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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진 Sep 22. 2024

우리가 함께 던져야 할 질문



2000년대 컴퓨터의 보급과 2010년대 모바일의 등장 이후 기술의 진보 속도는 전례없이 빨라졌고 세상 또한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20년대 그 변화의 바통을 이어 받은 주인공은 바로 AI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시대가 열린 이후로는 최소 10년 단위로 큰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왔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때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로 인한 변화에서 뒤떨어져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애쓰고, 그것이 바꿔놓은 세상을 허겁지겁 뒤따라 가면서 종국에는 적응하며 살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출현할 때마다 그저 신기해 하거나, 그걸로 돈 벌 생각을 하거나, 자신의 생존과 안위만을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경계하고 깊이 생각해 봐야할 것이 있다. 바로 '그것이 인류와 세상에 광범위하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그로 인해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Chat GPT가 나온 이후 여러 갑론을박이 펼쳐졌고 AI에 대한 논쟁은 계속해서 현재진행형이다. AI로 인한 이점들도 많이 있겠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이나 예상되는 폐해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평생 AI를 연구해 온 제프리 힌튼 박사는 2023년 4월 구글을 떠나면서 AI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자신이 평생 일구어 온 성과와 업적들을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AI에 대해 아주 잘 알지 못하기에 이렇다 할 논리적 견해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관련 뉴스들을 보다 보니 문득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가 연상됐다.


현대의 AI와도 같은 혁명은 인류 역사에 숱하게 있어 왔다.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농업혁명도 그 중 하나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농업혁명은 원시수렵채집인이었던 사피엔스를 한 곳에 정착하여 살게 하면서 하루 종일 농작물을 경작하며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불안 속에 살도록 만들었다. 사피엔스라는 종 전체를 놓고 보면 농업혁명은 종의 번식과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는 획기적일 만큼 긍정적이었으나, 하나의 인간인 개체로서의 삶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가 스스로에게 놓은 덫과도 같았다.


농업혁명이 사피엔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줄 몰랐듯이, 우리는 지금 나의 선택이나 우리의 결정이 앞으로의 내 삶과 지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로 알지 못한다.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이고도 큰 영향을 미치는 비즈니스나 정치의 영역에서도 그렇다. 게임이 사람들의 일상이나 사고방식에 미치는 영향력, SNS가 사람들의 정신과 일상, 나아가 사회에 미친 파급력 같은 것들은 당초 해당 서비스가 기획될 때는 고려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본인들의 결정에 따른 결과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으로서의 직업의식보다는 본인이 속한 정당의 이익이나 자신의 권력 유지 및 강화에 혈안이 된 모습들로 국가의 중대사들을 결정하곤 한다. 일부 진정성 있는 정치인도 있겠지만 그들조차 좀 더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에게 좋은 결정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언제부턴가 나는 우리 모두가 '앞만 보며 달리는 단거리 경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근 읽은 책 <도둑 맞은 집중력>에서 이런 생각과 꼭 들어맞는 구절을 발견했다.


그의 친구인 마이크와 케빈은 인스타그램을 출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터를 추가했다...(중략)...여기서부터 누가 사진을 더 잘 미화하는 필터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두고 스냅챗 등의 기업과 경쟁이 시작될 것이며, 그 결과 사람들이 자기 몸을 바라보는 방식이 크게 바뀌어서 오늘날 앱의 필터와 비슷해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리라는 생각을 그들은 하지 못했을 거라고, 트리스탄은 확신한다.
 
