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시한 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진 Nov 05. 2023

연필

연필로 쓰는 일은

볼펜으로 쓰는 일보다 매력적이다.

비록 흐르는 듯한 매끄러움이 덜하고

때론 손 옆등에 새까만 흑심을 남기더라도.


매끄러움이 덜한 덕분에

제멋대로 길을 벗어나지 않는다.

종이 위든 손 옆등이든 흑심이 남긴 자국은

언제든 지우면 그만이다.


탈선을 막아주는 적당한 마찰과

썼다 지웠다 할 수 있는 유연함은

그 자체로 지혜이고 용기이다.


조금 더 힘이 들고 투박하더라도

쓰는 만큼 깎이더라도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이다.


내 삶의 끝모습은

모든 마찰과 저항을 지혜로 맞바꾸고

나머지를 생각 않고 마음을 내어준

닳고 닳은 몽당연필이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 I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