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김과장 Mar 20. 2024

20. 가난은 대물림 된다.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의 유형을 분류하는 버릇(?) 혹은 취미 같은 게 생겼다. 사람의 행동과 말을 보고 들으며 그 사람의 살아온 집안을 추측해본다. 물론 아래 유형으로 모두 나뉘는 건 아니고 내 개인적인 구분 방법이다.


유형 1. 원래 잘사는 사람

집안 대대(조부모 이전부터)로 잘 사는 사람들 특유의 여유로움이 있다. 돈에 집착하지 않는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해맑다. 어둠이 없다고 해야 할까.

대신 모든 말을 해맑게 해서 악의는 없지만, 상대는 열받을 때가 많다.


유형 2. 부모님 대에서 자수성가한 사람

부모님이 열심히 하셔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자식들을 뒷바리지 해준 유형이다. 대부분 자신감이 넘친다. 부모님은 힘들 게 사셨지만, 적당한 여유를 누리며 자랐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다. 


유형 3. 가난하게 자란 사람

내가 열심히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 부모님 지원은 커녕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유형이다. 어딘가 자격지심이 있고 사람들의 말을 꼬아 들으며 다른 사람을 보며 부러워한다. 


난 3번 유형이다. 해맑고 순수한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자라면 저렇게 해맑을까.'

'사랑 받으며 자랐나보다.'

'빚 같은 건 없겠지.'


그리고 늘 마지막은 부러움으로 끝난다. 친구 중에도 그런 친구가 있다. 그냥 마냥 밝은 친구. 밝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부모님이 어느 정도 돈이 있으시고(노후보장) 두 분의 사이가 좋으신 것 같았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난 그런 친구가 부러웠다. 그냥 평범한 가정에서만 자라도 내가 이렇게 어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세상에는 개천에서 용나는 건 힘들다고 한다. 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고. 


20대에는 내가 40살쯤 되면 무언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40이 된 지금 난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다. 여전히 빚에 허덕이고 네 가족 생활비를 계산하며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며 산다. 50살이 된다고 바뀔까. 죽기 전까지 이렇게 살다 죽을 것만 같아서 겁이 나기도 한다. 나의 인생이 이런 것에 대해 부모님 탓을 하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다잡지만, 부모 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부러움이 자격지심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비꼬아 듣는다. 이것 또한 못난 내 탓이다.


'왜 저렇게 말하지?'

'지금 나 무시하는 건가?'


별 거 아닌 일에도 자꾸 발끈하는 나를 보며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자격지심이지.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부모가 계속 자식에게 '돈 없다', '아껴야 한다' 얘기를 하면 애들 꿈과 미래의 삶이 그 돈에 맞추게 된다고. 
그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무엇이든 지나치게 아끼면서 살게 되고 자존감도 낮아진다고.
적어도 부모가 아이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자신의 불우한 과거를 자식에게까지 심어주면 안 된다고.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며 돈돈 거리면, 아이가 이것에 적응해서 생활력 강한 아이로 성장하는 게 아니라
자존감 결핍, 지나친 눈치, 더불어 가난한 마음까지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고.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자존감은 낮아지고 눈치를 보고 가난한 마음까지. 

내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고 싶다고. 아니, 가난한 마음을 대물림 하고 싶지 않다고. 

작가의 이전글 19. 엄마와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