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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May 21. 2024

아플 수밖에 없기에 아프기 싫다는 마음이 싫었다.

저 지금 힘들어요.

상담 초반에는 전혀 감정이라고는, 욕구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아프기 싫다고도, 아프다고도 못했다.              


아프다고 말한들 아프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아프다고 말하면 모두가 불편해하니까, 

아프다고 말할수록 나도 지치니까

이것 말고도 핑계는 넘치게 있었을 것이다.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안 아픈 상태이고만 싶었다. 너무나도 절실히. 아프기만 한 세월이 너무 길다 보니까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것이 나에게 기본값이어야 하는 현실에 너무 우울해지니까. 안 아플 수 있다는 마음은 욕심이고, 판타지며,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이 말이 낯설다.


지금 보면 나는 아프다고 말할 상대가 없었다. 내 부모는 나보다 더 힘들고 아파했다. 그들을 위로하느라 바빴다. 내 친구는 아프다고 말하기에는 불안했다. 사고 당시 나를 괴물로 보던 친구들을 너무 선명하게 기억한다. 내 X-상담사에게 말하기에는 내가 너무 아팠다. 아파서, 관계의 상처까지 받아 이것보다 더 아프기 싫었다. 이제는 그냥 아파하는 나와 있어 달라고, 내가 지금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면 D양은 아파하는 나를 보며, 아플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안 아픈 것이 더 이상한 거예요."


아픔을 대신 가져가 주지는 않지만, 외로움은 안정감으로 바뀌게 되었다. 아픔과 외로움이 뒤섞여 소용돌이 속에서 드디어 나왔다. 이 말이 첫 변화였다. 속이 좀 명료해졌다.             


아파요. 아프다구요. 

저 지금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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