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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진 Apr 16. 2018

생각, 말, 글

생각을 실체로 마주하는 순간

생각해보면 나는 꽤 ‘글’과 친한 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어릴 때부터 친했던 건 글이라기 보단 ‘메모’의 형태였다. 워낙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 꿈 많던 소녀였던 난 언제부턴가 늘 메모지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되고 싶은 것들을 적어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 마치 주머니 속에 꿈을 넣어 다니듯. 다이어리를 갖게 되면서부터는 커진 종이만큼 내가 뭔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 것 마냥, 뭔가를 항상 끄적였다. 어디에서든 다이어리와 펜만 있으면 꼭 몇 달치 식량을 창고에 쟁여둔 것처럼 괜히 마음이 든든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메모는 내 글의 기원이었고, 종이와 펜은 내 삶의 주요 소품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메모 습관은 웹과 모바일로 자연스럽게 옮겨왔다. 휴대폰의 메모 앱뿐 아니라 에버노트나 구글킵 같은 고마운 도구들을 발견하며 기억해야 할 것들뿐 아니라 평소의 내 생각이나 떠오르는 아이디어 같은 것들을 시도 때도 없이 기록하곤 한다. 길을 걷다가, 운전을 하다가, 어떤 책이나 영화를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나 깨달음의 순간들을 마주했을 때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일단 닥치는 대로 적어두었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그 생각을, 그 순간의 표현으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일종의 불안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끄적인 것들이 꽤 쌓여가고 있다. 마치 언젠가 꺼내 먹을 요량으로 냉장고에 넣어둔 온갖 재료들처럼, 내가 살아온 순간순간의 생각들은 날것 그대로 여기저기에 보관되어 있다. 이제 나만의 이 생각 냉장고를 좀 정리해보려 한다. 마구 집어넣어 놓은 재료들을 꺼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 내 생각의 조각들을 꺼내 나만의 레시피로, 적당한 온도와 조리시간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고 싶다. 이 요리를 찾아 맛보게 될 사람들은 아마도 내 요리가 입맛에 맞는 사람이겠지만,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긴다.


내가 이렇듯 나만의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 건 글 자체의 효용성과 매력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니는 생각의 파편들이 그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하는 활자로 탄생하게 되면, 그제야 생각은 비로소 실체가 된다.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글’이다. 생각은 글로 옮겨질 때 비로소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음식을 만들지도 않고 내가 어떤 재료들을 갖고 있는지, 어떤 요리를 할 수 있는지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없듯, 내가 나누고 싶은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생각은 세상에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설사 내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다른 사람들보다 크다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그 존재를 입증하지 못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한대도 그 생각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생각이 된다.


글쓰기는 내 생각의 깊이와 크기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게 해 준다.

머릿속에 그럴듯하게 떠오르는 생각이나 관념들을 글자로 옮겨 적을 때면, 막상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만큼의 알맹이가 없어 실망하거나 당황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반대로 어떤 경우는 한 줄의 가설이나 명제만 갖고 일단 쓰기 시작했는데 술술 써질 때도 있다. 이렇게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내 생각이 감자 캐듯 줄줄이 꼬리를 물고 나오는 정도의 깊이인지, 그저 한 껍질 벗겨내면 아무것도 없는 빈 껍데기인지가 드러난다. 위의 연장선상에서, 내 생각의 실체가 얼마만큼인지가 까발려지는 순간이다. 그만큼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것은 어렵고 또 중요한 일이다. 내 생각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마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정화의 과정이다.

글은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들을 잡아채 내 눈 앞에 보여줌으로써 객관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과정 속에서 긍정의 생각은 더욱더 강한 긍정의 힘을 갖게 되고 바로 옆에서 공감의 격려와 위로를 건넨다. 반대로 부정의 생각은 글자로 탄생하는 과정을 거치며 그 강도와 크기가 크게 줄어든다.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오염시키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활자화되는 과정에서 그 민망한 바닥이 드러나 자연스레 강도가 약해지기도 하고, 막상 글로 써보니 생각만큼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겸연쩍어지기도 한다. 행복한 순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거나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울의 나락으로 가라앉을 때,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고 가슴이 답답할 땐, 일단 지금 내 머릿속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최고의 처방이다. 긍정의 에너지는 큰 희망과 위안을 안겨주는 친구로 만들고, 부정의 에너지는 그 민망한 꼬리를 감추게 만드는 힘을 주는 것, 바로 글쓰기가 주는 신비한 마법이다.


생각은 말보다 크고, 말은 글보다 크다.
그리고 세상의 크기는 글이 결정한다.

생각하는 것은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지만, 그 생각을 말로 잘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하기보다 어렵고, 그 말을 글로 정제하는 것은 말하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 글로 표현되는 생각은 그 사람의 표현능력에 따라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크기만큼, 또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딱 그만큼 내 생각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글을 잘 쓰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사람의 생각은 결국 글에 의해 그 크기와 깊이가 달라진다. 내 생각은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어휘,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정도에 의해 스스로 피드백받고 상호작용 한다. 생각을 글로 쓰다 보면 어렴풋하게 머리 위를 떠돌아다니던 관념들이 구체적인 실체가 되어 내 머릿속에 다시 자리를 잡고, 그렇게 정리된 개념은 나의 또 다른 언어가 된다. 그렇게 내 생각과 말과 글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만의 개념과 맥락을 갖추고, 이것이 활발해질수록 나만의 컨텐츠가 풍성해진다. 이렇듯 글쓰기는 그 자체로 세상과 소통하며 나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가장 좋은 재료이자 방법이다.


이제 글쓰기를 통해 내 세상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가려 한다. 내 세상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많든 적든, 내가 글로 표현한 내 삶의 소소한 일상과 사소한 철학은 나라는 한 인간이 일정기간 지구라는 행성에 존재하면서 세상을 바라본 나만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더 선명하게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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