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열왕기하
~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2:9)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2:10)
기개가 대단하다. 엘리사도 여호수아처럼 엄청난 지도자로부터 승계를 이어받았는데 느낌이 다르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할 새도 없이, 엘리야에게 임했던 성령의 역사가 자신에게 갑절이나 있게 해달라고 구한다. 엘리야의 말처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사람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으로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큰데 내가 초라하고 작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볼 때, 한낱 인간이 생각하고 바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게 된다. 나를 사용하실 것을 나도 하나님과 함께 기대해보고 싶어 진다. 그것이 소망이 아닐까.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4:26-27)
누군가 괜찮니? 평안하니? 물어보면 괜찮다고 답을 해버릴 때가 있다. 그 대답을 하는 수넴 여인의 마음을 알겠어서 슬프다. 그런데 여기서 감동은 하나님이 엘리사에게 그 마음의 괴로움을 알게 하실 수도 있었는데, 수넴 여인과의 비밀로 지켜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만 아시는 그 깊고 은밀한 교제에서만 내 마음을 모두 다 내려놓을 수 있다, 아무도 몰라서 참 좋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 아들의 입에 그의 입을, 눈을, 손을 얹는다. (엘리사로 보일 뿐, 결국) 하나님의 크신 입이 나의 입에, 하나님의 크신 눈이 나의 눈에, 하나님의 크신 손이 나의 손에 닿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렇게 나의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리신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8:19)
상한 갈대가 아니라 꺾어야 하는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것이 아니라 꺼도 되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음과 은혜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10:16)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10:31)
하나님을 위한 나의 열심과 사랑은 분명 그 순간 전심이어도 자주 무산된다. 내 열심은 마음의 강도에 불과하기에 매번 실패한다.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 감히 자랑하거나, 생색내거나, 확신하지 말아야지. 못 미더운 내 열심과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을 의지해야지.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15:35)
아사 왕부터 의아했는데 정말 끝끝내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엔 이해가 안 갔는데, 할 수 있는 모든 예쁜 행동을 해놓고 마음에 제일 중요한 것을 고치지 못하는 내 모습 같다. (부자 청년 같다) '하나님은 나를 영원히 사랑하신다, 그는 선하시다'와 같은 중요한 명제들에 대한 의심은 여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너의 마음과 같지 않냐고 하나님이 물으신다. 답을 할 수 없어 슬프다.
아하스 왕은 대야(물두멍)의 놋쇠 테두리를 떼어 버리고, 놋대야(물두멍)를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쇠 소가 받치고 있는 놋쇠 바다를 뜯어 내어 돌받침 위에 놓았다.(16:17)
언젠가 제자반 친구의 나눔을 그대로 캡처해둔 적이 있었다. 출애굽 하며 ‘여인들의 놋 거울로 만든 물두멍’에 대해 묵상이었다. 결국 나를 보는 거울을 통해 (물두멍에서 손을 씻어) 정결히 예배로 나아간다는 묵상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아하스 왕이 물두멍의 놋쇠 부분을 모두 떼는 것은 상징적으로 자신의 모습과 죄악을 돌아보지 못해 진정한 예배로 나아갈 수 없었음을 말하는 것 같다.
나에게 함몰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나로부터 돌아봐야 의미 있는 예배로 나아갈 수 있기에 놋 거울로 물두멍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단 한 번의 소중한 예배에 나아갈 내 마음을 먼저 돌아보는 시간을 허락하신다. 놋 거울에 비친 하나님께 사랑받는 귀한 내 모습 그대로, 물두멍에 손을 씻고 마지막 예배에 와달라고 초청해주신다.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19:15)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기를, 새롭게 느끼는 하나님을 고백하게 되기를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23:25-26)
요시야의 돌이킴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담아낼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굳이 유다의 멸망을 통해서만 가능한 하나님의 의도를 우리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보이는 그때가 그 어느 때보다 말씀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때라고 알려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