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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과장 Mar 11. 2024

18. 둘째를 낳고 싶었지만

나는 외동이다. 외동으로 자라면서 한가지 다짐했던 게 있었다.


"난 아이를 낳는다면 무조건 둘 이상 낳을 거야!"


물론 이 생각은 아이를 낳고 없어졌지만, 외동으로 자라온 나는 외로움을 느껴서 저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둘째에 대한 생각이 사라졌다. 


"혼자 자라면 외로울 텐데."

"나중에 후회해."

"형제는 만들어 줘야지."

"둘째는 발로 키워."

"딱 2년만 고생하면 둘이 논다니까."


둘째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말 많은 말들을 들었지만, 난 나부터 살아야했다. 당장 내가 죽고 싶은데 무슨 둘째란 말인가. 만약 남편이 아이를 가질 수 있고, 출산을 할 수 있으며, 육아휴직이 가능하다면 모르겠지만, 첫 아이를 키우며 너무도 많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친정 엄마가 계심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어릴 때는 회사에서 눈치를 보며 휴가를 써야 했다. 

일단 어린이집을 24개월까지 보내지 못했다. 나는 아이가 9개월 때 복직했다. 대기를 걸어놨지만 보낼 수 없었고 친정 엄마가 오롯이 아이와 함께 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팔목, 허리, 어깨가 안 아플 수 없었고 엄마가 아프면 내가 휴가를 내야 했다. 엄마 말고는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도 육아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워킹맘들은 양쪽 눈치를 보느라 정말 힘들다. 물론 팀장 입장에서도 얼마나 짜증이 날까 싶다. 일을 시켜야 하는데 아이가 아프거나 엄마가 아프면 집으로 달려가는 직원이 달가웠을 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우울했다. 직장에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육아는 나의 죄책감만 늘어나게 했었기에. 아이는 매일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회사에서 나름 인정도 받고 일을 잘한다고 자신했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야근 한번도 하기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둘째를 낳는다면 임신 10개월+출산휴가 3개월+육아 휴직 6개월. 나는 또 회사에서 밀려날 게 뻔했다.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나는 양쪽을 모두 쥐고 어느 쪽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아이가 한명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키즈카페나 놀이터에서 남매, 자매, 형제가 둘이 노는 걸 볼 때. 아이가 자신도 그 사이에 끼고 싶어 언니,오빠를 쫓아다니며 민망한 표정을 지을 때. 예쁘고 귀여운 게 둘이면 또다른 행복이 있겠지, 싶다가도 이내 현실에 정신을 차린다.


"동생이 필요한 게 아니야. 언니나 오빠가 필요한 거지."


남편이 말했다. 그러니 포기하자는 말이었다. 지금 언니나 오빠를 만들어줄 수는 없으니. 뭐, 그 말도 일리는 있다. 남편은 둘째를 갖고싶지 않다고 했다.

친정 엄마는 삼남매 중 맏딸이다. 그리고 동생이 태어났을 때의 기분과 첫째로 살며 서운했던 점들을 열거하며 둘째를 반대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더 봐줄 체력이 없다고도 하셨다.

가족회의에서 아무도 둘째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아이 포함) 나도 생각을 접었다. 외동으로 자랐던 나만 둘째 생각을 긍정적으로 했었던 것 같다. 막상 형제, 자매가 있는 사람들은 굳이 필요없다는 의견을 주는 사람도 많았다. 


어쨌든 난 나이가 들었고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더는 내 인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지금의 난 우울증약을 끊을 자신이 없다. 약을 먹으면서도 왔다갔다 널뛰는 내 감정에 호르몬의 영향까지 받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내가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이 오면서 남편도 내 눈치를 보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남편이 더 둘째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외동이면 부모님의 노후도 혼자 책임져야 하고 힘들겠다. 형제가 있으면 미루든, 같이 하든 나눌 사람이라도 있지."


특히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돌아가시면 형제가 없는게 외롭다고들 한다. 아직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 나를 책임지라고, 내가 죽었을 때 외롭지 말라는 이유로 형제를 만들어주고 싶지는 않다. 

살면서 나의 목표는 아이에게 부를 물려주지는 못해도 폐는 끼치지 말자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도 존엄사가 도입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네덜란드나 스위스로 가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외동은 외롭다. 하지만 친구와 가족이 있어서 괜찮다. 형제가 처음부터 없으니 그게 외로운 건지 잘 못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난 외동이 이기적이란 말이 제일 싫다. 난 이기적이지 않다. 사람들이 나에게 늘 남동생 있어? 오빠 있어? 라고 물어본다. 아마 내가 좀 털털하니 남자들과 투닥거리며 잘 지내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외동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외동도 외동 나름이다. 부모가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형제가 많아도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외동이어도 이타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둘째를 낳지 않기로 했다. 


딸, 혼자 노는 법을 배우자.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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