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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Dec 20. 2020

제가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친구, 그 어려운 관계가 나에게 너무 소중했다. 없다면 비슷한 관계라도 있어야 했다. 남발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사람들을 친구라고 불렀다. 그렇게 친구를 찾고 있었다. 소중한 친구, 친한 친구, 편한 친구를.      


 매 학년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하던 말이 있다.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는 말. 그러나 내 오랜 소망은 매년 놀림거리가 되었다. 친구가 한 명도 없냐는 질문도 받았고, 왕따냐는 물음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꺾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도 내 소망은 그대로였다.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애꿎은 밖에서 찾았다. 그 시절 내게 이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 오랜 시간 동안 찾을 수가 없었다.     


 친구에 내가 집착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닌 내 나이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큰 교통사고로 인하여 1년을 쉬고 다시 학교에 복학하여서 또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채로 학교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 친구는 단순히 나이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다. 친구란 나이 상관없이 그저 마음이 맞는 친한 사람으로 새겨졌다. 어찌 보면 커서야 느낄법한 친구의 개념을 어린 나이에 일찍 경험하게 되었다.     


 나이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같이 놀 수 있고, 같이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다. 그래서 한 살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동생들에게 다가갔다. ‘한 살’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중요했던 시기에. 그래서 나이가 많다는 것을 먼저 알리지 않았고, 친해지고 나서야 밝히는 사실이 되곤 했다. 혹여 나이로 인하여 친구를 사귀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까 봐. 오히려 나에게 나이는 강점이 아닌 단점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언니나 누나의 취급을 받는 것이 친구로서 다가가기 어려운 것임을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친구들과 연락을 할 때면 언제나 만개한 미소를 띤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종종 묻곤 한다. 누구랑 연락하길래 이렇게 재미있냐고. 친구랑 연락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즐거웠다. 재미있었다. 언제나 나를 흥미롭게 했다. 남과 소통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다. 친구란 연락만으로도 즐거운 사람이었다. 그것이 누구든 나는 항상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친구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배우면서 처음 느껴본 것은 우정이고, 두 번째로 느낀 것은 우정에 대한 배신이었다. 친했던,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 내 물건들을 훔치기 시작했고, 결국 나에게 들켰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사람을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방어막을 치기 시작했다. 나를 함부로 대하게 둘 수 없었다. 그러니 외로워졌다. 아무도 곁에 남지 않았고, 심심해졌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보고 나니 소통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나는 상처를 택했다. 나에게 이로운, 바라는 상처를 택했다. 내 욕심이라도 채워야 아파도 버틸 수 있었다.     


 넓고 깊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던 나는 친구에 대한 욕심은 많았다. 그래서 모두와 깊은 관계가 되고자 노력했던 때가 있다. 서로가 즐거운 소통을 원했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친구관계라 여겼다. 하지만 이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머지않아 깨달았다. 특히 나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나를 좋아해주기를 바랐다. 아니 정확히는 좋은 사람인 척하는 착한 사람이라도 되길 바랬다. 언제나 좋은 친구이길, 언제나 좋은 사람이길 바랬다. 본래가 따듯하고, 노력 없이 재미있고, 언제나 착한 사람. 그래야 그런 친구들이 나를 맞이해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친구가 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내가 바라는 모습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성으로 돌아왔다. 냉정하고, 재미없고, 못된 사람으로. 인정해야 했다. 꾸미지 않아야 했다. 그랬더니 나는 가면이 아닌 나로서 있어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할 사람이 생겼다. 그 사람들이 바로 남아있는 내 사람들, 바로 친구였다. 남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줄 수 있었다.      


 친구에 욕심을 가졌던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내게 가족은 첫 인간관계였으나, 서로 마음을 나누는 관계는 아니었다. 마음을 나누던 첫 관계는 친구였다. 항상 사람에 관해서, 마음을 나누는 것에 관해서 목이 말랐다.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그것을 가족이 채워주지 못했다. 그래 본 적 없는 가족은 일방적인 사랑만을 내주기 바빴다. 한 번도 남과 통해 본 적 없던 내 마음은 기댈 곳을 찾고 있었다. 그로 인해 과거에도, 현재에도 나는 친구를 바라는 중이다.      


 내 첫 친구는 대학교 때에 발견했다. 내 곁에 있었던, 나를 좋아해 주던 친구가 보였다.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그러고 나서 나는 똑같은 인간관계를 유지했으나 더 이상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았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을 나눌 줄 알던, 일상을 같이 보내던 사람이 드디어 생겼다. 이제는 친구 관계에 목매지 않았다.


 그 어려운 것을 자꾸 해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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