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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un 14. 2023

end 와 and 사이에서의 선택

8개월, 변화

맞이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던 23년을 맞이했다.

게다가, 절반이 지나간다.


작년의 마지막 글 이후로, 내게는 수없이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여전히 단어와 문장으로 적히는 것이 너무 가볍게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보자면


CRPS 2형 진단을 받았다. 희귀 난치병으로 분류된 이 질병은 산정특례를 받아, 병원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어이없던 숫자의 입원 영수증을 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었다.


모든 신경주사 치료가 효과가 없어서 케타민 주사치료를 시작했다. 마약과 향정신성 약품을 주사로 주입하여 통증을 경감시키는 치료는 위험하지만, 다행히 차도를 보였다.


통증은 오른손뿐만 아니라 왼손으로도 옮겨가기 시작했다. 보호대를 끼지 않으면 왼손도 쓸 수 없을 만큼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은 한동안 더 심해졌고, 다른 신체로 번지는 듯 보였다.


내 고통을 목격한 모두는, 시험을 포기하라고 했다. 오기고, 무리고, 고집이고, 객기라고.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매일매일 죽음을 바라고, 또 바라면서 시험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오기를, 무리를, 고집을, 객기를 부려 원서접수를 했고, 시험장에 갔다. 시험을 봤다.


시험을 보기 위해서, 단순히 앉아서 손을 쓰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약 8시간을 위해 마약성 진통제에 해당하는 아이알코돈 7알과 저니스타 2알을 먹었다. 그 정신에 시험문제를 읽고, 풀고, 썼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독한 인간이라고 느낀다. 


이건 그저, 1차 시험이었다. 1차 시험 결과도 모른 채로 2차 시험을 준비했다. 타인보다 경쟁상대가 없는 전형을 쓸 수 있지만, 사람도 아닌 통증과의 경쟁에서 나는 매번 졌으니까,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차 시험 결과가 뜨기 전 날, 나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지금 떨어지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체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아주 다행히, 1차는 붙었다. 마저 2차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몸은 최악을 달려갔다. 계속 말을 해야 하는 2차 준비는 몸을 더 망가트렸고, 소화를 못 시키는 것은 나중이었고, 무엇을 먹든 다 토했다. 매일 구역감을 느꼈고, 약을 먹는 것도 힘들었다. 여기서 통증을 말하지 않은 것은, 통증이 없어서가 아니라 통증은 기본값이었다. 스터디를 하다가도 마약성진통제를 먹고, 중간중간 응급실을 가서 모르핀을 맞고, 어느 날은 아파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건 나만의 사정이었다. 같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스터디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결국에는 스터디를 유지할 수 없어, 중도에 나와 혼자 준비했다. 2차 시험장에 들어가고 싶어서, 그만두었다. 정말, 이러다가는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 쓰러지거나, 시험 도중 쓰러질 것만 같은 몸 상태였다.


2차 시험을 봤다. 통증은 여전히 있었다. 대학교 주변에서 자취하던 나는, 짐을 쌀 여력도 남지 않아 원룸이사를 불러 본가로 왔다. 시험이 끝나서, 억울해서, 아플 것을 알면서 여행도 갔다. 


'진통제를 먹으며 시험도 봤는데, 노는 것은 왜 못해?'


여행 가서 당연히 아팠다. 같이 간 친구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나름 잘 놀았다. 2차 결과가 나오는 날이 다가왔다. 합격했다. 생각보다 안 기뻤다.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앞으로 어쩌지?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컨디션인가?'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병가와 병휴직을 쓰기로. 다행히 공무원이라, 신규여도 병가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휴직 이후 복귀할 자리도 있었다. 죄송함을 무릅쓰고 발령확정 후 사전인사하는 전화에서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병가와 병휴직을 모두 사용하여 1년의 휴직신청서를 작성하고 현재 나는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끝이라 생각했던 순간들에서, 그다음을 생각하지 않았던 행동들이 내게 길을 만들어 주었다.

단순히 이 1년은 통증을 치료하는 시간이라는 생각뿐이었는데, 


다른 상담과 결국 똑같을 것이라 여겼던, 새로운 상담사와 하는 심리 상담은 현재 너무 복잡하고 새로운 변화들을 이끌어주고 있어 처음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면서 몸의 이곳저곳 아픈 곳들을 병원을 가게 되었고, 고막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도 20년 만에 알게 되어 내일 입원을 앞두고 있다. 

많이 병들어 있는 몸을 키우기 위해 운동도 새롭게 시작했다가, 잠시 중단했지만, 결국에는 운동도 지속할 것이다.


몸과 마음이 이때다 싶어, 대기표를 들고 나를 봐달라고 줄 서 있다. 눈, 소화기관, 귀, 팔, 허리, 어깨 등등 정말 병원의 모든과를 돌고 있다. 1년 내내 병원만 다녀도 치료를 다 못할 것 같다. 통증은 제대로 손보지도 못한 채로 벌써 6월이다. 1년 더 휴직을 쓸 수 있기에, 2년을 채워 휴직을 하려고 한다. 올해는 치료를, 내년에는 치유를 하고, 복직하고 싶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기에, 더욱 내가 정상궤도로 올라온 상태에서 복직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쉬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배운 적이 없어서 쉬는 것조차도 어렵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다. 너무 느려 답답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힘들지만, 처음으로 나는 지금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살아남기 급급했던 나를 바라보면서.


이 브런치의 글도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모두 지울까도 고민했다. 아니면 글을 유지한 채 수정만 할까도 고민했다. 과거의 내가, 글이 부끄러운 것도 많을 것이지만, 어쩌겠는가. 그것도 나였을 텐데, 조금만 부끄러워하고, 리뉴얼해서 이 계정도 살려볼 것이다.



반가워요, 우리 다시 자주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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