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캠퍼스
전쟁 같았던 6주가 끝났다.
AI Campus, 그리고 디지털 의료산업단지. 결과가 나왔고, 아마도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마음 한 편의 의문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번 공모전이 유난히 어려웠던 이유는 시간이 촉박해서만은 아니었다. 더 본질적인 난점은 다른 데 있었다. 발주처도, 기획단도, 그리고 우리 건축가들조차 정작 ‘인공지능 산업단지’에 어떤 프로그램이 들어가야 하고, 어떤 공간이 필요하며, 그 운영이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상은 저만치 앞서가 있는데, 우리는 왜 자꾸만 과거의 성공과 경험이 만든 형태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 할까. 그것은 역량의 부족이라기보다, 어쩌면 건축이 비즈니스가 되는 순간 피할 수 없는 ‘리스크 관리’의 언어 때문일지도 모른다.
의료와 AI, 스타트업과 산업. 이 조합은 언제나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최신 의료시설의 모듈을 기반으로 한 ‘지식 설계’가 필요하다는 말은 분명 맞다. 표준화된 클린룸, 실험실 동선, 데이터 인프라의 요구조건. 이런 것들은 이미 검증된 지식으로 쌓여 있다. 하지만 그 모듈이 곧바로 정답이 되진 않는다.
우리는 또 “가변형’이라는 단어를 붙잡는다.
성장하는 스타트업, 바뀌는 연구 방식, 유행처럼 출렁이는 투자 사이클. 내일의 팀 규모도, 연구의 방향도, 협업의 형태도, 어쩌면 입주 기업의 생존조차 확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설계의 첫 수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무엇을 짓는가”보다 먼저 “무엇이 바뀔 수 있는가”를 짚어보는 일.
유럽의 사무소들은 겁 없이 아이디어 공모임에 충실하다는 느낌을 준다. 제안처럼 자율주행차가 다니고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미래형 도시여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 친화적이고, 쾌적하며, 사람들이 오래 머물고 싶어지는 ‘최선의 일터’여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현실은 늘 질문에의 대답을 한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우리는 결국 기후에 대한 명확한 대응과 과거의 성공을 답습하는 안전한 선택을 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비즈니스니까. 책임을 져야 하고, 일정과 예산과 승인 체계 속에서 ‘그럴듯한 미래’는 종종 ‘검증된 과거’에 기대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은 남는다. 만약 이것이 온전히 나의 프로젝트였다면, 나는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미래 인공지능 산업의 요람을 설계한다는 건, 정답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만들어내는 일에 더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질문을 할 수 있는 공간에 필요한 것은, 결국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구조”다.
건축적 언어로 번역하면 그것은 미완성이다. Wabi-sabi, 완벽히 정해진 프로그램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다시 읽힐 수 있는 여지. 직선으로 최적화된 동선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치고 멈추게 되는 구간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와 미완성이 허용되는 분위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드는 공간은 어쩌면 가장 부족한 곳이어야 할지 모른다. 기술이 모든 것을 채우려 할수록, 공간은 오히려 더 비워져야 한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가능성들이 들어올 틈을 남겨두기 위해서.
그리고 AI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성된 청사진이 아니라 어쩌면 비움이 아닐까.
앞으로 프로젝트는 어떤 모습의 건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