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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을 넘어 데이터로 설계하다

3일 차

by 정현재 Feb 27. 2025

AI는 단순한 데이터 분석을 넘어 이제는 시각적 환경을 해석하고 이를 설계 아이디어로 변환하고 있다. 디자인이 더 이상 직관과 감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통해 측정되고, 분석되고, 반복적으로 개선되는 과정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연 AI는 공간을 어떻게 학습하고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AI의 학습을 어떻게 도울 수 있으며, AI가 디자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 우리 주변의 친근한 예시를 통해 살펴보자.


1. AI의 시각적 데이터 해석 방식


한 번 상상해 보자. 복잡한 쇼핑몰에서 AI가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사람들의 움직임을 지켜본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 자주 오가는 동선, 거의 쓰이지 않는 구석 등을 AI는 꼼꼼히 기록한다. 이런 데이터는 인간이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지만, AI는 순식간에 패턴을 찾아낸다. 실제로 2024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행사에서는 AI로 방문객들의 이동 경로를 분석해 매장 레이아웃 효율을 65% 향상한 사례도 있다. AI *룸 애널라이저(Room Analyzer)’로 불리는 이러한 시스템은 사람들이 공간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결국 디자이너는 이 통찰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중심으로 동선을 정리하거나 불필요한 혼잡을 줄이는 등 공간 배치를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데이터 기반 접근법은 기존의 직관적 설계 방식과 큰 차이를 보인다. 과거에는 베테랑 디자이너의 감(感)이나 경험에 기대어 “이쯤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겠지” 추측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실제 수치와 근거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AI가 “지난 한 달간 카페에서 창가 자리가 30% 더 많이 사용되었다”는 데이터를 주면, 디자이너는 창가 좌석을 더 늘리는 식으로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연구에서는 AI가 최적화한 공간이 혼잡도를 낮추고 이용자 만족도를 높였다는 결과도 있어, 막연한 직관보다 데이터에 기반한 설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AI가 때로는 설계자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패턴도 발견해 낸다는 것이다. 인간 디자이너로서는 간과하기 쉬웠던 숨은 이용 패턴을 AI가 밝혀내어, 기존 상식과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요컨대, 감(感)에 의존하는 디자인에서 증거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2.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AI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AI가 스스로 완벽한 디자인을 뚝딱 만들어낸다는 뜻은 아니다. AI가 제안하는 디자인을 인간이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여기서 인간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하다. AI는 데이터를 처리해 여러 가지 설계 옵션을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지만, 맥락과 감성을 이해하는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예를 들어 AI가 데이터만 보고 “이 건물은 유리와 금속으로만 채우는 게 효율적이다”라고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 디자이너의 눈에는 그 건물이 들어설 지역의 문화나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해야 할 필요가 보일 수 있다. 이렇듯 AI가 낸 초안은 훌륭한 출발점이 되지만, 마지막 다듬기에서 인간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AI에게 맥락을 가르치는 선생님 역할을 하기도 한다. AI가 제시한 디자인이 있다면, 디자이너는 “여기엔 지역 전통 문양을 넣어볼까?” 혹은 “사용자들이 이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색채를 부드럽게 바꿔야겠어” 하고 수정 제안을 한다. 이러한 피드백이 쌓이면 AI도 점차 어떤 디자인 요소가 문화적으로 중요한지 학습하게 된다. 현재의 AI는 아직 문화적 맥락이나 섬세한 분위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멋져 보이는 디자인을 내놓고도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는 무언가를 놓칠 수 있다 실제로 정서적 공감 능력이 부족한 AI는 공간이 주는 미묘한 분위기나 감동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공간의 스토리텔링이나 인간적인 따뜻함을 불어넣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인 것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AI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면 좋을까? 한 가지 방법은 AI를 아이디어 도출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I에게 “이런 이런 조건의 도서관을 설계해 줘”라고 하면 수십 가지 레이아웃을 생성해 줄 수 있다. 디자이너는 그중에서 흥미로운 방안을 골라 인간의 시각으로 현실성과 매력을 불어넣어 발전시킬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AI에게 피드백을 주며 함께 학습하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AI의 결과물을 보고 수정점을 알려주면, AI도 다음번엔 그 피드백을 반영해 좀 더 개선된 제안을 할 수 있다. 마치 신입 디자이너를 멘토링하듯이, 인간은 AI에게 디자인 철학과 문맥을 꾸준히 주입해 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AI와 인간의 합동 작업을 통해, 데이터에 기반하면서도 사람 냄새나는 디자인이 탄생할 수 있다.


3. AI와 디자인의 미래


이제 앞으로를 생각해 보자. AI가 건축과 디자인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미래에는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창의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먼저, AI가 잘하는 일은 분명하다. AI는 인간보다 빠르고 효율적이며, 복잡한 최적화 문제 해결에 능하다. 수백만 가지 대안을 비교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AI는 지치지 않고 계산해 낼 것이다. 구조적인 안정성 검토나 에너지 효율 시뮬레이션 등 방대한 데이터를 요하는 작업에서 AI는 유용한 조언자다. 또한 앞서 살펴봤듯이 사람들의 이용 패턴 분석이나 미래 예측 시뮬레이션에도 강점을 보여준다. 반면 AI가 어려워하는 일도 있다. AI에게는 디자인에 담긴 인간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공간이 주는 정서적 울림이나 문화적 의미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자칫하면 천편일률적이거나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대로 인간 디자이너는 작은 디자인 요소에도 스토리와 의미를 담아내고, 지역 사회나 사용자의 감정을 고려하는 섬세함이 있다. 요컨대 AI의 강점(속도, 효율, 데이터 통찰력)과 인간의 강점(창의성, 문화적 이해, 감성적 깊이)은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장점을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미래의 디자인은 어쩌면 AI와 인간 디자이너의 협업(collaboration)이 당연한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AI가 1차적으로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설계 초안을 제시하면, 인간 디자이너가 거기에 혼(魂)을 불어넣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디자이너는 반복적인 작업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 결정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미래의 디자인은 AI와 인간이 손잡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AI가 밑그림을 그리면 인간이 채색을 하고, AI가 데이터를 보여주면 인간이 이야기를 입히는 식. 이러한 파트너십은 디자이너의 역할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상시킬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기술과 창의성이 탠덤을 이룰 때, 기능적으로 뛰어나면서도 인간적인 감동을 주는 공간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 고유의 상상력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꿈같은 아이디어, 시대를 앞서가는 미학적 결정은 여전히 인간 디자이너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AI는 분명 디자인 세계에 새로운 도구이자 동료로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우리 눈앞의 공간들이 데이터와 직관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AI가 창의적인 파트너로 성장할 미래,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 디자이너가 보여줄 새로운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져만 간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과 인간의 조화이며, 둘이 손을 맞잡을 때 디자인은 더 풍부하고 놀라운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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