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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진 Apr 19. 2018

벚꽃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봄꽃 단상

가지 끝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꽃망울,

정면으로 맞아도 더 이상 몸서리쳐지지 않는 바람.

봄의 시작은 언제나 같다.


겨우내 얼었던 몸과 마음이 설레는 움직임을 시작하고, 산수유에서 시작한 노란 물결이 개나리까지 물들이고 나면, 어느새 벚꽃이 사람들 마음에 꽃눈을 흩뿌려놓고 금세 달아나버린다.

봄의 끝도 그렇게 반복되곤 한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피고 지는 봄의 꽃들을

우리는 매년 처음 본 듯 반갑게도 맞이한다.

마치 원래 없던 게 어느 날 반짝 생겼다가 사라지는 신기루라도 되는 양.


하지만 벚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개나리도 항상 내가 다니던 길가에서 나를 맞았다.

꽃을 피우는 모든 나무는 변함없이 항상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늘, 꽃을 피워야만 비로소 아는 척을 한다. 알록달록 물감칠을 해놓아야만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고, 기뻐한다.


영원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일지라도,

마침내 열매 맺음에 대한 축하일지라도,

어쩐지 좀 서글프다.

더위와 추위를 참고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며 1년을 버틴 나무가, 단 며칠간 꽃을 피운 시기에만 벚꽃이라 불린다는 게.


문득 우리 삶도 봄의 꽃들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꽃을 피워야만 우리는 그를 알아차린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존재는 꽃을 피워야만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꽃을 피운다.

하지만 누구든 꽃을 피울 때만 그 누군가는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존재 자체로 꽃이어야 한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울 준비를 하며 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처럼.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꽃을 피운다.

하지만 벚꽃은 원래, 늘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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