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짝사랑을 못 끝냈습니다.

poison crushing

by 노을

죽고 싶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어 버린 친구가 생겨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죽음이 무섭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고통을, 이런 모든 아픔을 내 친구가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그 짧은 찰나에 내 친구는 울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는 내가 겪은 이런 아픔을 그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죽고 싶다고 매일 호소하고, 죽는 시도까지 하였으니까요. 나는 그런 짓을 이미 친구에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은 당연하였습니다. 타인의 눈에 눈물을 나게 했는데, 나는 피눈물을 흘려야 정당한 것이니까요. 나는 아파야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신에게 물었습니다. 묻고 또 물었습니다. 왜 내가 아니고, 그 아이냐고. 나를 데려가라고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또다시 죽음을. 내 곁에서 살아있는 자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내 주변은 필요 없어 보였습니다. 나는, 내가 필요한 곳은, 그저 그 아이 곁뿐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내가 그 아이를 필요로 여겼습니다.


너무나도 필요했습니다. 저는 힘들었기에, 그래서 그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신에게서든, 그 아이에게서든. 벌을 받기 위해서 살아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살아있습니다. 그것이 온전히 내가 나를 책임 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괴로워하는 일, 후회하는 일, 걱정하는 일, 외로워하는 일, 그것들은 온전히 저의 몫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하기 위해 살아있어야 했습니다. 그 정도의 고통은 느껴야 했습니다. 그래야 이기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죽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렇게라도 그만 힘들고 싶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그 아이가 보고 싶고, 그리워서, 외롭습니다. 그 친구가 있을 때도 외로웠고 힘들었으나, 친구가 없으니 괴롭고 아픕니다. 故종현이 떠올랐습니다.


“외로움과 괴로움은 기억 하나 차이”


라는 그 말이 뼈 곳곳에 새겨지는 날들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상처가 치유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친구가 돌아오지 않는 한 말입니다. 제가 살아있는 한 계속되는 고통이고 아픔일 것입니다. 괴로움일 것이고, 외로움일 것입니다. 그것이 그 친구가 바라지 않는 것이라도, 그 친구가 그런 나를 바라보는 것을 힘들어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그만큼 소중하고, 필요하고, 특별하고,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여전히 죽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언제 다시 죽고 싶다고 시도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저보다 먼저 떠난 친구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살아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글을 쓰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