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트레킹_둘째날 2편

도미토리의 악몽같은 밤

by 불나무

부흑쌩모히쓰에 위치한 호텔베이스캠프롯지는 신축에 가까웠고 시설이 매우 깔끔했다. 6인용 도미토리임에도 객실 내에 TV, 소파, 주방, 냉장고, 샤워부스 2개, 화장실, 테라스까지 갖춰져 있다. 심지어 공간이 예쁘다!

도미토리라 저렴한데 시설이 좋아 왠만한 1인실보다도 만족스러웠다. 재방문의사 150%

다만, 수건은 별도 4유로를 받는다. 리셉션의 아저씨가 "싱글룸을 쓰면 수건은 공짜"라는 말을 덧붙였다. 자연스레 1인실은 얼마냐고 물었더니 한 60유로는 더내야 한단다. 본인도 머쓱했는지 "4유로가 낫죠?"하고 웃었다. 이탈리아 억양이 강해 하는 말이 반쯤 날아갔지만, 친절한 건 확실했다.


도미토리룸은 나하고 프랑스남자애 둘이 썼다. 3시경 내가 입실했을 때는 아무도 없었고 그의 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의 배낭이 열려 있어서 시선이 갔는데, 술병이 보였다. 얘도 술쟁이인가보다.

빨래와 일정 정리를 하고 있는데 그가 들어왔다. 내가 있는걸 모르는지 화장실에서 소리가 요란스럽다.

잠시 후 테라스에서 담배를 펴도 되냐고 나에게 와서 물었다. 알아서 하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여긴 금연이다. 다행히 발각되진 않았다.

그에게서 어마어마한 술냄새가 났고,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운 후에 깊게 잠들었다.


5시경 숙소를 나와 시내를 돌아다녔다.

몸이 으슬거렸지만 노천 카페가 예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야외 테이블에서 와인을 한잔 마시다가, 비가 떨어지길래 황급히 숙소로 복귀헀다.


마침 저녁시간이 되어 숙소 건물 1층에 있는 레스토랑에 갔다.

우선, 에피타이저로 바삭하고 얇은 바게트 위에 치즈와 베이컨이 올라간 샐러드와 론지방 레드와인을 곁들였다. 풍부한 과실향과 농익은 베리류의 단맛이 치즈, 베이컨의 짠맛과 조화롭다.

[Vidal-Fleury Côtes du Rhône Villages 2021]

지역: 남부 론 (Southern Rhône, France)

품종: Grenache, Syrah, Mourvèdre 중심

스타일: 미디엄에서 풀바디 레드

향/맛: 잘 익은 붉은 과일(체리, 라즈베리), 허브 드 프로방스, 가벼운 후추향과 약간의 타닌감.


메인은 대구스테이크와 화이트와인을 페어링했다. 대구스테이크는 사람들이 많이 안찾는 메뉴인지 냉동 특유의 비린내가 났지만, 곁들여 나온 브뤼누아(곁들인 다진채소)의 풍미가 좋아서 참을만했다. 와인의 산뜻한 산미가 채소의 감칠맛과 잘 어우러졌고, 부드러운 생선의 식감도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Jean Cavaille “Terres de Famille” Apremont]

지역: 사부아(Savoie, 프랑스 알프스 지역)

품종: Jacquère (사부아의 대표 백포도)

스타일: 드라이하고 가볍지만 산미가 아주 신선하며, 미네랄과 흰꽃, 풋사과, 허브향이 특징.


와인을 꽤 마셨는지, 어느 순간 숙소에서 그 프랑스친구와 신나게 수다를 떨고있었다. 대화의 절반은 기억이 안난다. 심지어 그 친구 이름도 모르겠다.

그러다 나는 피곤해서 10시에 잠들었고,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새벽 내내 그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지 떠들어댔다. 참다가 한번은 조용히 하라고 크게 얘기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번은 갑자기 테라스로 나가길래 또 담배를 피우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곧장 침대로 돌아가 잠들었다.

그렇게 고통받다가 알게되었다. 밤새 중얼거림과 돌아다님은 몽유병이었던 것.


끔찍한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나는 그에게 복수하듯 새벽 6시부터 체크아웃 준비를 위해 열심히 사부작거렸다. 물론 고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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