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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크리틱에 대하여

by 정현재 Feb 13. 2025

건축학도에게 ‘크리틱’이라는 단어는 그저 단순한 피드백의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무대이며, 동시에 공개 처형장일 수도 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교수들과 외부 심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학생들의 작업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준다. 하지만 그 방식과 분위기는 학교마다, 그리고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의 크리틱은 비교적 부드럽다. 물론 날카로운 질문이 오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학생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영국은 달랐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영국의 건축 크리틱은 냉정했고,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직설적이었다. 피드백이 아니라 공개적인 망신에 가까운 순간들도 있었다.


나는 학부 시절 영국에서 가장 충격적인 크리틱을 목격한 적이 있다. 두 번째 프로젝트 마감 날이었다. 강의실에는 신경이 곤두선 학생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교수들은 도면과 모형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날 크리틱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프로젝트를 거의 준비하지 못한 상태였고, 발표 자료도 부족해 보였다. 그리고 그 상황을 놓치지 않는 교수가 한 명 있었다. 그 교수는 솔직한 발언으로 유명했는데, 좋게 말해 솔직한 것이지, 실제로는 가차 없이 혹평을 던지는 사람이었다.


그 교수는 여학생의 디자인을 한동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이게… 강아지 꼬리 같네.”


순간 강의실이 정적에 휩싸였다. 농담인지 진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전혀 농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숨을 죽였고, 여학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교수는 한숨을 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할게. 넌 건축에 재능이 없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강의실 전체가 얼어붙었다. 보통은 교수들이 학생의 발전 가능성을 언급하며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배려조차 없었다. 크리틱이 끝난 후, 여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짐을 싸서 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건축 전공을 포기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크리틱이 단순한 피드백의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한 사람의 자신감을 짓밟을 수도, 혹은 다시 일어서게 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몇 마디 말이 누군가의 미래를 완전히 바꿔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물론 나 역시 혹독한 크리틱을 받아본 적이 있다. 때로는 도면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교수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한 번은 발표를 마치자마자 이런 말을 들었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뭘 배웠어? 아니, 뭘 하긴 한 거야?”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크리틱이 끝나면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 말들을 곱씹고 다시 고민했다. 때로는 교수의 말이 정당한 지적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단순한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 때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피드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시 나아가느냐였다.


건축을 공부하는 동안 수많은 크리틱을 겪었다. 어떤 날은 희망을 얻고, 어떤 날은 바닥까지 무너졌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혹독했던 순간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도, 업무에서도 난 여전히 크리틱을 받는다. 다만, 이제는 그 자리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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