 가게들이 보인다.
너도나도 앞장서서 숨어있는 가게라며 소개하는 통에 이제 숨어있는 곳은 남아있지 않은 듯 하지만, 아직까지는 도시 거리의 모습이 아님을 위안 삼아야 하는 걸까.
뉴스에 보이는 재개발 문제와 모범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꾸준하게 언급되는 공간을 보면서 마치 그것들을 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무관심을 벗어나 정말 옳은가에 대한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삶의 공간보단 스쳐가는 공간이 돼버린 그 골목을 우린 살아있다고, 건강하게 재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던 새 이름을 부여받으며, 우리가 혹은 젊은 예술가들 덕분에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고 말하는 이 시점에서 도시의 마을이 정말 이렇게 밖에 이어질 수 없는 걸까 하는 물음이 생긴다.
주말이면 관광객을 빼곡하게 태우고 서촌을 순례하는 마을버스는 월요일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텅 빈 채 허전함을 싣고 달린다.
서촌, 아니 통의동•통인동•체부동 일대를 방문하는 많은 발걸음이 스쳐간다. 누군가는 찾아오는 길임에 외롭지 않겠다마는 우르르 찾아와 담뿍 애정을 두고 떠난 그 자리가 더 크게 다가옴을 모르지 않다.
왜, 든 자리는 몰라도 빈자리는 안다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빈자리로 비어진 종로의 한 골목을 지나면서 살아있는 골목을 떠올려본다.
언젠간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