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거장들을 만난다면

건축과 학생들과의 대화

by 정현재

Shadowship에 온 학생들과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학교 프로젝트에 AI를 적용해 본 경험은 있지만, 실제 회사 실무에서 이 기술이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하다는 이야기였다. 지난주 내가 했던 ‘AI는 우리의 친구’라는 발표 때문이었을까.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프로젝트나 툴을 소개하기보다는, 이들이 앞으로 어떤 직업적 확장을 그려볼 수 있을지를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지금의 선택이 곧바로 정답이 되지는 않더라도, 방향을 상상해 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느꼈다.


책을 쓰며 자주 머무는 생각이 있다. 동시에 실리콘밸리의 건축가들이 마주하는 다양한 직업적 확장성도 떠올린다. 건축은 언제나 그 시대가 가진 기술과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그릇이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공간지능과 Physical AI의 흐름 역시, 단번에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건축이 조금씩 역할을 넓혀갈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 보인다. 물리 세계를 인식하고, 경험을 축적하며, 판단까지 시도하는 기술의 등장은 건축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앞으로의 건축은 어쩌면 두 가지 흐름으로 서서히 나뉘어 갈지도 모른다. 하나는 새롭게 짓는 일, 다른 하나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다듬고 고쳐가는 일이다. 익숙한 구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기는 의미는 이전과는 조금 다를 가능성이 있다.


먼저 새롭게 짓는 건축이다.

신축 건물은 더 이상 완공과 동시에 역할이 끝나는 대상이 아닐 수 있다. 설계와 시공, 운영 전반에서 축적되는 데이터와 공간의 반응은 AI가 물리 세계를 이해해 가는 하나의 경험 축적 과정이 된다. 구조와 동선, 환경 조건, 사용 방식, 유지관리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결과물이라기보다 학습의 장에 가깝다. 사람이 없고 로봇만으로 운영되는 다크 팩토리를 떠올려보면, 지금은 산업 현장에 국한된 사례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새로운 기술이 작동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요구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술을 얼마나 많이 도입하느냐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변화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다. 설계 단계부터 공간을 기술이 ‘사용하는 장소’이자 ‘배워가는 장소’로 상정할 수 있는가. 이런 작은 시각의 전환은 실무자뿐 아니라, 앞으로 건축을 배울 학생들에게도 천천히 스며들 필요가 있다. 형태를 고정하는 행위에서, 미래의 공간지능이 학습할 조건을 조율하는 과정으로 건축의 역할은 확장될 수 있다. 같은 건축가라도 사람이 사는 공간을 설계하는 이가 있고, 미래에는 기술 공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이 생겨날 것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다른 한편에는 옛 것을 고치는 건축이 있다.

이 영역에서는 기술의 속도만큼이나 해석의 깊이가 중요해진다. 기존 건축물에는 시간의 층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 문화와 예술적 의도, 학술적 의미, 그리고 장소가 품어온 기억들. 이를 단순히 디지털로 복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의미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는 전문가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동시에 그 해석을 오늘의 기술과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 역시 필요하다. 디지털 트윈, 기록 아카이빙, 해석 가능한 데이터 구조는 과거를 지우지 않으면서 현재와 미래로 이어주는 조심스러운 매개가 된다. 이때 리노베이션은 비용이나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를 존중한 채 새로운 지능을 덧입히는 과정이 된다.


이 두 흐름은 서로 다른 방향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공통된 성질을 가진다. 시간에 반응한다는 점이다. AI 시대의 건축가는 형태를 만드는 사람에 머무르기보다, 지능이 자라날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고, 과거의 의미를 미래의 기술 언어로 조심스럽게 번역하는 사람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거장과 대가는, 우리가 익숙해 온 스타 건축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오늘 나와 이야기하는 이들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을까


하나의 질문을 해볼까 한다

미래의 건축의 거장들을 만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곧 이어질 대화가 기대된다.


지금의 아카데미아에서는 이 변화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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