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손끝으로 모형을 만들었다. 건축을 공부하고 실무에 뛰어들면서부터는 주로 레이저 커터나 3D 프린터 같은 기계에 의존해 왔기에, 미국에선 이그젝토, 영국에선 스칼플이라 불리는 작은 칼을 잡을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피지컬 모델의 물성을 사랑하면서도 그 과정을 손수 해내는 일에는 그리 흥미가 없다. 처음 모형을 만들었던 순간은 대학 1학년 때로 기억된다. 학교 근처의 작은 미술 가게에서 나무 막대, 얇은 판지, 아크릴판 등을 사 와 손수 조각했던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재료의 물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설계를 시작할 때, 우리는 우리 주변의 구조물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 구조가 어떻게 서 있는지, 어떤 재료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감각조차 희미하다. 하지만 모형을 만들 때 비로소 재료의 본질과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나무를 무엇으로 표현할지, 유리는 어떤 방식으로 재현해야 할지—모두가 새로웠던 기억이다.
영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캠브리지 대학교 건축학부 입학시험이 떠오른다. 당시 입학 과정은 두 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는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한 칼리지 교수와의 인터뷰, 두 번째는 건축학부 교수님과의 문제 풀이 형식의 시험이었다. 시험이 끝난 뒤 나는 오래된 벽난로가 있는 서재로 안내받았다. 그곳에는 두 개의 의자, 창문, 책상, 그리고 그림을 올려놓는 이젤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교수님께서 나를 맞이하셨다. 그날의 대화는 마치 건축의 가장 본질을 묻는 것 같았다.
오늘날 건축가는 대부분 컴퓨터를 이용해 삼차원 모델링을 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자인 결정을 내린다. 대지의 특성, 재료의 물성, 건축적 해결책을 고민하는 과정이 디지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대다. 하지만 손으로 만지고 직접 눈으로 바라보는 건축 모형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모형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공간을 느끼고 대지와 소통하는 건축가의 오른손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캠브리지 입학시험은 그 기본에 충실했던 테스트였다. 인터뷰에서 받은 문제는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고등학생에게는 다소 어려운 질문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하나의 입면도를 받았고, 그 입면이 동서남북 중 어느 방향인지 맞추라는 질문을 받았다. 4층짜리 건물의 입면도에는 수많은 창문들이 있었고, 그중 몇몇 창문에는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교수님은 "이 입면이 어느 방향인지,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으셨다.
건물을 설계할 때, 우리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향을 정한다. 나라, 기후, 시대, 용도, 태양과 바람, 그리고 문화와 의도가 모두 건축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향과 북향의 빛은 서로 다르고, 미술관의 경우 직접적인 빛을 피하기 위해 간접적인 빛을 끌어들여 창문을 없앨 수도 있다. 반면, 바람이 거세고 대지의 온도가 높은 곳에서는 1층을 필로티 구조로 만들고, 창 대신 그늘을 만들기 위한 테라스와 캐노피를 설계할 수 있다. 장식적인 시대와 모더니즘 시대의 건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대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나는 교수님께 블라인드가 내려진 입면의 그림자 위치를 설명하며, 주택이라는 가정하에 주민들이 남향의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블라인드를 내렸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질문은 당연해 보이는 것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능력을 보려 한 것 같다. 그때 나는 너무 1차원적으로 접근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여러 측면에서 그 상황을 바라보는 사고를 유도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