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트레킹_여섯째날 1편

TMB 마지막 루트

by 불나무

트리앙~콜드발므~르뚜어~레틴(Les Tines)(트레킹 6시간, 34,234걸음)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일상에서는 알람을 맞추고 겨우 일어나는데, 여행만 오면 새벽같이 눈이 떠진다. 하루에 대한 설렘 때문일까, 낯선 곳이 주는 긴장감 때문일까. 문득 어렸을 때가 떠올랐다. 일요일 아침 7시만 되면 절로 눈이 떠졌다. 8시에 시작하는 디즈니만화동산을 보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내 일상에는 어떤 설렘과 긴장감을 부여해야 할까.

오늘의 트레킹 시작점인 트리앙까지 가는 버스가 6시에 출발한다. 5시에 숙소를 나와, 보름달이 환한 고요한 마흐띠니 거리를 둘러보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6시 10분경 버스 한대가 정류장으로 들어오더니, 기사가 나에게 타라고 손짓한다. 내가 그의 승객인지 어찌 알았는지, 목적지도, 티켓도 확인을 안 한다. 트리앙? 트리앙? 재차 물어보고는 버스에 탑승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셩바셰행 티켓을 끊어 놓고 마흐띠니까지 왔는데,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대중교통 요금이 이렇게 비싼데. 사람에 대한 믿음이 근간에 깔려 있는 모양이다.

마흐띠니에서 트리앙까지는 약 45분. 버스에 나 혼자뿐이라 조금 무서웠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반갑게도 트레킹 복장을 한 청년 2명이 버스를 탔다.

7시경 트리앙에 도착했고, 그들도 나와 함께 내렸다. 내린 지점에는 불빛 하나 없었다. 너무 어두워서 도저히 길을 못 찾겠다고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도 나와 목적지가 같아, 동행하게 되었다. 각자의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 시야를 확보하고, 길을 찾기 시작했다. 혼자였으면 어쩔 뻔했나. 운이 좋았다.

몇 차례 길을 헤매고 방향을 틀어가며 드디어 본 루트에 진입했다. 청년들은 이스라엘에서 왔다고 한다. 두런두런 각자의 여행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억양 탓인지, 못난 영어 실력 탓인지 서로의 말을 절반만 알아듣는 느낌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혼자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늘의 피크 지점인 콜드발므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 2시간 남짓 이어진다. 계속 느끼는 건데, TMB루트는 첫 이틀을 빼면 대체로 평이하다. 3일 차도 그랬고, 오늘도 역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대신 내리막이 경사도 심하고 긴 편이다.

정오가 조금 지나 숙소까지 약 5km가 남았을 무렵, 아르젠띠에흐라는 작은 마을에 닿았다. 오늘 머무는 호텔 주변에는 식당이 없어,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식당은 나이 지긋한 현지 어르신들로 가득했고, 테이블마다 와인이 있다! 우리로 치면 점심으로 찌개에 소주 한잔 걸치는 어르신들의 프렌치 버전이다.

날씨가 추워서 속을 덥힐 레드와인이 필요했다. 론지역 와인 하프보틀과 오리훈제푸아그라 샐러드를 주문했다. 꼬뜨뒤론은 적당한 탄닌과 스파이시함, 얼씨함이 느껴졌고, 오리고기, 절인 야채류와의 조합은 말해 뭐하겠는가.

어르신들은 식사를 마치고 떠가기 전에 서로의 테이블을 오가며 조곤조곤 인사를 건넨다. 역시 찐 로컬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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