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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과장 Mar 26. 2024

21. 오늘의 일기

아침부터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출근길 5분이 아쉽지만, 엄마의 표정을 보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엄마, 잠 못 잤어? 기분 안 좋아?"


엄마는 손에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벗으며 나에게 말했다.


"애 봐주는 아줌마한테도 그렇게는 안 하겠다."


아, 뭔가 기분이 상했구나 싶어 다시 물었다. 시작은 어제 저녁이었다.




퇴근길 귤을 사기 위해 마트로 가고 있던 나에게 전화가 왔다. 핸드폰 너머 아이는 울고 있었고 엄마는 나에게 빨리 오라고 했다. 마트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우산이 없어 비를 맞으며 집으로 뛰어갔다.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울었고, 이가 아프다고 했다. 간지러웠는지 손톱으로 어서 피가 나고 있었다. 난 옷도 가방도 벗지 않은 채로 아이에게 물었다.


"아파? 병원 갈까?"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 정도는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는 걸. 하지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난 가방만 내려놓고 아이와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병원에 다녀온 후부터 엄마는 나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냥 난 아이를 달래고 싶었고, 앉아서 실랑이하며 아이를 달랠 기운은 없었다. 가까운 병원이 밤 12시까지 하는 곳이었고 의사 선생님이 이를 잘 닦아야 한다고 하면 아이가 알겠다고 하고 올 것 같았다. 기껏해야 소염진통제 정도 주겠지 싶어서 그냥 별 생각없이 아이와 병원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문제가 뭐였을까.



엄마는 아이가 나와 통화하기 전까지는 아주 잘 놀았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집으로 달려와 아이를 보자마자 병원에 가자며 서둘렀다고 했다. 여기서 첫 번째 문제였다.


"애를 잘못 봐서 그런 것처럼 네가 대화도 안하고 애를 데리고 병원에 갔잖아."


엄마는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나도 그건 알고 있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잇몸 염증 정도였다. 변명을 하자면 난 아이를 달랠 힘이 없었다. 10분 거리 병원을 다녀오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엄마는 거기서부터 기분이 나빴던 거였다.

병원에 다녀왔는데 남편이 엄마에게 물었다고 한다.


"오늘 안 좋았어요? 병원 갔다던데."


엄마는 여기서 한번 더 화가 났다. 본인이 아이를 잘 돌보지 못했다, 라고 우리가 느끼게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엄마는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방으로 들어갔고 오늘 아침이 되었다.


결국 엄마는 출근길 나에게 본인이 화가 난 이유를 쏟아냈고, 난 엄마에게 사과했다.


"엄마가 그렇게 느꼈으면 내가 미안해."

"출근이나 해."

"엄마 이러면 나 오늘 하루종일 신경써."

"난 밤새 그랬어."


엄마는 화가 풀리지 않았고, 난 그 와중에도 엄마를 끌어안고 다녀올게, 미안. 하고 집을 나왔다. 이미 지하철 하나를 놓친 시간, 나는 지하철역으로 빠르게 걸으며 울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있었던 일을 쏟아내며 펑펑 울었다. 남편은 누구의 탓도 하지 않았고 그저 들어주었다.


"미안. 아침부터 전화해서 징징대서."


남편과 전화를 끊고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엄마의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난 밤새 힘들었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식의 엄마의 공격 방식에 화가 났다. 그리고 회사에 도착해서 난 한참 있다가 문자를 보냈고 엄마는 읽고도 답하지 않았다.

엄마의 수동적 공격이 또 나왔다.


"난 어제 애봐주는 아줌마가 된 기분이었어."


엄마의 마지막 말이 계속 맴돌았다. 내가 병원을 데려간 게 잘못된 방법이라고 했다. 나를 탓하는 말만 계속 떠올라 오전 회사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엄마가 원한게 이걸까. 너도 당해봐라.


'차라리 애봐주는 아줌마면 내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힘들진 않겠지.'


속으로만 생각한 말을 삼키고, 난 엄마에게 또 사과의 문자를 보낸다. 여전히 답은 없다.

하필 오늘 정신의학과에 가는 날이다. 전 내내 이 생각만 하다가 점심 시간이 되어 병원에 왔다.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난 남편에게 전화해서 울고, 병원에서 상담받고.

엄마는 누구와 얘기할 수 있을까. 우리 엄마 진짜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나밖에 없는데.


버겁지만, 속상하지만, 오늘도 나를 속여본다.


괜찮다. 지나갈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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