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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공간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4일 차

by 정현재 Feb 28. 2025

인간처럼 눈으로 깊이와 빛,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느끼는 대신, AI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렇다면 AI에게 공간을 “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마치 사진을 수많은 조각으로 분해해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계산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번 글에서는 AI의 시각적 학습 방식이 건축과 공간 분석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동시에 그런 AI의 한계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공간을 느끼는 감각과 AI의 분석력이 어떻게 다르며, 또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알아볼까요?


1. AI의 계층적 시각 시스템


AI는 이미지를 볼 때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신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서서히 시각 정보를 쌓아 올리죠. 마치 우리가 글을 읽을 때 글자를 보고 단어를 이루고 문장의 뜻을 파악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AI의 계층적 시각 시스템을 단계별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저수준 특징 인식: 가장 먼저 AI는 이미지를 작은 단위로 쪼개서 봅니다. 픽셀 하나하나의 색상, 밝기 변화를 살펴 경계선을 찾아내고 모서리나 윤곽 같은 기초적인 형태를 인식합니다. 예를 들어 방 사진을 준다면, AI는 우선 바닥과 벽을 나누는 선, 창문의 테두리, 가구의 윤곽선처럼 선과 면들을 검출하는 단계입니다. 아직 이 단계에서는 무엇이 소파이고 무엇이 창문인지 알지 못하고, 그저 “여기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만난다”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죠.


 • 중간 수준 특징 인식: 다음 단계에서 AI는 저수준 특징들을 조합해 객체와 패턴을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앞서 찾은 선과 색 덩어리들을 모아서 “이것은 의자의 형태”, “저것은 사람의 실루엣”처럼 사물을 식별합니다. 여러 특징이 모여 하나의 패턴이나 물체를 이룬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죠. 예를 들어, 둥근 모양의 연속과 네 개의 가는 막대 모양이 붙어 있다면 “의자”로 인식하는 식입니다. 이때 AI는 우리가 이미 알려준 사전 지식(훈련 데이터)을 바탕으로 사물을 분류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어릴 때부터 수많은 의자 사진을 보고 “아, 이런 게 의자구나” 배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 고수준 특징 인식: 사물을 알아본 다음에는, AI가 장면의 의미와 공간적 맥락을 이해하려 시도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단순히 눈앞의 물체들을 넘어서, 이 공간이 어떤 장소인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추측해 보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AI는 한 이미지에서 소파, TV, 러그가 보이면 “이곳은 거실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는 여러 책장과 책들이 빼곡하면 “도서관이나 서재인가? “하고 맥락을 유추하죠. 이처럼 고수준 인식 단계에서는 각각의 요소를 종합해 전체 그림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치면 방을 한눈에 둘러보고 “아늑한 카페 같다” 혹은 “회의실 분위기네” 하고 느끼는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공간 및 행동 인식: 마지막으로, 일부 발전된 AI 시스템은 공간 속 사람의 존재와 행동까지 예측하려고 합니다. 공간 자체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고 상호작용할지까지 고려해 보는 것이죠. 예를 들어, AI가 건물 내부 CCTV 영상을 분석한다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동선을 파악하거나, 특정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 패턴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또는 건축 설계 단계에서 AI 시뮬레이션을 통해 “여기 좁은 복도는 사람들이 지나가기 불편해할 것”이라고 미리 예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AI는 공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사람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을 추론하려 노력합니다.


요약하자면, AI의 시각적 학습은 낮은 단계의 감지에서 시작해 점점 높은 수준의 이해로 나아가는 계층적 구조입니다. 처음에는 점, 선, 면만 보다가, 차츰 의자, 창문을 알아보고, 나아가 거실 분위기를 파악하며, 결국에는 그 공간에서 사람이 어떻게 움직 일지까지 예상해 보는 것이죠.


2. AI의 한계와 인간의 역할


AI의 눈이 이렇게 발전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AI가 공간을 보고 분석할 수는 있어도,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공간에서 느끼는 미묘한 아름다움이나 분위기, 그리고 맥락은 여전히 기계에게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AI의 한계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볼까요?


