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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Jun 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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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의 꼴

 죽고 싶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어 버린 친구가 생겨버렸습니다. 죽음이 무섭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내 친구가 겪었을 것이라고, 걱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어요. 나는 그런 짓을 이미 한 친구였어요. 그러니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은 당연한 것이었어요. 나는 아파야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감히 죽음을 가벼이 여긴 사람입니다. 내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주변이 안보인 환경의 문제보다는, 나에게 쓰인 안경이 망가진 것이었습니다. 망가진 것을 알고도 고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귀찮았고, 가난했습니다. 나의 감정은. 부자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감정의 흙수저라고 판단했기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맞습니다. 제가 감히 건들 수 없는 영역의 일들입니다. 삶과 죽음, 어쩌면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은 동등하지만,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몫이나, 죽어가는 것은 신의 몫이라 말합니다. 저는 그것에 분개했고, 참을 수가 없어 반항했습니다.     


 신에게 물었습니다. 질문하고 또 질문했습니다. 왜 나는 아니고, 그 아이냐고. 나를 데려가라고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또다시 죽음을. 산 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내 주변은 내가 필요 없어 보였습니다. 나는, 내가 필요한 곳은 그저 그 아이 곁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내가 그 아이를 필요로 여겼습니다. 너무나도 필요했습니다. 저는 힘들었으니까요.     


 벌을 받았습니다. 인생에서 제일 큰 사고를 쳤습니다. 나는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교통사고의, 내가 누군가를 다치게 만들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크게 다쳐, 죽어도 가해자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깨지더군요. 나는 벌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신에게서 이든, 그 아이에게서든. 벌을 받기 위해서 살아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온전한 내가 책임을 지는 일이었습니다. 괴로워하는 일. 후회하는 일. 걱정하는 일. 두려워하는 일. 그것들은 온전히 저의 몫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하기 위해 살아야 했습니다. 그 정도의 고통은 느껴야 했습니다. 그래야 이기적으로 죽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죽고 싶었으니까요.     


 저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렇게라도 그만 힘들고 싶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보고 싶고, 그립고, 외롭습니다. 친구가 없을 때도 외로웠고, 힘들었으나, 친구가 없으니 괴롭고, 아팠습니다. 故종현이 떠올랐습니다. 외로움과 괴로움은 기억 하나 차이라는 그 말이 뼈 곳곳에 새겨지는 날들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상처는 치유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친구가 돌아오지 않는 한 말입니다. 제가 살아있는 한 계속되는 고통일 것입니다. 괴로움일 것입니다. 그것이 그 친구가 바라지 않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것을 힘들어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그만큼 소중하고, 원하고, 특별하고, 유일한 친구를 잃었습니다.     


 언제 다시 죽고 싶다고 시도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저는 친구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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