-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도둑 맞은 집중력>에서 저자인 요한 하리는 SNS가 사람들의 주의력을 빼앗아 붙잡아 두기 위해 얼마나 체계적으로 디자인되어 있는지에 대해 한때 내부자였던 사람들의 인터뷰와 전문가의 견해, 과학적 근거를 들어 이야기한다. 하지만 위에 언급되어 있는 대로, 그런 서비스를 최초로 고안한 사람들조차 그들이 사람들의 일상을 얼마나 어떻게 바꿔놓을지, 그로 인한 부작용은 무엇이 될지에 대해 아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도파민에 중독되어 즉각적인 보상만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람들, 긴 글을 읽는 능력을 잃어버린 세상, 가짜뉴스가 사람들의 정신세계뿐 아니라 실제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생태계 위기 등과 같은 것들은 결코 인류가 추구한 기술 발달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이는 기술 발달로 인한 의도치 않은 결과이다. 그럴 것이라 믿고 싶다. 설령 지금은 기업의 이익이나 기득권의 부와 권력 유지를 위해 그런 기술이 악용되는 면이 있을지라도, 대개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 제품 같은 것들은 초반에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연구되거나 출시되곤 하니까.


하지만 신기술이 공익적인 쓸모- 가령 새로운 기술은 종종 장애나 불치병을 가진 사람들을 치료하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먼저 쓰이곤 한다 -를 보이며 초반의 진입장벽을 가뿐하게 넘고 보급화의 길에 들어서게 되면, 많은 자본가들이나 권력가들은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데 이를 활용한다. 기업의 속성이 어쩔 수 없이 그러하겠지만, 기업가들은 그저 '이런 서비스가 있다면 돈이 될 것 같다'는 자본주의 논리나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이런 서비스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기업가정신의 발로에서 새로운 서비스나 프로덕트를 고안해 낸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오랫동안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할 것인가가 그들의 최대 관심사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사회나 삶에 미치는 영향 같은 건 회의 테이블 위에 올라오지 못한다.


그 결과 어찌됐든 인류는 끊임없이 진보를 거듭했고 경제는 날로 성장하여 우리는 늘 과거보다 현재 더 잘 살게 되었다. 아니, 아직까지는 그래왔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미래의 일은 알 수 없으니까. 미래에 대한 예측불가능성이나 변동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기에 실제로 인류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잘 살 수 있을지, 경제가 정말로 끝을 모르고 팽창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 무턱대고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기술의 파급력이 점점 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는 한편,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우리의 유한한 지구는 계속해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 모두는 눈앞만 보고 무조건 달려 나가는 대신, 잠시만 멈춰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언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기획할 때 "이 기술이 장기적으로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중 가장 안 좋은 건 무엇일까?", "이 서비스로 인해 세상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오게 될까?", "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나? 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런 서비스/제품을 계속해서 사용해도 괜찮은가?" 같은 질문들 말이다. 단순히 "이것이 새롭고 차별화 된 가치를 제공하는가?"나 "이게 돈이 되는 사업인가?"와 같은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기술/서비스/제품이 인간의 공감능력을 해치진 않는지, 환경에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해를 입히지는 않는지, 사람들의 행복도를 떨어뜨리진 않는지 같은 질문들이 기업가정신의 필수 덕목으로 포함되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그러한 요소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구조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가령 모든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체크리스트에 위와 같은 인류를 위한 질문들이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려되는 부분이 있거나 부정적 영향이 예측되는 점이 있다면 그 부분에 있어서는 굉장히 신중한 접근과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의 의사결정이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미리 예측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환경 속에서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 자본주의 원리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러한 결정과 실행에는 사회와 국가를 넘어선 전세계 차원의 전방위적인 합의와 집단적인 동참, 그리고 시스템이 기본 전제가 되어야만 한다. UN 같은 가장 권위있는 국제기구조차 여러 국가의 목소리를 통일시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허황된 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모든 혁명과도 같은 변화들 중 쉬운 것은 없었다. 기득권자들의 엄청난 저항과 사회적 반감이나 불편 등이 그 과정을 꽉꽉 채웠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당연시 되었던 것들이 현대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이 된 사례가 무수히 많듯이,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는 일들도 언젠가 말이 되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겠으나,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함께 이 작은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면 먼 훗날 아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내가 한 결정이,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이 일이
장기적으로 이 세상을 위해 괜찮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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