 • 감성 인식의 한계: AI는 공간의 아름다움과 분위기를 느끼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방에 들어섰을 때 사람은 “아, 포근한 느낌이 드네” 또는 “시원하고 쾌적하다”처럼 감정과 분위기를 바로 느낍니다. 하지만 AI에게 이는 숫자와 데이터일 뿐입니다. 밝기는 몇 럭스(lux), 색온도는 몇 켈빈(K) 식으로 정보로만 인식하죠. 결과적으로 AI는 “이 공간은 어둡고, 목재 톤의 색이 많다”라고 분석할 수는 있지만, 아늑함이나 웅장함 같은 인간의 감성을 직접 이해하진 못합니다.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동이나 기분은 온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 맥락과 의미 해석 부족: 공간이 주는 감정적·문화적 의미를 AI는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건축물이라도 어떤 곳은 우리에게 역사적 의미로 다가오고, 어떤 공간은 특별한 추억이 깃들어 더 소중하게 느껴지죠. 그러나 AI는 그런 배경 맥락을 알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오래된 한옥 마루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함이나,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비치는 빛에서 오는 경건함은 AI가 데이터만으로 이해하기엔 벅찹니다. AI는 사진 속 한옥 기둥의 패턴이나 성당 창문의 색상을 인식할 수는 있어도, 그 공간이 우리 문화에서 어떤 의미인지, 사람들 마음에 어떤 울림을 주는지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맥락과 의미는 인간의 경험과 역사, 문화적 지식을 통해서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 환경적 요소 간과: AI의 분석은 주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됩니다. 그러다 보니 공간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요소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햇살이 비치는 창가의 빛의 따뜻함이나, 창문을 살짝 열었을 때 느껴지는 산들바람 같은 것은 숫자로 포착하기 어렵죠. 공기의 흐름, 소리의 울림, 온도와 습도의 미묘한 차이 등 사람의 오감으로 느끼는 환경적 요소들은 AI가 센서 데이터로 일부 측정할 수 있어도, 그것이 주는 체감적 느낌까지 이해하진 못합니다. 결국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의 거실”이 주는 포근함이나, “빗소리가 울리는 건물 내부”의 운치 같은 것은 인간이 직접 느끼고 평가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한계들 때문에 인간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AI는 공간을 숫자와 패턴으로 분석해 줄 수는 있지만, 그 공간이 주는 진짜 의미와 느낌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건축가나 디자이너는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참고하면서도, 최종적으로 사람들이 느낄 감정과 경험을 고려해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즉, AI의 차가운 데이터 눈과 인간의 따뜻한 감성 눈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이죠.


3. 건축과 AI의 협업 가능성


그렇다면 AI와 인간이 손을 잡으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요? 건축 분야에서도 AI는 점점 유용한 협업 도구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AI의 빠른 분석 능력과 인간의 창의성이 결합되면, 서로의 강점을 살려 더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죠. 몇 가지 협업 예시를 살펴보겠습니다.


 • 공간 분석과 시뮬레이션: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므로, 건축 설계에서 공간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물 설계안을 주면 AI가 수초 만에 일조량 시뮬레이션을 돌려 시간대별 햇빛이 어떻게 드는지 보여주거나, 공기 흐름을 계산해 환기 효율을 분석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건물 내부에서 자주 다니는 경로를 예측해 동선 계획을 최적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죠. 이런 작업들은 사람이 일일이 계산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AI는 지치지 않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실험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건축가는 AI가 제시한 분석 결과를 참고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설계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 디자인 보조 도구로서의 AI: AI는 단순 분석을 넘어 디자인을 제안하는 보조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엔 인공지능이 건축 평면을 생성하거나, 인테리어 스타일을 추천해 주는 실험들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에게 “이런 이런 조건의 집”이라고 입력하면 여러 가지 평면 배치 아이디어를 뚝딱 내놓는 식입니다. 또는 방 사진을 보여주면 어울릴 만한 가구 배치나 색상 조합을 추천해 주는 AI 도구도 등장하고 있죠. 물론 AI의 제안이 곧바로 완벽한 디자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발상의 재료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건축가는 AI가 생성한 다양한 옵션들을 보며 영감을 얻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즉, AI는 끝없는 스케치들을 자동으로 그려주는 부지런한 어시스턴트이고, 인간은 그중에서 최적의 해법을 선택하고 다듬는 감독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건축에서 AI는 힘써 계산하고 제안하는 조력자로 활약하고, 인간은 창의적 판단과 감성적인 부분을 책임지면서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AI의 눈으로 공간을 분석하면 효율성과 객관성을 얻고, 인간의 눈으로 공간을 바라보면 아름다움과 의미를 더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눈이 함께할 때, 비로소 기능적으로 뛰어나면서도 감동을 주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AI는 건축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도구가 되어 줄 뿐, 그 자체가 건축가를 대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만이 느끼는 공간의 이야기와 정서, 그리고 창의적인 상상력이 있기에, AI의 분석 결과는 비로소 살아있는 디자인으로 완성됩니다. 앞으로도 AI와 인간이 협업하여 만들어낼 건축의 미래가 더욱 궁금해지지 않나요? AI의 차가운 데이터 속 통찰력과 인간의 따뜻한 감성이 만나, 우리에게 놀랍고도 풍부한 공간 경험을 선사해 주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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