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신의학과에 가서 상담을 하다가 나와 엄마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나와 엄마는 각자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왔고, 각자의 입장에서 다른 힘듦이 있었다. 엄마는 혼자 딸을 키우고 책임져야 했던 가장으로 힘들었을 테고, 나는 부족한 환경에서 여러 결핍을 느끼며 자라느라 힘들었다.
그렇게 20년, 엄마와 나는 그 상처들을 열어보지 않는 걸 택했다. 서로 상처가 될 말은 하지 않고, 혼자 삭이며 하고싶은 말도 서로 못하고 살았다. 옛날 얘기를 하던 어느날 엄마와 나는 둘다 오열을 하는 바람에 대화를 하다 말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힘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말하지 않는다. 또 내가 힘든 일이 있어도 엄마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내가 병원에 다시 다니는 것도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어릴때를 생각해보면 엄마는 예민하고 짜증이 많은 사람이었다. 엄마가 인상을 팍 쓰면서 짜증을 내면 나는 그게 무서웠었다. 12살 이후 엄마와 둘이 살면서도 엄마가 기분이 안 좋거나 화가 나 있는 것 같으면 눈치를 많이 봤었다. 엄마가 짜증을 낼까 봐 무서웠고, 엄마까지 날 떠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엄마에게 집착을 했고 엄마가 없으면 불안했다.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엄마는 사는 게 힘들어서였을까. 나에게 칭찬보다는 질타를 많이 했다.
'엄마는 어떻게 해야 기분이 좋아질까? 내가 어떻게 하면 칭찬해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엄마가 웃으면 그게 좋았다. 그래서 엄마를 웃게 하려고 참 많이 노력했다고 난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는 이런 내 마음을 모를 것 같다. 지금도 내가 그러고 있다는 걸.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할때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의 기분을 살피는 게 나의 첫번째 일이다.
'오늘은 괜찮나? 오늘은 잘 잤나? 기분이 좋은가?'
엄마가 웃으며 인사를 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출근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엄마가 기분이 안 좋아보이면 회사에서도 계속 신경이 쓰인다. 엄마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예민한 여자친구를 대하는 남자친구의 태도 같다. 눈치 보고 계속 살피고 웃게 하려고 노력하고. 그런데 요즘 이 모든 게 조금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친하고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서로 속마음은 숨기고 웃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도 난 혼자 약을 먹으며 속마음을 숨기고 웃는 걸 택했다. 엄마 역시 나에게 말하지 못하는 아픔과 상처들이 가득할 거고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엄마는 기분이 안 좋거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을 닫아 버린다. 차라리 말하고 풀면 좋겠는데 혼자 삭이는 게 둘 다 익숙해져 버렸다. 사실 20대 때는 나 노느라고 연애하느라고 엄마가 힘든 걸 잘 몰랐었다. 내가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 엄마의 이가 아프다는 걸 알았다. 난 엄마가 이가 아파서 잘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1,000만원을 대출받아서 엄마의 안 좋은 이를 치료하고 임플란트도 했었다. 그 이후로 잘 드시는 엄마를 보며 내가 진짜 무심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떠올리면 슬픈 순간 중 하나였다. 엄마 역시 내가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고 나에게 기대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하고 슬펐다.
엄마와 나는 서로의 눈치를 보고 서로의 기분을 살피고 서로를 배려한답시고 힘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쉽게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20년 넘게 서로 쌓여있는 걸 어떻게 풀어야 할 지 감도 오지 않는다. 그냥 나만 참으면 되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엄마도 나처럼 참고 있겠지, 싶어 마음이 좋지 않다.
정신의학과에서 상담을 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가 '수동적 공격형'이라고 말했다. 내 카톡에 대답을 하지 않는거나, 입을 닫아버리고 내가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게 엄마의 공격 방식이다. 의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린아이 대하듯 하셔야 합니다. 엄마의 소통 방식이 서투신 것 같네요."
어린아이 대하듯, 예민한 여자친구 대하듯. 어떤 날은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겠다가도 어떤 날은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기도 하다.
"엄마는 내가 어떻게 해야 만족할 거야? 나는 노력한다고 하는데 내가 하는 거에 엄마는 불만만 있는 거 같아."
나는 노력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불만만 이야기한다고 생각한 어느날, 사소한 걸로 나에게 무어라 하는 엄마에게 울면서 말한 적이 있다.
"모두가 노력하고 있어. 너만 노력하는 거 아니야."
엄마의 대답을 듣고 나 또한 입을 닫았다.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한마디가 듣고 싶었던 건데.
나는 요즘 출근하기 전 하는 일이 하나 생겼다. 아침에 엄마가 어떤 기분이든 어떻게 반응하든 출근하기 전에 다녀오겠다고 인사하면서 엄마를 꼭 안는다. '포옹의 힘'이 있다고 한다. 어색하지만 엄마를 꼭 안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걸 일주일째 하고 있다. 엄마가 어떻게 느끼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마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자꾸 도망가려는 엄마를 뒤에서 안자 엄마가 피식 웃었다. 난 기분좋게 출근할 수 있었다. 그저 엄마의 웃음이 보고 싶다.
엄마와 딸은 다른 관계보다 더 복잡하고 묘한 것 같다. 엄마가 힘든 과거는 잊고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