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기록 <분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마음의 절규

by 깊은 연못
분노는 어느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나의 마음이 감당하기 힘든 감정, 분노. 이 이름의 감정에 대해 꽤나 긴 시간 의문을 갖고 있었다. 특히 이 영화를 볼 즈음, 길지 않은 인생에 가장 큰 분노를 마주한 덕분에 혹여, 이 영화가 나의 고민에 대한 대답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비장하게 영화관에 들어갔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강렬하고 짙은 먹먹함이 지배적이었다. 그 강렬한 먹먹함에서 시작해보자면 ‘분노’라는 영화의 제목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분노란 단순히 어떤 하나의 감정으로 일축될 수 없다는 사실을 관계의 서사를 통해 계속적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를 관통하는 전제, 모든 관계에서 ‘믿음’과 ‘신뢰’가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이지만, 의심이라는 다른 형태의 믿음 앞에서

모든 것이 흔들리는 사람들.

감독은 그 신뢰와 믿음이 하릴없이 무너져 버리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분노’라고 명명한다.



그러한 면에서 분노를 표현해내는 감독의 연출은 인상적이었다. 중간중간 인물들(아이코 역)의 절규와 마지막 장면에 여자아이(이즈미 역)의 절규를 묵음으로 처리한 것이 그 먹먹함의 절정이라고 꼽을 만한 것 같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듣지 않는 세상을 보여주듯, 바다를 품은 아름다운 영상과 바이올린의 소리만이 유려하게 흘러 그 슬픔과 비통함을 증폭시킨다. 누가 감히 알 수 있을까, 그 슬픔의 깊이를 다 가지 못한 사람에게 아무리 소리친들, 아무리 설명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절규는 절대로 누군가에게 닿지 않고, 파도가 삼켜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절규가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이유이지 않을까.



분노를 더 농밀하게 터뜨리기 위해 감독은 이전의 준비작업에서 치밀하다. 관계의 미묘한 긴장감과 신뢰가 흔들리는 그 위태로움을 연출로 표현한 덕분에 앞서 말한 분노의 폭발은 극대화될 수 있었다. 먼저는 이즈미에 대해 두 남자가 대화하던 장면에서 카메라는 남자아이(타나카 역)의 마음을 반영하듯, 핸드 헬드로 인물을 잡으며 줌인한다. 동시에 일어나는 두 개의 움직임은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변화이기 때문에 큰 연출적 개입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개입을 통해 감독은 의도했던 마음의 변화를 섬세하게 대변한다. 핸드 헬드가 주는 위태로움은 남자아이의 심연에 큰 돌이 떨어진 듯한 파장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하고, 줌인이 주는 몰입감은 남자아이의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동시에 그 마음에 이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표정은 같지만 연출로서 더 내밀한 인물의 마음에 관객이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뢰가 파편 나던 장면. 나의 딸은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신뢰가 파편 나던 순간에 감독은 그 불편한 느낌을 연출을 통해 보여준다. (영화관에서 보던 나도 굉장한 불편함을 느껴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우선 둘의 관계가 멀어진 만큼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도 관계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연출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둘의 대화는 그 흔한 투샷 없이 한 명씩 단독 샷으로 진행된다. 딸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섰지만, 아버지는 빼곡한 마을을 배경으로 서있다. 각 인물이 카메라에 잡힐 때의 색감과 느낌을 의도적으로 이질적으로 만들어 다른 곳에 서있는 듯 보이게 한다. 같은 공간과 시간에 있지만 멀어진 거리감을 느낄 수 있게 컷 사이에 큰 분절을 준 것이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며 단독 바스트 샷으로 두 인물이 교차 편집되다가 가장 결정적인 대사에 인물의 얼굴로 타이트하게 클로즈업 샷이 들어간다. 동시에 카메라를 응시한 눈은 마치 나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불편하다. 그 부담스럽고 불편한 연출은 딸이 아버지에게 던지는 그 질문이 둘의 관계에서 굉장히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그리고 불편한 질문이라는 사실을 더욱 극대화한다.


물론 감독이 본질적 메시지인 분노에 대한 연출은 보기 좋게 성공한 부분이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약간의 스릴러 장르를 빌려 범인 찾기로 관객들을 끌고 갈 때에는 어딘가 모르게 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3명의 용의자가 모두 범인처럼 느껴지게 하려다 보니 점점 박차가 가해져야 할 부분인데도 속도감이 나지 않고 관객을 설득하는데 시간이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분노의 절정으로 모든 사건이 종결되고 이후의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풀어지지 않아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더라도 절제라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통해 더 세련되고 깔밋한 마무리였으면 좋았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영화의 상영이 끝나고, 의자에서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다. 그 짙은 여운에서 한동안 깨어날 수 없었다. 감독이 정의 내린 묵직한 분노의 의미에 너무나 마음 깊숙이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분노는 어떤 감정의 한 종류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믿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었다’는 남자아이의 고백처럼, 신뢰에서 시작되는 마음 깊은 병인 것 같다. 마음을 주는 신뢰와 믿음의 관계에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생기는 분노의 깊이도 그 기쁨만큼 더 아플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절규가 묵음 처리되고, 아름다운 영상과 바이올린의 유려한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마음이 더 아린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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