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한 번 바라보는 게 이리 어려웠던 걸까

노을을 잊었던 하루들.

by 노을

내가 먹는 그 약은 왜 마약성 진통제인가? 처음 이 약을 맞이할 때, 나는 그다지 두려움이 없었다. 당장의 통증을 줄여주는데 이 약이 필요하다고 했고, 나는 의사의 말을 믿었다. 아니 믿었다기보다는 이 약이 최후의 수단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고, 통증은 어마어마해졌다. 마약성이라는 말은 내게 오히려 희망이었다. 저 정도의 약 이면 내 통증을 가라앉혀 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


약은 어마어마한 효과를 주었다. 난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는 듯했다. 그 일상에는 임용 준비도 포함이었다. 얼마 안 지나 다 물거품이었지만. 그 처음을, 나는 잊었다. 내가 약을 먹은 토요일은, 그 처음을 기억나게 해 주었다. 팔이 안 느껴졌다. 저릿함이 사라졌다. 뭔가가 닿아도 찌릿거림은 줄어들었다. 뜨거워 미치겠는, 끓는 물에 넣어버린 통증도 줄어들었다. 돌발통은 줄어들고, 약해졌다. 그것은 오늘까지도 유지되었다. 만능이라고 느낄 만큼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난 그저 마지막만 기억했다. 점점 늘어나는 약의 개수, 먹어도 점점 짧아지는 약의 지속시간, 쓸데없이 생기는 부작용. 벅찼다. 결국 끊어야만 했다. 아파도 참았고, 참다 보니 익숙해졌지만 내 예민함과 불쾌감은 24시간 달고 살아야 했다. 그런 시절을 10년 넘게 지냈기에 그냥 일상이라고 느껴졌다. 불쾌한 일상. 그것이 싫었다.


그 과거에는 오른팔의 통증은 줄었지만, 진통제로 그건 가능했지만 새로 생긴 왼손 통증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 난, 양손을 쓰지 못했다. 고작 연필 하나를 잡지 못했다. 병원에 가려면 운전을 해야 했는데 핸들을 잡는 게 너무 힘들었다. 너무나도 절망이었다. 오른팔이 아플 때보다 더.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의원과 약을 어느 정도까지 먹어야 하는지 임상 테스트하는 것뿐이었다. 몸 전체로 통증은 퍼지고 있었고, 내가 꿈꿀 수 있는 건 안락사뿐이었다. 이런 건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임용을 봐야만 했기에.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기에. 결국 나는 약을 들이붓고, 그 정신에 시험을 보았다. 내가 생각해도 참 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인 거 마냥 나는 통증이 훅 가라앉았다. 살만했다. 죽음을 꿈꾸지 않아도 될 만큼 통증이 가벼워졌다. 삶이 지치고 쓰러지게는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약을 끊었고, 약을 참았다. 통증이 있을 때도, 약을 단약 하는 과정에서도 힘들었다는 말이 너무 가볍다고 느낄 정도로 힘들었다. 죽을 만큼 아프다고 말하지만 통증으로는 죽지 않는다.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그게 CRPS였다. 그게 통증이었다는 걸 내가 까먹었다.


난 또 어디까지 갈까?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면, 내게 달라진 건 일한 것뿐인데 말이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건가? 그런 삶을 살고 싶진 않다. 교사를 꿈꿨던 이유는 희미해져 가지만 교사를 그만두기 싫은 이유는 단단해져 간다. 내가 꿈꾸던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지금을 보내야 한다. 조금은 지루하고, 힘들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더라도 스트레스는 받을 거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낫겠지.


스트레스. 그건 대체 어떻게 줄이는 거죠? 해소하는 방법을 제대로 찾아야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원하는 것과 감당 가능한 것 사이의 조율이 되지 않아 여전히 해소를 하지 못한다. 사진을 찍어볼까? 그거마저도 난 카메라를 원하지만 현실은 손목이 무리인 것을. 그렇게 포기한 사진이 몇 백 장이겠지.


난 그간 정말 안 아팠나 보다. 2년 넘게 하늘을 자주 보았다. 운전하다가, 걷다가, 집에서. 구름을 보았고, 햇빛을 보았고, 달빛을 보았다. 빛나는 별을 꿈꿨고, 흐르는 비와 눈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돌렸다. 그 순간만큼은 하얀 구름, 파란 하늘만, 까만 하늘과 하얀 별빛만, 노란 달빛과 빨간 노을. 난 다시 하늘을 보지 못한다. 집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학교-병원-집의 루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약을 먹고 잠을 선택한다. 학교마저 다닐 체력이 되는가를 고민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저 관성대로 다니지만, 이것이 좋은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스트레스의 주원인이니까.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구름을 보며, “오 반짝반짝하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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