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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J Sep 12. 2016

바람에 나부끼는

너도 현수막을 지나쳤겠지.

잊혀지지 않는 선생님이 있다. 잊혀진다는 표현을 하기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선생님이니 썩 적합한 표현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난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수능을 볼 때까지 남들이 목매는 국영수보다 근현대사에 목매며 공부했었다. 모의고사 성적표를 들고 뛰어가면, 나지막이 그리고 덤덤하게 "국영수를 해야지"라는 선생님의 말에도 그저 웃으며 근현대사만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나 전화를 드렸다. 잘 지내시냐는 질문에 한창 원서를 넣은 아이들이 있다는 대답. 내 친구가 그랬고, 오빠가 그랬고, 나도 그랬던 수능. 수능이 마치 전부인 듯, 대학이 끝인 줄 알았던 그때 이 시기에 느낀 초조함. 아마 지금 누군가 느끼고 있겠지.

불행인 듯 다행인 듯 우리 학교는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참 많았다. 아등바등 나도 그 틈에 끼어들어가 보려다 일찍이 마음을 접었던 것 같다. 지금은 웃으며 수능 걱정 안 한 유일한 고3이라 말하지만, 수능 성적표를 받았던 날.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싶었다. 그땐 나도 대학이 단 줄 알았다.

막상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고, 공부를 하다 보니 세상은 무너지지도 않고 멀쩡하게 잘 돌아간다.


이맘때즘을 시작으로 우리 학교 곳곳엔 온갖 합격 소문과 현수막이 붙기 시작했던 것 같다. 좋은 대학을 간 누군가의 이름, 숫자로 변해버린 누군가의 노력, 그 조차도 보이지 못한 또 다른 누군가.

입학할 때, 누구나 되고 싶어 했던 현수막이 새삼 잔인했음을 깨닫는다. 매년 성적 때문에 눈을 감고, 좌절하는 아이들의 기사를 볼 때면, 그 책임이 나에게도 있는 듯싶은 미안한 마음이다.


고등학교 3년의 반 이상을 선생님이 지도했던 독서동아리에서 지냈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뭐 그런.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야자시간을 보낼 정당한 사유라고 말하며 온갖 이야기를 했지만, 아직도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도는 걸 보면, 우스갯소리는 아니었나 보다.

여러 책을 읽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많은 책을 읽은 건 아니었다. 그중 <순수에게>라는 책을 읽었다. 10대의 우리가 대학에 혹은 사회에서 선택할 수많은 가짓수에 대한 이야기. 참 쉬운 결정이고 당연했던 선택의 답지가 사실 학교를 떠나니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 됐다. 당장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을 보는 생각부터, 어떤 어른이 되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10대의 순수에게 보내는 책은 사실 그때의 세상 물정 모른 순수한 시절에만 읽고 새길 수 있기에 <순수에게>였나 싶다.


이제는 20대의 중반을 향하는 지금. 아직도 나는 젊지만 순수한가.  씁쓸하지만 아닌 듯싶다. 매일 아르바이트와 학업에 쫓겨다니고, 어느 순간 돈이 주는 기쁨에 취해 더 많은 돈을 쫓고, 처음 공부를 시작했던 그 마음을 부여잡으려 발버둥 치는 듯싶은 모습에 순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때, 책을 읽으며 당연한 일을 선택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웃어넘긴 내 모습을 떠올려보곤 한다.


이제 수능이 얼마 안 남았다. 백일도 채 남지 않은 수능일에 아이들은 저마다의 꿈과 고민과 두려움을 지고 책상에 앉아 현수막 속 주인공이 되려 하겠지. 사실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사회에서 그저 묵묵하게 이번엔 뉴스에서 전하는 아이가 없길 바라본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랫말에 이런 가사가 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
-브로콜리 너마저 <졸업>-


행복을 말하기엔 너무 바쁘고, 다급한 지금. 그저 힘내라는 말뿐에 해 줄 말이 없다. 미안한 마음조차 미안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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