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내가 먼저 다가갈게. 어디든
우리는 어쩌다 시작된, 하지만 항상 끝이 있는 삶을 산다. 어떤 것이든 시작만 있는 것도 없으며, 끝만 있는 것도 없다. 시작의 설렘, 끝의 상실감을 느끼거나, 시작의 긴장, 끝의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중 우리가,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끝의 상실감.
필자는 상실감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시작의 설렘과 긴장, 끝의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가길 희망했다. 그러나 나를 반긴 것은, 내 인생에 주어진 것은
끝이 없는 상실감.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지만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동반자가 되어버린 감정. 그래서 생겼던 나의 여러 섣부른 신념. '행복은 나누면 두 배가, 슬픔도 나누면 두 배가 된다.' 그렇기에 기쁨만 나누자던 나의 어리석은 철학.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상처 받는 와중에도 사람이 너무 좋았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되었다. 하지만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한 고통과 상실감. 그것은 '사람'을 무섭게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끝나지 않은 내 삶. 내 가치관을 처참히 무너뜨린, 하지만 기억해야만 하는 그녀의 죽음. 왜냐하면 그녀는 내 울타리로 들어오게 된 첫 사람, 첫 친구, 첫 동반자였다. 나의 인간관계의 시작을 열어준 소중한 내 친구. 그러나 내 친구의 이야기를 나 홀로 쓰고자 한다.
시작. 혹은 도전.
나에게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단어였다. 좋았다.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알아가는 즐거움을 뜻하는 단어. 무엇이든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좋았다.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을 때, 바로 지금 해보자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 그래서 후회 없이 살았다. 나의 과거는 때론 아프지만 항상 나의 자부심이었다. 그 어떤 과거로 돌아간들, 나는 똑같은 선택과 행동을 할 것이고, 그 어떤 과거도 최선의 선택과 최고의 노력을 했다고 자부했다. 고작 25년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그런 내가 “시작”이 무섭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로.
“죄송합니다.”를 외치던 그 날 이후로.
친구의 영정사진이, 친구의 이름 앞에 붙은 故라는 한자가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죄송하다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연신 나오는지. 그 말밖에 튀어나오지 않던, 과거의 나를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죄책감만 만들던 그 날.
그래야만 했던 그 날.
술 때문에 그녀가 사고가 난 것이기에, 나는 한동안 술에게도 기댈 수 없었다. 홀로 외로웠고, 또 외로웠다. 돌이켜본다면 그때의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말이든, 어떤 행동이든 나는 후회한다. 그 어떤 것을 하였어도 후회만 남는다. 미친 듯이. 아주 미친 듯이. 차라리 온몸에 칼이 박히는 것이 낫겠다고 여기는 순간들이 생겼다. 어떤 경험이든, 무서워도 행하는 도전이 삶이 힘이라고 여기던 나에게 친구의 죽음은 경험해도 아무런 힘도, 자부심도 되지 않는 공포와 불안의 경험이 되었다.
그렇게 7개월을 넘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죽음 뒤에, 상실 뒤에 이루어져야 하는 애도, 흔히들 ‘죽은 이를 애도하다.’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죽은 이를 잃은 나를 애도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이는 죽었고, 나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관계를 잃은, 사람을 잃은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은 ‘나’다. 그러기에 모든 애도는 살아있는 자를 위한 것이었다. 내가 배우고, 겪은 애도는 그러했다.
그래서 나는 애도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위하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그녀를 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를 위하는 애도는 없었다. 눈을 뜨는 그 순간순간마다 사후세계라는 것을 믿지 않고, 없다고 말하던 나는 사후세계라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문처럼 외웠다. 그때 깨달았다. 사후세계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개념이라는 것을. 그래서 모든 애도를 자연스럽게 하다가도 멈추고, 멈추다가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주 이기적으로 나를 위한 애도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녀가 좋아했던, 그녀가 사랑했던 나를 위해. 그녀를 떠올리고,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이 아파도 하고 싶은 것이기에, 그 아픔마저 사랑하고 싶어 졌다. 그녀가 살아갔다고, 이 세상에 의미 있는 삶을 살다가 갔다고 적어도 나는 친구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모두가 아니라 해도, 나에게만은 의미 있었다고. 그게 내 인생의 절반을 같이 보낸 친구에 대한 예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러기로 시작했다.
나의 애도의 시작을 알리는 이 글을, 훗날 책으로 엮을 그 모든 글을 그녀에게 바친다.
나와 같은 슬픔을, 고통을, 아픔을, 외로움을 겪어야만 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그 모습을 그녀가 보고 웃음 짓기를 간절히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