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편에게 말했다.
"나 그냥 죽어버릴까? 너무 힘든데."
남편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듯 날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또 왜 그래. 그날이야?"
남편의 반응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밥을 먹다 말고 눈물을 쏟았다. 남편은 당황했고 아이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한참을 울며 진정하지 못했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 같은 건 결혼하지 말았어야 돼."
남편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의 외식은 눈물과 한숨으로 끝나버렸다.
"엄마가 있는데 네가 뭐가 힘들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아무말하지 않는다. 이 상황이 되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4명의 사이에서 난 이 관계가 쉽지만은 않다.
그 와중에 얼마 전 남편의 말이 잊히지를 않는다.
"나는 장모님 눈치 보고, 네 눈치 보고, 딸래미 비위 맞추고. 나라고 안 힘들겠냐."
그렇다. 그도 힘들다.
그럼 엄마라고 편할까. 아이를 봐주느라 엄마는 4년 새 5kg이 빠졌다. 바쁜 사위와 딸 때문에 모든 집안일은 엄마의 몫이다. 거기에 퇴근 전까지 아이를 케어해주고 식구들의 식사를 챙긴다. 간식과 과일까지. 같이 살다 보니 퇴근이라는 게 없다. 엄마도 힘들다.
우리 가족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나 힘든 것만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아니었으면 모두가 이렇게 힘들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남편이 장모님을 모시고 살 일이 없었을 테고, 엄마도 하시던 일을 계속 하실 수 있었을 테고. 자꾸 이 모든 게 내 탓이라고 느껴지다보니 남편에게 그런 말을 뱉어버렸다.
나의 부모님이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계셨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 같아 이혼한 부모님 탓도 해보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나쁜 딸 같아서 울기도 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엄마가 나에게 불만을 늘어놓을 때, 남편은 한숨쉬며 나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을 때, 아이는 나보다 할머니를 찾을 때 난 생각한다.
'나 따위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노력한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나의 노력이 부정당할 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 같다. 나의 노력을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걸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느날 엄마가 말했다.
"내 인생이 그렇지 뭐. 내 처지에 뭘."
나는 엄마의 한 마디에 지금까지의 나의 노력이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우울해졌다. 내가 어떻게 더 해야 우리 가족이 행복할까.
내가 인정받고 싶은 것처럼 엄마도, 남편도 노력을 인정받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고맙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노력해보려고 한다. 표현이 어색한 K-장녀지만, 용기는 내볼 수 있으니까.
물론 네 가족이라 좋은 점도 많다. 아이는 할머니를 너무 좋아하고 다정하고 자상한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아주 예쁘게 말하는 아이로 자라주고 있다. 나와 남편 사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화를 둘은 하고 있었다. 아주 부드럽고 다정하게. 집안일을 엄마가 해주시니 나는 회사만 다니면 된다. 남편도 쓰레기 버리는 정도 빼고는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 엄마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맘 편히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었을 것 같다. 친정 엄마만큼 내 아이를 사랑으로 돌봐주는 사람은 없을 테니.
가족과의 관계에서 힘들 때 엄마가 없었다면 생겼을 일, 남편이 없었다면 생겼을 일을 상상하며 지금의 상황에서 행복을 찾아보려고 한다. 물론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고 울고불고할 때도 있지만.
스스로를 낮출 때,
내 곁에 있는 소중한 모든 것들도 같이 깎여 내려가니까.
의도는 그게 아닌데
지금 곁에 있는 것들로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되어버리곤 해.
내가 나를 낮추고, 나의 인생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도 모두 깎여 내려가는 게 맞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심호흡하고 웃어본다.
지금이 나의 최선이고, 나의 인생은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