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는 일은
볼펜으로 쓰는 일보다 매력적이다.
비록 흐르는 듯한 매끄러움이 덜하고
때론 손 옆등에 새까만 흑심을 남기더라도.
매끄러움이 덜한 덕분에
제멋대로 길을 벗어나지 않는다.
종이 위든 손 옆등이든 흑심이 남긴 자국은
언제든 지우면 그만이다.
탈선을 막아주는 적당한 마찰과
썼다 지웠다 할 수 있는 유연함은
그 자체로 지혜이고 용기이다.
조금 더 힘이 들고 투박하더라도
쓰는 만큼 깎이더라도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이다.
내 삶의 끝모습은
모든 마찰과 저항을 지혜로 맞바꾸고
나머지를 생각 않고 마음을 내어준
닳고 닳은 몽당연필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