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는 있으니까.

renewa.9 내 주변엔 없던 미스테리

by 노을

- 흰 종이, 검은 글씨

대학생 이전까지는 없었다. 흰 종이에서만 존재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말이다. 그것이 너무 황당했다. 나만 홀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세상 모두와 다른 나. 검은 글자 속의 그 사람들은 힘들었다고, 그러나 지금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건 과거의 것들이었다. 나는 지금, 현재 괴로운데 말이다. 사람들의 꿈은 여러가지이고, 내 꿈 중 하나는 장애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나는 외로웠다. 가족조차도 날 이해한다고 여기지 못했다. 매일 투명한 벽에 둘러싸인 기분으로 사는 건,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홀로, 또 더불어 자랐다.


- 드디어, 하지만.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대학교는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있는 곳이었고, 비슷한 꿈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었다. 한 해, 한 해 시간을 보내면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드디어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만났다. 다리가 불편했고, 손가락이 하나 없었고,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으면서도, 마주하고 싶지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난 아직 내 안의 장애를 인정하지 못했다. 궁금했다. 나는 왜 10년이 지난 일인데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가. 무엇이 필요했는가.


- 악역이 필요했다.

어느 TV 프로그램 중 장애인 수영선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선수의 어머니는 자식에게 넘어트리고 다시 일어나는 연습을 수없이 시켰다고 했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내 부모는 내 장애를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난 내가 날 쓰러트리고 다시 혼자 일어서는 연습을 했다는 걸.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싫어졌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내게 제일 필요했던건 사실 장애가 있어도 괜찮다는 말도 아니었고, 장애가 있어도 죽을때까지 편히 살 수 있는 돈도 아니었다.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다. 내 장애를 만든, 그래서 내가 이 장애때문에 다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그 모든 걸 원망할 대상. 날 넘어트리고 일어나라고 다그칠 악역. 장애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결국 누군가가 있었다. 물론 그것이 악역이 아닐수도 있지만.


- 혼자는 아니었으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장애인 친구를 사겨라도 아니고, 악역이 되어라도 아니다. 그냥 혼자두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어딘가에는 있겠지가 아니라, 어디에도 있는 사람이 장애인이다. 내가 교사가 된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건, 나와 같은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혼자라고 느끼는 아이가 없기를, 장애를 가져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아이에게 등대가 되어주고 싶기에, 이 세상에 좋은 어른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교사가 되고 싶었다. 내가 장애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나오게 된 건 이 때문이다. 나는 어쩔 수 없었지만, 남은 어쩔 수 없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럴려면 내가 이 좌절 속에서 살면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교사가 되는 건, 공부를 잘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초등학교 2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후회없이 공부했다. 그리고 난 교원자격증을 얻었고, 공무원증도 받았다.


그렇게 받은 학교 사회는 많은 것이 달랐다. 이제는 통합학급도 많아졌고, 특수교사들도 많이 학교에 배치되었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더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그럼에도 나는 바란다. 나의 쓸모가 학교에 있기를. 나의 장애가 특별함이 되기를. 나의 경험이 울림이 되기를.



그 시작이 이 글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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