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트레킹_셋째날 1편

딱 오늘만 같아라

by 불나무

르사피유~라세느~엘리자베따~발베니(트레킹 6시간, 31,436걸음)~꾸르마요르(택시)

간밤의 악몽을 뒤로한채, 부지런히 준비를 마치고 1층 레스토랑에 가니 조식부페가 준비되어 있다. 든든히 챙겨먹고 트레킹 시작점까지 택시로 이동해서 다시 트레킹을 시작했다.

전날의 난이도로 봐서, 오늘도 당연히 힘들겠거니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 생각보다 평이하다. 오르막이 그리 가파르지 않고 적당히 평탄해 땀도 거의 안 흘린 것 같다.

적막한 평화를 즐기면서 2시간쯤 걸었을까, 저 멀리 나보다 앞서 걷는 사람이 있다!

한눈에 봐도 어제의 그 중국인커플이었다. 반갑다. 빠르게 쫓아갈까 하다가, 어차피 따라잡을 것이기에 여유롭게 뒤따랐다.

결국 우리는 다시 조우했다. 간밤의 안부를 물으며 어제는 먼저 가서 미안했다고 해명했다.

오늘 몇시에 출발했는지 물으니 4~5시쯤 출발했단다. 여전히 나와는 속도차가 심각하다.

오늘 꾸르마요르까지는 어떻게 갈 계획인지 물었는데, 대답이 없다. 아직 대책이 없나보다.

눈치껏 나와 택시를 공유하자고 했다. 그래, 오늘은 좀 천천히 걷자.


오늘의 피크인 라세느고개는 어제와는 비교도 안되게 순한 맛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서일까. 동행이 있으니 서로 사진을 찍어줄 수 있는 것도 좋다.

정상을 지나, 내리막에 접어들자 엄청난 강풍이 몰아쳤다. 엘리자베따 산장 근처에서는 새가 공중에 멈춰있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바람이 너무 세서 아무리 날개짓을 해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더라. 현실의 나와 같았다.

슬프고도 귀여웠다.

막바지에는 설산과 잔잔한 호수의 뷰가 너무 예뻐서 엄마 생각이 났다. 이번 트레킹 내내, 대자연의 파노라마에 압도되어 몇번이나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2시경. 차가 다닐수 있는 도로에 진입했고, 택시 픽업 지점을 향해 걸음을 이어갔다. 30분만 더 걸으면 되는데, 그때부터 대니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걸음을 보아하니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다.

차도가 시작되는 지점을 픽업장소로 했어야 했다. 황급히 택시 기사에게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와달라고 메세지를 보냈지만, 의사소통 문제로 결국 30분을 더 걸어 원래 지점까지 내려갔다.

꾸르마요르로 향하는 택시에서 중국인커플이 택시비가 얼마냐고 물었다. 내가 60유로라고 하자, 듣고 있던 기사아저씨가 40유로란다. 설명을 들어보니, 차도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탔으면 60유로인데, 우리가 30분을 걸어 내려와서 그렇다고 한다.

걸을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기뻐하며, 나는 그들에게서 20유로만 받았다. 그들은 충분치 않다고 미안해 했지만, 전날의 아침 식사 값 대신이라고 하자 이내 수긍했다.


꾸르마요르 다운타운은 알프스 산군에 둘러싸여 있어 어느 포인트에서 봐도 뷰가 미쳤다. 샤모니와는 다른 결의, 이탈리아 감성의 산악 도시다. 때마침 햇살이 쨍-해서 맥주가 딱이다.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급한 눈길로 바를 찾았다. 한적한 테라스가 있는 바가 눈에 띄었다.

브레이크타임이라 음식은 안되지만 음료는 가능하다. 기쁜 마음으로 맥주를 시키려는데 200ml(4유로)짜리 뿐이다. 이건 너무 작으니 2개를 달라고 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인도계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는 못 알아들었는지 맥주를 한잔만 가져다 주었다.

일광욕을 즐기며 1분컷으로 맥주를 흡수했다. 이내 참을수 없어 빈잔을 들고 "원모어~"를 외쳤다. 두번째 잔을 받자마자 다시 "원모어!"라고 하니 아주머니가 황당한 듯 웃었다. 민망해서 이건 너무 작다고 변명했다.

연거푸 3잔을 시원하게 들이키고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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