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트레킹_일곱째날 2편

샤모니를 즐겼다

by 불나무

식사를 마치고 체크인을 하니 오후 3시. 이제 샤모니 다운타운을 한껏 즐길 시간이다.

잠시 쉬다가 가벼운 차림으로 나와 시내 곳곳을 둘러보았다.

산과 알록달록한 단풍이 조화롭게 한눈에 겹쳐지고,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은 햇살에 반짝인다. 알피니즘이 태동한 곳답게 도시 전체가 활기차다. 반려견과 산책을 즐기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이제 막 등반을 마치고 내려온 사람들로 한가득이다. 길거리에는 노천카페와 식료품점, 등산용품샵 등이 즐비하고, 동양인, 아랍계 등 다양한 인종의 여행객들이 샤모니의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구석구석 산책을 즐기다가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한잔 주문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니.. 아쉬워할 새도 없다. 그저 온몸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길 뿐이다.

저녁식사는 구글맵과 챗GPT를 총동원해 심사숙고 끝에 결정했다. Le Matafan. 호텔몽블랑 안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다. 웨이터들이 칼같이 격식을 갖춰 응대했다.

고급 레스토랑답게 어떤 물을 마실건지 주문을 유도한다. 안 마신다는 선택지는 없는 듯하다. 9유로. 마지막 날만큼은 마음껏 즐기기로 했으니, 이 정도는 분위기 상 눈감기로 한다.

와인리스트를 훑어 내려갔다. 비싸다!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적당한 가격대의 와인을 빠르게 스캔했다. Mondeus Avalanche 2023으로 결정. "사부아의 시라"라고 불릴 만큼, 향신료와 후추향, 산도 등이 탁월하다고 한다. 맛을 보니, 산뜻한 산도와 부드럽고 미세한 타닌이 느껴졌다. 시라만큼 향이 진하게 올라오진 않았고, 허브, 나무의 향과 철분의 느낌이 또렷하고 단정한 느낌이다.

스타터로 버섯수란수프를, 메인으로 사슴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첫번째 스타터는 단호박퓨레와 너트가 들어간 고트치즈가 나왔다. 모든 테이블에 동일하게 제공되는 스타터인 듯하다. 적당히 달큰하면서 견과류의 향이 가미되어 고소한 단호박 퓨레였고, 고트치즈는 너트류가 씹히면서 식감과 고소함이 더해진다. 와인과의 밸런스도 좋았다.

두번째는 수란을 올린 버섯수프와 포르치니타르트. 진한 버섯 향과 소스의 새콤함, 쫄깃한 식감이 아래 깔린 타르트지의 바삭함과 어우러져 입안을 풍성하게 채운다. 버섯의 흙향과 소스의 산미가 와인의 향신료 결, 산도와도 궁합이 좋다. 수프는 한 번씩 산도를 누르기에 좋았지만, 단독으로는 너무 느끼했다.

스타터가 전반적으로 묵직했다. 입안이 느끼해서인지 이미 배가 부른 느낌. 곧이어 서브된 사슴스테이크는 익힘이 적당하고 풍미도 좋았다. 구운 무와 단호박 등이 가니쉬로 곁들여졌는데, 무의 아삭한 산미는 입안을 정리해 주었지만, 나머지는 느끼하고 맛이 단조로워 금방 물렸다. 재료의 밸런스에 고민한 흔적은 보였지만, 단호박퓨레-버섯수프-메인 가니쉬로 이어지는 '부드럽고 달큰한 톤'이 3연타로 겹치면서.. 내가 싫어하는 느끼한 단맛이 누적되어 아쉬움으로 남았다.

기분 나쁜 포만감을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역시나 기절하듯 잠들었다.


6시경 눈을 뜨자마자, 오늘의 시간대별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10시에 공항행 버스를 타려면 9시에는 조식을 먹어야 하고, 30분의 짐정리 시간을 감안하면 지금부터 8시 반까지 약 2시간의 여유가 있다!

언제 또 몽블랑을 밟아볼까. 아쉬운 마음에 아침 운동 겸 짧은 트레킹코스라도 걷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 1시간 거리의 Petit Balcon Sud라는 포인트로 향했다. 역시나 고요하고 한적한 길. 아침 이슬을 머금은 나무와 풀들의 냄새, 촉촉한 공기의 질감을 계속해서 새겨 넣는다. 마지막 내리막은 경사가 완만하길래 트레일 러닝을 하듯 뛰어내려왔다. 한국에 돌아가면 트레일러닝을 제대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9시에 야무지게 조식을 챙겨 먹고, 제네바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의 풍경은 첫날과는 다르게 단풍이 깊게 들어 있었다.


좋은 여행이었다. 하루하루 알차고 야무지게 즐긴 것 같아 뿌듯하다. 현장에서 마주한 엄청난 절경들을 사진에 다 담지 못한 건 많이 아쉽지만, 뭐, 항상 그렇다. 사진으로 전부 담아낼 수 있다면 뭐 하러 직접 오겠는가. 내가 직접 마주한 감동들이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일기는 그런 마음으로 썼다. 5년 후, 10년 후에 다시 읽어도 그때의 공기가 되살아나길 바라며. 표현력의 한계가 아쉽다. 다음 여행에선 한층 깊어진 문장을 써내길, 스스로에게 기대해 보며 글을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몽블랑트레킹_일곱째날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