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의 건축가
2010년 처음 그래스호퍼와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코딩, 컴퓨터 언어, 알고리즘.
그때 나는 솔직히 겁이 났다.
사무실에는 이 기술을 너무나도 잘하는 사람들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외면했다. 감각과 연필로도 충분히 디자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인 지금도 건축설계에서 여전히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하고 있다. 돌아보면, 15년 전 그 변화를 외면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배우고 사유했다면 내 여정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변화의 압력’을 전신으로 느끼는 순간을 맞는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직감하는 때. 그때 나는 내가 세상에 던져야 할 질문도, 기술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 왔다.
지금 나는 실리콘밸리에 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건축을 공부했고, 유명한 설계사무소에 들어가고 싶어 했으며, 그저 더 나은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직장을 구한 것이 시작이었다.
모든 것은 아주 단순했다. 그저 일을 하기 위해, 배움을 이어가기 위해 이곳에 왔을 뿐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마법의 세계 오즈에 떨어진 도로시처럼, 전혀 다른 기준과 속도로 움직이는 세계에 도착한 기분. 이곳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술이 선택이 아니라 전제조건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 자율주행, 스타트업, 빅테크
그리고 인공지능.
다행히 나는 생성형 AI를 회사에서 가장 먼저 실무에 적용해 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변화의 압력‘
지금 나는 회사 내에서 글로벌 AI 윤리 전략을 제안하는 EAC AI Ethics Initiative를 맡고 있다. 건축 산업에서 기회를 찾는 AI 스타트업들의 자문도 하고, 새로운 기술이 도시와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함께 고민하는 자리에 초대되기도 한다.
컨퍼런스장의 스탠퍼드의 로켓 공학자들 사이 나는 여전히 가장 평범한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맡겨진 질문이 아니라 내가 직접 준비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거의 나는 두려움 때문에 기술로부터 멀어졌지만, 그때부터 나는 명확한 태도를 갖기로 했다. 두 팔 벌려 이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개발자가 될 필요는 없고, 나 역시 엔지니어가 아니다라는 것:
나의 은사께서는 늘 이렇게 조언하곤 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건축가들이 머무는 동네에 자리 잡아라. 몇 년 뒤 그곳이 가장 먼저 ‘핫 플레이스’가 된다.”
그 말의 뜻을 나는 뒤늦게 이해했다. 건축가의 시선은 유행을 쫓아가지 않는다. 대신, 도시가 어디로 움직일지 미세한 결을 먼저 감지한다. 그들에게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질문이 시작되는 무대다.
Cedric Price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이 답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묻고 있었을까?”
나는 지금 그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고 있다. 기술이 세계를 다시 쓰는 시대일수록 건축과 도시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가. 공간의 윤리와 구조는 어떤 방식으로 다시 설계되는가. 우리는 무엇을 보지 못한 채 지나가고 있는가.
나는 공부하고, 사유하고, 질문하고 있다. 변화하는 세계를
내 방식으로 다시 읽어내기 위해서다. 그 시선은 어쩌면 인공지능 연구자 혹은 개발자와는 다를 수도 있다. but, 세상은 하나의 시선으로만 해석되지 않는걸 우린 다 겪어보지 않았는가.
AI 시대의 건축과 도시도 마찬가지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단지 우연히, 이 거대한 흐름의 시작점에 도착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기술이 답이라고 말하는 이 시대에, 건축가의 시선이라는 나만의 질문과 태도를 가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