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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과장 Mar 06. 2024

17. 우리 모두 노력하고 있다.

며칠 전 남편에게 말했다.


"나 그냥 죽어버릴까? 너무 힘든데."


남편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듯 날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또 왜 그래. 그날이야?"


남편의 반응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밥을 먹다 말고 눈물을 쏟았다. 남편은 당황했고 아이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한참을 울며 진정하지 못했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 같은 건 결혼하지 말았어야 돼."


남편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의 외식은 눈물과 한숨으로 끝나버렸다.


우리집에는 네 명이 산다. 나, 남편, 4살 딸, 그리고 엄마.

엄마는 아이를 봐주시고 나와 남편은 맞벌이 부부다. IT 업무다 보니 야근도 잦고 시도때도 없이 불려나가기도 해서 엄마가 없었다면 우리 부부 중 한 명은 회사를 그만두었어야할 것 같다. 사람들은 친정 엄마와 같이 있으니 편하겠다고 말한다.


"엄마가 있는데 네가 뭐가 힘들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아무말하지 않는다. 이 상황이 되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4명의 사이에서 관계가 쉽지만은 않다.

장모를 모시고 사는 남편의 눈치를 보고, 사위와 딸에게 얹혀 산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눈치를 본다.

저녁 약속 한번도, 주말 약속 한번 나가기도 쉽지 않다. 양쪽에 다 허락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차라리 남편만 있다면 쉬웠을까.

그 와중에 얼마 전 남편의 말이 잊히지를 않는다.


"나는 장모님 눈치 보고, 네 눈치 보고, 딸래미 비위 맞추고. 나라고 안 힘들겠냐."


그렇다. 그도 힘들다. 

그럼 엄마라고 편할까. 아이를 봐주느라 엄마는 4년 새 5kg이 빠졌다. 바쁜 사위와 딸 때문에 모든 집안일은 엄마의 몫이다. 거기에 퇴근 전까지 아이를 케어해주고 식구들의 식사를 챙긴다. 간식과 과일까지. 같이 살다 보니 퇴근이라는 게 없다. 엄마도 힘들다.


우리 가족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나 힘든 것만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아니었으면 모두가 이렇게 힘들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남편이 장모님을 모시고 살 일이 없었을 테고, 엄마도 하시던 일을 계속 하실 수 있었을 테고. 자꾸 이 모든 게 내 탓이라고 느껴지다보니 남편에게 그런 말을 뱉어버렸다. 

나의 부모님이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계셨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 같아 이혼한 부모님 탓도 해보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나쁜 딸 같아서 울기도 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엄마가 나에게 불만을 늘어놓을 때, 남편은 한숨쉬며 나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 아이는 나보다 할머니를 찾을 때 난 생각한다.


'나 따위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노력한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나의 노력이 부정당할 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 같다. 나의 노력을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걸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느날 엄마가 말했다.


"내 인생이 그렇지 뭐. 내 처지에 뭘."


나는 엄마의 한 마디에 지금까지의 나의 노력이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우울해졌다. 내가 어떻게 더 해야 우리 가족이 행복할까.

내가 인정받고 싶은 것처럼 엄마도, 남편도 노력을 인정받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고맙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노력해보려고 한다. 표현이 어색한 K-장녀지만, 용기는 내볼 수 있으니까.


물론 네 가족이라 좋은 점도 많다. 아이는 할머니를 너무 좋아하고 다정하고 자상한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아주 예쁘게 말하는 아이로 자라주고 있다. 나와 남편 사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화를 둘은 하고 있었다. 아주 부드럽고 다정하게. 집안일을 엄마가 해주시니 나는 회사만 다니면 된다. 남편도 쓰레기 버리는 정도 빼고는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 엄마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맘 편히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었을 것 같다. 친정 엄마만큼 내 아이를 사랑으로 돌봐주는 사람은 없을 테니.


가족과의 관계에서 힘들 때 엄마가 없었다면 생겼을 일, 남편이 없었다면 생겼을 일을 상상하며 지금의 상황에서 행복을 찾아보려고 한다. 물론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고 울고불고할 때도 있지만.


스스로를 낮출 때,
내 곁에 있는 소중한 모든 것들도 같이 깎여 내려가니까.
의도는 그게 아닌데
지금 곁에 있는 것들로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되어버리곤 해.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문구를 보고 메모장에 적어놨었다.

내가 나를 낮추고, 나의 인생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도 모두 깎여 내려가는 게 맞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심호흡하고 웃어본다.


지금이 나의 최선이고, 나의 인생은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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